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거의 다 봤으며 봤던 영화를 계속 보는 편인데 하나와 엘리스는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팬심으로 쓴다.


이와이 슌지의 립반 윙클의 신부가 나왔을 때 혹평이 가득했다. 이와이 슌지와 서태지와 보브 딜런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냈을 때 혹평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분 나쁠 정도로 즐긴다는 걸로 알고 있다.


풍경 사진보다 보도사진이 존경받는 이유는, 새벽의 일출을 촬영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가 멋지고 아름답고 잘 나왔다는 ‘감탄’이 있다. 하지만 보도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상하거나, 보기 싫거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무슨 사진이지? 하는 다양한 반응들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기 때문에 보도사진이 존경을 받는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뉜다면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때 나는 당연하지만 전자에 속한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처음 접하고 그 사람의 영화는 소설처럼 읽혀서 피부로 흡수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두와 피크닉으로 빠져들어간 이와이 월드에서 만난 릴리 슈슈에서 하늘을 날고 싶었던 츠다를 두드려 깨워 밝은 모습의 하나와 엘리스로, 첫사랑을 찾은 사월의 이야기를 넘어 조금은 답답하지만 립 반 윙클의 신부를 거쳐 스왈로우 테일 버터 플라이의 미래에서 모두가 애벌레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잘 만들어야 한다. 늘 하는 말,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영화라는 예술은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예술에 신세를 진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의상, 건축, 음악, 미술 이 모든 예술이 영화보다 선배다. 영화는 이 선배 예술들에게 조금씩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붙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와이 슌지는 아주 착실하게 그 점을 이행하고 있다.


릴리 슈슈에서 마지막 장면.

공연을 시작하기 전의 장면에서 엑스트라 수천 명이 공연장 앞에 모여 대기를 한다. 이와이 슌지는 그 수천 명에 달하는 엑스트라에게 전부 다른 대사가 적힌 대본을 준다. 그리고 누가, 어떤 장면으로 촬영이 되어 영상으로 나올지 모르니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와이 슌지는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고, 현재 만들고 있고, 앞으로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이와이 슌지의 힘, 내지는 록웰 아이즈가 가지는 특별함이다.


위에서 사진의 예를 든 것처럼 감독의 사상이나 의도를 떠나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일본 특유의 말보다는 이와이 슌지 특유의 음악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 중에서 영화음악이 제1순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는 입장은 이와이 슌지 만의 특별한 영화음악은 그의 영화를 완성하는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립반 윙클의 신부의 미나가와는 마시로가 배우라는 사실이라는 걸 들었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듣고 나면 미나가와는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받았지만 마시로는 그런 미나가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한다. 미나가와는 이런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같이 있어도 좋다고 느낀다. 그것에 여자 남자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사랑이든, 친구든 그것은 상관없다. 미나가와는 마시로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웃음이 많다. 그 모습은 하나와 엘리스에서 아리스가 혼자서 인상을 쓰며 밥을 먹는 것과 마크와 하나와 함께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과연 내가 큰 불행이 닥쳤을 때 나를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몇이나 있을까. 마시로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와이 슌지는 불가능할 것 같은 것을 해내고 만다.


립반 윙클의 미나가와를 당신이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당신의 시선에 달린 것이다. 타인에게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봐주길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다. 타인을 보는 시선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미나가와는 마시로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겨 달라고 말한다. 내 주위에 그렇게 나에게 말해 주는 이가 있을까.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타인에 대해 편견만을 지니고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달라진 나를 발견함이다. 전과 후의 내가 전혀 변화가 없다면 책 따위는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보는 내내 알 파치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영화 대니 콜린스에서 동료이자 친구인 매니저가 아들인 톰에게 피아노를 건네주며 말한다. 대니는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 하는 일마다 그르쳐서 그렇지. 그런 대니를 당신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개연성이니 맥락이니 전개니 불안이니 같은 단어로 이와이 슌지를 논하지 말자. 적어도 당신이 이와이 슌지의 팬이라면 의심하지 마라. 미나가와는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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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수식하는 말은 여러 개다. 고양이 티티가 나오지만 고양이가 주인공이 아닌 영화. 한국 영화를 말할 때 빠트려서는 안 되는 영화. 자극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음에도 우리를 자극하는 영화. 그리하여 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게 되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알게 되는 영화. 이 이야기는 스무 살에 머문 이야기가 아닌 스무 해가 지난 우리 모두의 영화. 누군가는 가슴에 꼭꼭 품고 있는 영화.


