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호불호가 나뉜다는데 불호인 것은 아마도 지루한 장면과 어떤 부분의 연기, 어디선가 본 듯한 영상과 내용, 앞으로 나갈수록 보이는 결말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특히 1번 노인이 혼자 게임에 참가했을 때 눈치를 안 채려고 해도……


그러나 나처럼 오징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처럼,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경험이 있지 않았을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오징어 게임 속에서처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생활 같은, 요컨대 군대에서 훈련을 나가기 전에 잠시 대기 탈 때 저 앞에는 조교들이 진을 치고 있고 통과하지 못하면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 기다리는 동안의 두려움과 초조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또는, 취업의 문턱에서 면접관 앞에 서기 직전의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초조와 불안, 옆의 응시자들은 모두 나보다 스펙이 놓아 보이고 다 자신감 있는 모습에 점점 조여 오는 압박감. 이런 모든 총체적 분위기를 오징어 게임을 보며 예전의 그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좀 살아본? 사람들은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인간성을 다 보여준다.


도대체 인간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인간이 가지는 대부분의 감정이 다 나온다. 폭력성, 이타성, 배려와 욕심, 배신, 협동심, 본능, 인간의 처절한 본성이 툭툭 튀어나온다. 어제까지 내 편이었는데 오늘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죽이려 든다.


좀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좀 살아보니 인간의 더러운 모습, 인간 그 너머의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배신이라는 건 나를 모르는 생판 남이 아니라 나를 아주 잘 아는 나와 친한 동료가 배신을 하고 사기를 친다. 그러니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배신 때문에 빚을 떠안게 된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 커져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일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살인이라는 것도 게임으로 교묘하게 덮으면 계속할 수 있다.


챔피언 권투 선수가 있다고 치면 도전하는 상대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안심이 된다. 정보가 노출이 되어 있으니까 대비가 된다. 하지만 정보가 전혀 없는 신인이 올라오면 당황하고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시간 앞에 놓이면 두려움에 떨고 초조함이 정신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면 죽음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타인을 죽이려 든다.


초반에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혼비백산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마치 코로나 시대 초기에 그렇게 두려워하던 감염병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이제 무뎌진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 속 사람들은 온통 빚을 지고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어서 게임을 하러 왔다. 처음에는 저기서 죽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동료라는 생각에 놀라고 소리치고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 저 사람들이 없어지면 내가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거액의 돈까지 준다.

주인공 기훈은 지질하고 무엇하나 잘하는 것 없는 루저다. 그런데 루저이지만 또 인간에 대한 믿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어디 하나 쓸모없는 인간에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지질한 인간이다. 소심하고 작은 일에 감정의 높낮이가 조절이 되지 않고 화가 나도 화를 낸 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무서워 화를 내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그래도 약간의 오지랖은 있어서 조깅을 하다 폭염에 쓰러진 사람을 옮겨 119에게 인계하기도 했고, 박스 할머니의 박스를 옮겨주고 주머니에 오천 원을 꺼내 음료수 드시라고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지갑을 주워서 돈이 있어도 꺼내지 않고 그대로 지구대에 갖다 줘서 주인이 나타나 고맙다는 소리도 들었다. 정말 지질한 인생이고 가진 것은 개뿔도 없는데 남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는 그런 인생이다. 영화 속 기훈과 참 닮았다. 중요한 건 영화 속 기훈은 무쓸모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닮은 것에서 놀라지 않았다.


이런 무쓸모 인간인 기훈이 주인공인 것은 그나마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일 것이다. 또 알게 모르게 동료들에게도 믿음을 준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두 가지를 가지면 살아남는다. 그것은 ‘힘’과 ‘믿음’이다. 그런데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 덕수는 힘을 쟁취하지만 믿음을 얻지 못해 결국 죽고 만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서로가 동료라는 생각이 없다. 동료라면 다 같이 살아야 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다 같이 살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한 집 건너 누가 죽었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이 대거 자살을 했는데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몇 있을까 싶다. 만약 죽기 전에 길에 나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선뜻 만원 하나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으니까.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가 너무 놀란 기훈과 가장 닮은 부분은 영감님과 일대 일로 구슬치기를 할 때 영감이 치매가 걸렸다는 걸 알고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그만 영감을 속이는 그 모습이 닮아서였다. 나는 주위에서 안 그런 척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막히면 실은 나 살고자 다른 사람을 구덩이로 몰아넣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기훈이 잠시 고민하더니 영감님을 속이는 그 장면, 그 처절하리 만치 생과 사가 갈리는 그 순간의 기훈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나를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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