이 한없이 풀어헤쳐진 자연스러움에 녹아내리는 마음이 뜨거워 두 손으로 잡고 싶은 영화. 그럼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잔상이 내내 맴돌아 돌아서면 눈물이 흐르는 영화다.
아이들이 눈밭의 강아지처럼 즐거울수록 눈물이 난다. 눈물의 원천은 따뜻함이다. 아이들만이 지니고 있는 온도의 따뜻함이 차갑거나 뜨거운 어른들의 눈두덩을 어루만져 준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울어야 할 때 울고 즐거울 때는 즐겁다.
엄마에게 확인받고 싶은 다이. 엄마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는 것이 자꾸만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것 같은 다이. 더 먼 곳으로 병원을 옮긴 엄마를 찾아 떠나는데 다이만 보낼 수 없는 찬구들이 하나둘 붙고, 결국 다이와 아이들의 멀고도 기나긴 여정.
재경의 변화가 뭉클한 이유는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경과 다이가 함께 찍은 엄마를 위한 노란 꽃 사진은 진짜 꽃 사진이다. 어느 예술 사진 못지않은 예쁜 사진.
아이들의 멀고도 험하지만 즐거운 여정의 길을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일상의 기적을 믿고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속의 아이들은 세계가 무엇인지 몰라 힘들어도 울지 않는다.
엄마와 떨어져 살아도,
아빠 없이 엄마와 살며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예쁜이라고 해도,
키우던 마블이 죽어도,
아이들은 즐겁게 하루는 보낸다.
묘하게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바늘로 살짝만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아빠를 닮아서 엄마가 싫어하는 줄 알았어,라고 무던한 류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어른들의 모습이 아닐까.
기적은 아이들 주위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고기 회를 먹지 못해 고작 말고기 맛이 나는 비스킷이라도 상관없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이봐, 너 자체로 기적이야, 네가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그때 아이들에게서 받은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였다. 웹툰을 제대로 영화화한 좋은 예다.
아쉬운 점은 다이 아빠의 눈썹이다. 정리가 심하게 잘 된 눈썹이 몰입에 방해를 단단히 한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눈썹을 정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영화 속에서마저 방송 예능처럼 천편일률적으로 깔끔하게, 누가 봐도 눈썹을 정리하는 곳에서 관리를 받은 것처럼 정리가 된 눈썹을 하고 나올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다이의 아빠잖아. 다이의 아빠는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다. 다이 엄마의 병원비를 대기에도 너무나 벅차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다. 실제로 이렇게 생활하는 남자의 눈썹이 영화 속 다이의 아빠의 눈썹처럼 로봇처럼 잘 다듬어져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얼굴에서는 다이와 엄마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 고민에 휩싸인 표정이지만 눈썹이, 너무 깔끔하고 다듬어진 눈썹이 몰입을 떨어트린다. 다이 아빠의 눈썹 정도는 실제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가장의 눈썹 이어야 했다. 정글처럼 마구 자라 있거나 숱이 일정하지 않거나. 모든 게 가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눈썹은 잘 나가는 샵에서 받은 것 같은 괴리가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