나 말이야 사실 수많은 영화 중에서 ‘고양이를 부탁해’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야.라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한다면 꽉 안아주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서로 말없이 공감하고 있다는 무언의 단단한 결속 같은 것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당시에 인기가 없어서 ‘고양이를 부탁해’ 마니아들이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 보기 운동을 했을 정도였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마지막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다. 비용의 문제로 필름 카메라 한 대로 찍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느끼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처음 주워온 고양이 티티와 비슷한 신세를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 넷플 디피가 어떤 남자들의 과거이자 미래라면, 고양이를 부탁해는 어떤 여자들의 과거이며 미래다. 왜냐하면 20년 전의 청춘에서 지금의 청춘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으로 감독은 이후 고양이 시리즈를 지치지 않고 만들어내고 있다. 고양이를 돌려줘, 고영이들의 아파트 등.


지영이는 울지 않는다. 힘들어서 한 번쯤 울 수도 있지만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지영이는 청춘을 지나 현재 40대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고양이를 부탁해와 함께 지금 여기에 생존해 있는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2001년 10월 13일에 개봉했는데 20년이 지난 2021년 10월 13일에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다. 이미 이번 부국에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누군가의 꿈일지도, 누군가의 꿈이었던 푸르고 찬란(하고팠던)한 스무 살의 이야기, 요즘 너는 어때?라고 묻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였다.


네 명이 바람을 맞으며 걷던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 모임별의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를 들어보자. 불안하고 명확하지 않은 청춘들의 모습을 잘 대변하는 노래였다.   

https://youtu.be/mgtAGplClcY

모임별 -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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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 호불호가 나뉜다는데 불호인 것은 아마도 지루한 장면과 어떤 부분의 연기, 어디선가 본 듯한 영상과 내용, 앞으로 나갈수록 보이는 결말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특히 1번 노인이 혼자 게임에 참가했을 때 눈치를 안 채려고 해도……


그러나 나처럼 오징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처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경험이 있지 않았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오징어 게임 속에서처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생활 같은, 요컨대 군대에서 훈련을 나가기 전에 잠시 대기 탈 때 저 앞에는 조교들이 진을 치고 있고 통과하지 못하면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 기다리는 동안의 두려움과 초조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또는, 취업의 문턱에서 면접관 앞에 서기 직전의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초조와 불안, 옆의 응시자들은 모두 나보다 스펙이 놓아 보이고 다 자신감 있는 모습에 점점 조여 오는 압박감. 이런 모든 총체적 분위기를 오징어 게임을 보며 예전의 그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좀 살아본? 사람들은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인간성을 다 보여준다.


도대체 인간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인간이 가지는 대부분의 감정이 다 나온다. 폭력성, 이타성, 배려와 욕심, 배신, 협동심, 본능, 인간의 처절한 본성이 툭툭 튀어나온다. 어제까지 내 편이었는데 오늘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죽이려 든다.


좀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좀 살아보니 인간의 더러운 모습, 인간 그 너머의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배신이라는 건 나를 모르는 생판 남이 아니라 나를 아주 잘 아는 나와 친한 동료가 배신을 하고 사기를 친다. 그러니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배신 때문에 빚을 떠안게 된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 커져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일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살인이라는 것도 게임으로 교묘하게 덮으면 계속할 수 있다.


챔피언 권투 선수가 있다고 치면 도전하는 상대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안심이 된다. 정보가 노출이 되어 있으니까 대비가 된다. 하지만 정보가 전혀 없는 신인이 올라오면 당황하고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시간 앞에 놓이면 두려움에 떨고 초조함이 정신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면 죽음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타인을 죽이려 든다.


초반에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혼비백산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마치 코로나 시대 초기에 그렇게 두려워하던 감염병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이제 무뎌진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 속 사람들은 온통 빚을 지고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어서 게임을 하러 왔다. 처음에는 저기서 죽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동료라는 생각에 놀라고 소리치고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 저 사람들이 없어지면 내가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거액의 돈까지 준다.

주인공 기훈은 지질하고 무엇하나 잘하는 것 없는 루저다. 그런데 루저이지만 또 인간에 대한 믿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어디 하나 쓸모없는 인간에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지질한 인간이다. 소심하고 작은 일에 감정의 높낮이가 조절이 되지 않고 화가 나도 화를 낸 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무서워 화를 내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그래도 약간의 오지랖은 있어서 조깅을 하다 폭염에 쓰러진 사람을 옮겨 119에게 인계하기도 했고, 박스 할머니의 박스를 옮겨주고 주머니에 오천 원을 꺼내 음료수 드시라고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지갑을 주워서 돈이 있어도 꺼내지 않고 그대로 지구대에 갖다 줘서 주인이 나타나 고맙다는 소리도 들었다. 정말 지질한 인생이고 가진 것은 개뿔도 없는데 남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는 그런 인생이다. 영화 속 기훈과 참 닮았다. 중요한 건 영화 속 기훈은 무쓸모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닮은 것에서 놀라지 않았다.


이런 무쓸모 인간인 기훈이 주인공인 것은 그나마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일 것이다. 또 알게 모르게 동료들에게도 믿음을 준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두 가지를 가지면 살아남는다. 그것은 ‘힘’과 ‘믿음’이다. 그런데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 덕수는 힘을 쟁취하지만 믿음을 얻지 못해 결국 죽고 만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서로가 동료라는 생각이 없다. 동료라면 다 같이 살아야 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다 같이 살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한 집 건너 누가 죽었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이 대거 자살을 했는데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몇 있을까 싶다. 만약 죽기 전에 길에 나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선뜻 만원 하나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으니까.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가 너무 놀란 기훈과 가장 닮은 부분은 영감님과 일대 일로 구슬치기를 할 때 영감이 치매가 걸렸다는 걸 알고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그만 영감을 속이는 그 모습이 닮아서였다. 나는 주위에서 안 그런 척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막히면 실은 나 살고자 다른 사람을 구덩이로 몰아넣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기훈이 잠시 고민하더니 영감님을 속이는 그 장면, 그 처절하리 만치 생과 사가 갈리는 그 순간의 기훈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나를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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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하는 영화 이야기,라고 쓰고 그냥 영화 리뷰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저냥 떠들어대는 영화 이야기. 영화는 일상 중에서 일탈을 맛볼 수 있는 예술의 한 부분이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림, 사진, 의상, 미술, 건축, 자동차를 보는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이 세계를 떠나가 있는 기분이 든다. 



1. 킹덤: 아신전

https://youtu.be/rO3gF04G-2I

생사초를 먹은 노루를 호랑이가 먹고 그 호랑이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든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이었던 생사초가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존재하는 인간을 위협한다. 그 중간에 아신이 있다.


킹덤 시즌 1, 2에서는 가장 권력을 쥔 자들이 가장 밑바닥의 서민들을 학살한다. 이제 그 반대를 통해 모순과 역설을 말한다. 킹덤 아신전 첫 장면에서 화면은 밑에서 나무가 빼곡한 하늘이 반영된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조선, 평온한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생사초를 먹은 노루가 그 물에 빠지며 세상은 흐트러진다. 그렇게 킹덤 아신전은 시작한다.


아신은 악착같이 살아간다. 조선인도, 여진족도 아닌 아신은 처절하리만치 돼지우리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 아신이 분노를 넘어 감정이 완전히 결여된 표정으로 바뀐다.


아신의 얼굴에서, 그 표정에서 분노, 희망, 그리고 절망의 한 올까지, 모든 감정이 한순간 확 걷히는 표정이 눈빛에 나타난다. 그건 바로 체념이었다. 일종의 안정된 코마 상태. 마치 말기 환자가 모든 것을 체념한 후 나타나는 온후한 표정. 아신은 그렇게 체념의 상태가 되어 인간 그 이상의 인간이 된다.


그 체념의 표정을 지은 전지현의 연기가 아주 좋았다. 킹덤 아신전은 한국판 왕좌의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손톱의 더러움, 누런 이빨, 해에 그을린 볼살 등 마치 다큐를 보는 것 같은 미장센과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극본의 힘이 굉장했다.


앞으로 킹덤이 더욱 기대되는.




2. 정글 크루즈 

https://youtu.be/OMFHBSz0Nk8

정글 크루저가 시작할 때와 프랭크가 회상할 때 메탈리카의 ‘낫띵 엘스 메럴’이 나온다. 정말 학창 시절에 메탈리카를 미친 듯이 들었던 나로서는 도입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옆에 앉은 일행에게 야, 메탈리카 야!라고 했지만 일행은 그게 뭐? 같은 표정으로 영화만 관람.


영화 속에서 낫띵 엘스 메럴은 노래는 없이 연주만 흘러나온다.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에 있는 곡으로, 대체로 암울하고 우울하지만 믿음과 함께 있음을 말하는 노래다. 암튼 요즘의 넥스트 레벨보다 더 좋아했음. 넥스트 레벨 커버 치는 영상도 재미있음. 런던, 파리, 러샤, 브라질은 남자 녀석들이 제껴라 제껴라 하고, 일본, 중국 재미있음. 그나저나 에스엠은 도대체 광야는 왜 포기 못함?


여하튼, 정글 크루저는 구니스, 인디애나 존스, 커스롯트 아일랜드, 피터 잭슨의 킹콩을 거쳐 도달한 느낌. 모험과 모험이 모험으로 모험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미! 국!이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 생각된다. 앞서 말한 심각하지 않고 자본이 충만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 식 판타지 영화를 이어받았다.


그간 에밀리 블론트의 영화들 중에서 이 영화의 에밀리가 제일 러블리하다. 몹시 사랑스럽다. 치켜뜬 눈동자며, 나만 살면 되지만 동물들을 구하는 모습이며, 똑똑한데 멍청하며, 안 그런 척 그런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나온다. 러블리의 끝판이다. 실제로도 그런 모습인데 영화 유튜버 천재 이승국과 비대면 인터뷰하는 모습을 봐도 아주 장난기 넘치는 사랑스러움으로 대화를 한다. 한 번 보시길.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며 낫띵 엘스 메럴은 정말 우주 최고로 좋은 노래다.




3. 래치드

https://youtu.be/CE1KOhXX2no

래치드는 오래전, 1940년대의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아주 기묘하고 난해하고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다. 밀드레드 래치드라는, 어떤 단어로 지정할 수 없는 간호사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샤론스톤도 나오고 신시아 닉도 나오고 주디 데이비스 등 유명한 배우들이 와장창 나온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라 폴슨의 의문스러운 간호사 연기가 좋다. 사라 폴슨은 꼭 우리나라의 조여정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사라 폴슨도 꽤나 많은 영화에 나왔다. 아마도 이대로 필모를 이어간다면 줄리안 무어처럼 되지 않을까. 한 50대가 되어서 완전한 두각을 드러내는 배우. 뭐 그런.


사라 폴슨의 최근의 화제작은 ‘런’이었다. 아무튼 넷플 미드 ‘래치드’는 정말 재미있다. 스토리, 호러, 고어,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딱인 영화다. 잔인한 듯 아닌듯한데 몹시 고어적인 장면도 많다. 요컨대 팔이 잘린다거나, 다리가 총에 맞아 터진 모습 같은 장면은 쏘우처럼 드러내 놓고 고어적인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또 19금 장면 역시 그렇지 않은데 몹시 야하다. 드러내는 장면은 없지만 간호사가 남자 환자의 자위를 해주는 장면은 대화와 두 사람의 얼굴만 보여주는데 대 놓고 보여주는 영화보다 더 야하다.


시리즈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면서 점점 무섭고 호러에 가깝게 흘러간다. 미쟝센이 아주 좋다. 배경과 정신병원의 내부 색감은 박찬욱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가 많다. 예고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미술이 죽인다.




4. 보스 베이비 2

어릴 때도 만화 본다고 엄청 혼났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더 보는 것 같네. 귀여움과 귀여움으로 심장어택 당하다가 감동의 풀 스윙을 먹어 버렸다. 더위 먹는 것보다 낫지.


닌자 베베 귀염둥이를 나올 때 어쩔 뻔. 티나의 막 나가는 귀여움과 타바타의 노래는 또 왜 그렇게 좋을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신나고 귀여워서 죽을 것 같지만 어린이보다 으른이가 보면 더 좋을 영화가 아닐까 싶다.


내 아이들이 나와 점점 멀어진다고 느낄 때(싫지만 분명 그런 시기가 오기 때문에) 보스 베이비 2를 보라. 돈이 좋고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어도 지나고 보면 꼭대기는 외롭다.


정신없이 보다가 정신 차리고 난 후에는 뭉클한 영화 보스 베베 2였다.




5.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  

https://youtu.be/58mGvTiQ4Yg

영화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는 26년 전에 마이클 조던이 벅스 바니와 손잡고 외계 종족들과 농구 한 게임을 해서 지구를 구하는 스페이스 잼의 후속 편이다. 학생들과 어른들의 우상 마이클 조던과 아이들의 우상인 벅스 바니가 만나서 농구로 빌런들을 무찌른다는 이야기.


마이클 잭슨의 노래 ‘잼’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마이클 조던이 나와서 농구를 한다. 거기서는 마이클 잭슨도 살아서 마이클 조던과 같이 농구를 하면서 노는 모습이 마치 꿈처럼 몽글몽글하다. 랩 하는 부분에는 크리스 크로스도 나온다. 걔네들이 누구냐면 미국의 량현 량하 같은 애들인데 빌보드 찍었었다. 랑현 량하를 크리스 크로스를 보고 따라 만들었을 것이다 박진영이.


당시 흑인 음악에 빠져 있었으니까 박진영이. 그래서 빌보드 찍고 세계 난리 난 크리스 크로스 같은 어린 노무 세키들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크리스 크로스의 점프는 지금 들어도 신난다. 하하하하하 학교를 안 갔어, 와는 다르다. 박진영이 너는 이번에 '잇지' 노래 가사도 똥망이야 알지. 프로듀서나 하란 말이야. 크리스 크로스 형제 중에 한 명은 얼마 전에 죽은 것으로 안다.


여하튼 그래서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는 근간의 농구 천재 릅신이라 불리는 르브론 제임스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인 에이아이 같은 돈 치들에게 빼앗긴 아들을 찾기 위해 벅스 바니와 농구팀을 이루어서 대결을 한다. 마이클 조던처럼 연기할 엄두가 안 났던지 온전하게 만화가 되어 벅스 바니와 투니버스 캐릭터들과 한 팀을 이루는데 그 과정이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빌런으로 워 머신 돈 치들이 나오는데 돈 치들은 첫 연기가 30년 전인데 그때 모습이 마치 지금 돈 치들의 1초 전의 모습 같다. 돈 치들은 날 때부터 저런 얼굴로 태어난 것 같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워너 브라더스의 작품들이 그대로 나오고 그 안으로 벅스 바니와 릅신이 만화가 되어 들어간다는 점이다.


매트릭스에서도, 매드 맥스의 그 장면에서도, 킹콩과 해리포터에도, 그리고 왕좌의 게임에서도 똑같이 용을 타고 나온다.  이런 장면 너무 재미있고 좋았음. 다시 실사로 돌아온 릅신. 실사, 2D, 3D의 완벽 조화. 시청 고고고.




6. 발신제한

https://youtu.be/WSmgHodVqDk

영화 발신제한을 보면서 든 생각은 빌런에게 제발 사연을 주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그저 돈이 좋은 똘아이가 폭탄 설치하고 끝으로 치달았으면 한다. 빌런에게 딱한 사정을 주고 복수를 위해 이런 일을 펼치지 말고 그냥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이코패스라서 그냥 돈이 필요해서 재미로 폭탄을 설치하고 사람을 죽여줬으면 한다.


발신제한의 연기들을 보면서 호평이 가득한데 나만 보면서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경찰들이 미운 건 알겠는데 정말 너어어어어무 무능하고 답답하게 연출을 했다. 왜 이러는지 당최 모르겠네.


제네시스 광고하는 김에 버튼을 누르면 창의 한 편에 홀로그램으로 아내와 대화를 하고 다른 버튼을 누르면 비상약 상자가 튀어나오고, 또 다른 버튼을 누르면 수륙양용차가 되어서 바다가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질주를 하다가 바다에 뛰어들어 붕 하며 바다 위를 달려가고, 어떤 버튼은 날개가 나와서 그만하자.


아무튼 자산어보 한 번 더 봤는데 조우진 역시 대박임. 아 진정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라.




7. 노바디

https://youtu.be/zeWm0Snl-Fo

질질 끌지 않는다. 답답함이 없는 테이크의 향연. A급 바로 밑까지 바짝 다가온 B+급의 액션이라 더 마음에 들었던 영화.


일상에서 늘 보던 중년 아저씨의 이유 불문 악당을 향한 차별이 없는 통쾌한 타격을 영화 마지막까지 보여준다. 존 윅의 스핀 오프라고 까지 소개하는 ‘노바디’의 빌런들은 어쩌면 존 윅에게 깔끔하게 당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카타르시스가 오랜만에 팍팍 터져 나왔던, 존 윅이 이성을 잃게 만든 게 기르던 반려견이었다면 하치에겐 딸이 아끼던 반려묘의 팔찌가 사라지면서 폭발하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분리수거를 하며 출근 후에 책상에 앉아 엑셀이나 하는 반복의 매일을 보내는 허치. 어느 날 밤 집에 강도가 들어와 아들 대치를 하지만 허치는 저항 없이, 저기 돈 있으니 가져가라면서 그저 강도를 보내준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또 주위 모든 이들에게 무능하고 나약한 아버지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허치의 선택을 손뼉 쳐주고 싶다. 그렇잖아, 영화지만 현실과 타협을 한 장면이었다. 아버지로서 어쩌면 가장 바람직하고 멋진 모습이 아닐까. 생활을 ‘유지만 하고 있다’고 속상했던 때가 그리운 지금은 ‘유지만 하면 좋겠어’가 된 요즘이다. 살도 계속 찌는 사람들이 늘어나 ‘유지만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허치가 인내를 가지며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삶이든 살이든 유지하기 힘든 요즘에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잘 흘러가나 싶지만 끔찍이 사랑하는 딸의 고양이 팔찌가 사라지며 허치는 코만도가 된다. 일반형 히어로가 되어 펼치는 허치 이야기. 맨손 격투는 물론이며 총기며 일상의 생활 도구의  무기화, 부비트랩을 사용하는 것까지 막힘없이 흘러간다. 에이 특공대처럼 만드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점점 허치에게 우리는 빠져든다. 이 아저씨 도대체 뭐야!


그리고 귀를 너무나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다. 라이프 이즈 비치를 시작으로 왓 어 원더풀 월드나 하트브레이크 등,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산타 에스메랄다 버전으로만 알고 있던 ‘돈 렛 미 미스 언더스투드’가 니나 시몬의 버전으로 나올 때는 와아 음악들이 리발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동네 아저씨의 빡침으로 시작하는, 내용을 떠나 신나고 통쾌한 액션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들로 버무려져 90분이 즐거웠던 영화. 나 같은 인간이 좋아할 만한 영화 ‘노바디’였다.


*

지난주 할리우드 소식에 노바디의 밥 오덴커크가 영화를 찍다가 의식이 없어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8. 괴기맨숀

https://youtu.be/y8ZT2xXp414

괴기맨숀은 올해 나온, 괴기맨숀 이전의 한국 공포 영화보다는 훨씬 좋았다. 한국 공포물로써 한국 공포가 지니는 민담, 설화를 무서운 이야기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놀래는 점프 스퀘어도 없고, 랑종처럼 굉장히 징그러운 장면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꼭 손이 쓱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영화다.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이어진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한 장면에서 한 번씩 만나거나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단 제목에서 흥미롭다. 괴기맨숀. 제목이 올해 나온 한국 공포 영화 중에서는 가장 궁금하다. ‘괴기’라는 단어가 던지는 기기묘묘하고 안갯속에 가려진 식인 하는 생물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의문을 자아낸다.


나는 모든 에피소드가 다 재미있었는데 마지막 김보라가 그 아파트 관리실에서 선배를 보고 선배! 하며 반가워하다가 선배의 뭔가를 보고 얼굴 표정이 굳어진다. 그 뭔가가 뭔지 모르겠네. 하도 금방 지나가버려서. 그리고 선배의 눈동자가 전부 검게 변하는 장면이 0.1초 나온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의 장점은 빠르다. 질질 끌지 않는다. 그리고 공포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게 장점이다. 또 아주 별거 아닌데 그게 별거 아닌 게 아니라서 무섭다. 요컨대 “자기야 나 여기서 목욕한다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라는 말을 계속하면 그게 공포다.


평소에도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로 계속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게 정말 무섭다. 또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데 우리 사랑했었잖아, 우리 사랑하는 사이였잖아, 라며 계속 그러면 굉장히 두렵다. 현실에서도 공포의 질과 종류는 다양하다.


마지막 그 뭔가가 뭘까.




9. 블랙위도우

https://youtu.be/BOEVQSprNv4

이 영화의 포지션은 어벤져스 2를 지나 시빌 워와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중간에 있다. 그래서 나타샤는 동생에게 받은 그 조끼를 엔드게임에서 죽기 직전, 인피니트 워에서 줄곧 입고 나온다.


초반의 반딧불은 마지막의 반딧불로, 초반의 어린 나타샤와 어린 옐레나가 우리는 거꾸로 보인다고 했나? 아무튼 거꾸로 대사는 마지막에도 한다. 그렇게 블랙 위도우는 가족이라는 것에 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마블의 영화답게 코믹한 부분을 곳곳에 배치했다. 그걸 찾아내는 재미 또한 관객의 몫이다. 데드풀 2에서 슈퍼파워들의 착지를 꼬집는 부분을 옐레나도 꼬집었다. 그리고 한 번 따라 한다. 그건 마치 엘사가 처음 나왔을 때 모두가 엘사엘사하며 렛 잇 고를 부를 때 흥, 하며 유행은 따라가기 싫어! 하지만 혼자일 때 레 잇 고,를 한 번 몰래 불러본다. 그런 심리와 비슷하다.


만약 스탠 리가 살아있었다면 어느 장면에 깜짝 등장했을까. 아마 나타샤와 옐레나 둘이서 작은 슈퍼에 들어가서 내가 옳니, 네가 나빠, 같은 대사를 할 때 계산하는 점원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 둘의 대화가 레드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였으니까.


나타샤에게 여권을 스무 개씩 만들어 주던 친구에게 이런 이름은 강아지 이름 같잖아?라고 하는데 쿠키에서 나타샤는 죽고 옐레나가 차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내리는데 그 이름을 부른다.


마블 시리즈는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은데 또 나오면 보게 된다. 당연하지만. 아직 완다 비전이나 로키 시리즈도 못 봤는데 세계관이 넓어도 넓어도 너무하네.


이 영화에서 좀 재미있는 건 레이첼 와이즈의 얼굴은 플로랜스 퓨의 얼굴과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을 다 섞어 놓은 것처럼 닮았다. 또 나타샤를 잡으려는 로스 대령인가 로스 장관은 아주 오래전, 에드워드 노튼의 헐크 시절의 로스 대령이었는데 마블 시리즈에 줄곧 나온다. 그때 딸로 리브 타일러가 나왔는데 그동안 리브 타일러는 왜 소모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마블 영화는 보고 나면 영화 이외에도 할 이야기가 많음.




10. 리플리

https://youtu.be/oo9UHZp3V2A

코로나 확진자로 극장에도 갈 수 없고 요즘 영화에 지칠 때는 예전의 영화를 보면 된다. 다시 봐도 재미있는, 아니 다시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 ‘리플리’다.


우선 이 영화에서 주드 로의 미모는 가히 천만 불 짜리다. 영화에는 가장 예쁠 때의 케이트 블란쳇과 귀넷 풸퉈뤄우가 나오지만 주드 로가 다 이겨버릴 정도다.


맷 데이먼의 리플리가 디키(주드로)를 죽이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치닫는다. 야망을 위해 점점 거짓을 확대시키고 또 확대시킨다. 상대방 앞에서 디키인 척 행동하는 리플리와 혼자 있을 때 괴로워하는 리플리의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또 몰입된다.


피아노 조율사로 호텔 보이로 미래가 캄캄한 리플리는 이 지옥 같은 뉴욕을 떠나고 싶다. 별 볼일 없는 리플리가 선박 재벌의 제안을 받으며 달콤한 유혹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을 죽였지만 거짓을 늘어놓을수록 아름다운 여인과 자유와 쾌락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돈이 달콤한 인생을 살게끔 한다.


무엇보다 디키의 친구로 나오는 프레디 역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연기가 압권이다. 리플리를 경멸하듯 쳐다보는 눈빛, 멸시하는 말투, 가난한 자와 선을 긋는 행동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프레디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리플리에게 조각상의 머리로 프레디 머리는 작살이 나고 만다.


1999년 ‘리플리’의 원작은 훨씬 이전에 알랭 드롱의 ‘태양은 가득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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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슬픈 음식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라면은 슬프기만 하다.

상우와 은수의 첫 날밤의 팡파르는 라면과 함께 시작된다.

소주와 몹시 어울리는 라면은 슬프다.

화분의 꽃이 더디게 피듯 상우의 시간은 차근차근 흘러가지만 은수의 시간은 라면처럼 금세 끓어오른다.

후루룩 입으로 빨려 올라오는 라면은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이는 냄비의 허무를 나타낸다.

“라면이나 끓여" 은수의 말에 이제 고작 라면이나 끓이는 놈이 된 상우.

누군가와 마주하고 먹으면 더 없는 행복한 라면이지만 혼자 먹으면 더 맛있기에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끓이는 라면은 슬프다.

결국,

상우는 은수에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라면은 그 렇 게 슬프다.

라면이 끓어오르면 비로소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일수록 자극은 극에 달한다.

라면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젓가락으로 자꾸 휘젓게 된다.

몸부림을 바라는 라면은 외로워서 슬픈 음식이다.

라면의 많아진 종류만큼 슬픔도 전부 제각각이다.

오늘도 우리는 라면을 마주하며 슬픔을 젓가락질한다.

https://youtu.be/JJTTr17zaMM


영화 속에서는 라면이 그렇게도 슬프게 나온다.

선생 김봉두에서 불쌍한 녀석 소석은 라면이 그렇게 좋다.

김봉두가 김치 없는 라면이 맛없어서 먹지 않을 때 소석은 그 맛없다는 라면을 맛있게 허겁지겁 먹는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면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인다.

황비홍 1편을 지금 보면 이연걸 대역의 티가 너무 나는 것과 비슷하다.

소석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 김봉두에게 바칠 삼을 캐다가 들어와서 부뚜막에서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는다.

라면은 소석의 삶을 파고든 곰팡이와 같다.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https://youtu.be/yKDQz_v1VDQ


천하의 나쁜 노무 새끼 필제는 화를 내도 웃기고, 짜증을 내면 더 웃기고, 웃기면 대책 없이 웃겼다.

세상 무서울 것 없고 껄렁해 보이는 그 역시도 그럴수록 더 슬프다.

그런 필제가 좋아하는 건 왕뚜껑 라면.

필제는 기가 찬 동네에 왔지만 기똥 찬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 중심이 슬픈 라면이 있었다.

라면은 필제의 슬픔을 같이 했다.

하지만 필제에게 라면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끝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화면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https://youtu.be/1FuzcwV3AN4




라면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다 밥상 다리가 힘이 없어 기울면서 라면이 전부 방바닥에 쏟아졌다.

그저 멍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저 멍하게.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밥은 고사하고 씻고 옷을 입고 마을버스를 타고 대로변까지 나가서 다시 416 버스를 타야 한다. 늘 그 버스를 그 시각에 타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터져 나간다. 양보라든가 친정을 찾다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을 상상하기도 두렵다. 버스 문에 매달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올라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버스 속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숨 냄새와 비 비린내로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옥철에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버린다. 보이는 건 사람들의 등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달린 머리통뿐이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회사에 도착하기를 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야 회사에 제대로 출근할 수 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아야 하고 앞사람의 머리에서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걸 참아가며 서울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7년째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편지를 쓰며, 힘없이 서 있던 나를 안아주며 나의 길을 두려움 없이 상경했지만 현실은 나의 발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미래인 현재에 오직 희망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신을 잘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이 세계에서 홀로 되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가기만 하는데 나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하워드와 앤이 된 느낌이다.


마음의 심한 공백이 생기면 마왕의 노래를 들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에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마왕이 말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휘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라며 늘 나의 등을 토닥여 주었는데.

마왕도 가 버리고 남은 것이 없다.


이젠 지친다.

라면이 쏟아졌다.

밥상 위에서 흐르는 라면 국물이 바닥으로 퍼지는 꼴이

마치 머리가 터져 뇌하수체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https://youtu.be/CyT4Kjint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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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7-26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교관님 페이퍼에 오면 자주, 음식 사진, 먹을 거리 이야기가 올라와서 좋은데 이 글 유독 좋습니다!!

전 영화는 안 봤지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요 대사 상황 안에서 들으면 더 뇌리에 박히겠어요

교관 2021-07-27 12:28   좋아요 0 | URL
허진호 감독의 예전 영화들을 좋아해서 봄날은 간다는 몇 번 봤어요 ㅎㅎ. 이영애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예쁘고, 유지태는 뭐야? 할 정도로 젊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