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거의 다 봤으며 봤던 영화를 계속 보는 편인데 하나와 엘리스는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팬심으로 쓴다.


이와이 슌지의 립반 윙클의 신부가 나왔을 때 혹평이 가득했다. 이와이 슌지와 서태지와 보브 딜런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냈을 때 혹평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분 나쁠 정도로 즐긴다는 걸로 알고 있다.


풍경 사진보다 보도사진이 존경받는 이유는, 새벽의 일출을 촬영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가 멋지고 아름답고 잘 나왔다는 ‘감탄’이 있다. 하지만 보도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상하거나, 보기 싫거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무슨 사진이지? 하는 다양한 반응들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기 때문에 보도사진이 존경을 받는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뉜다면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때 나는 당연하지만 전자에 속한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처음 접하고 그 사람의 영화는 소설처럼 읽혀서 피부로 흡수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두와 피크닉으로 빠져들어간 이와이 월드에서 만난 릴리 슈슈에서 하늘을 날고 싶었던 츠다를 두드려 깨워 밝은 모습의 하나와 엘리스로, 첫사랑을 찾은 사월의 이야기를 넘어 조금은 답답하지만 립 반 윙클의 신부를 거쳐 스왈로우 테일 버터 플라이의 미래에서 모두가 애벌레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잘 만들어야 한다. 늘 하는 말,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영화라는 예술은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예술에 신세를 진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의상, 건축, 음악, 미술 이 모든 예술이 영화보다 선배다. 영화는 이 선배 예술들에게 조금씩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붙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와이 슌지는 아주 착실하게 그 점을 이행하고 있다.


릴리 슈슈에서 마지막 장면.

공연을 시작하기 전의 장면에서 엑스트라 수천 명이 공연장 앞에 모여 대기를 한다. 이와이 슌지는 그 수천 명에 달하는 엑스트라에게 전부 다른 대사가 적힌 대본을 준다. 그리고 누가, 어떤 장면으로 촬영이 되어 영상으로 나올지 모르니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와이 슌지는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고, 현재 만들고 있고, 앞으로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이와이 슌지의 힘, 내지는 록웰 아이즈가 가지는 특별함이다.


위에서 사진의 예를 든 것처럼 감독의 사상이나 의도를 떠나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일본 특유의 말보다는 이와이 슌지 특유의 음악이 영화 속에 가득하다.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 중에서 영화음악이 제1순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보는 입장은 이와이 슌지 만의 특별한 영화음악은 그의 영화를 완성하는 마법이라고 생각한다.


립반 윙클의 신부의 미나가와는 마시로가 배우라는 사실이라는 걸 들었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듣고 나면 미나가와는 사람들에게서 외면을 받았지만 마시로는 그런 미나가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한다. 미나가와는 이런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같이 있어도 좋다고 느낀다. 그것에 여자 남자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사랑이든, 친구든 그것은 상관없다. 미나가와는 마시로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웃음이 많다. 그 모습은 하나와 엘리스에서 아리스가 혼자서 인상을 쓰며 밥을 먹는 것과 마크와 하나와 함께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과연 내가 큰 불행이 닥쳤을 때 나를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몇이나 있을까. 마시로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와이 슌지는 불가능할 것 같은 것을 해내고 만다.


립반 윙클의 미나가와를 당신이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당신의 시선에 달린 것이다. 타인에게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봐주길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다. 타인을 보는 시선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미나가와는 마시로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겨 달라고 말한다. 내 주위에 그렇게 나에게 말해 주는 이가 있을까.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타인에 대해 편견만을 지니고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달라진 나를 발견함이다. 전과 후의 내가 전혀 변화가 없다면 책 따위는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보는 내내 알 파치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영화 대니 콜린스에서 동료이자 친구인 매니저가 아들인 톰에게 피아노를 건네주며 말한다. 대니는 천성이 착한 사람이다. 하는 일마다 그르쳐서 그렇지. 그런 대니를 당신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개연성이니 맥락이니 전개니 불안이니 같은 단어로 이와이 슌지를 논하지 말자. 적어도 당신이 이와이 슌지의 팬이라면 의심하지 마라. 미나가와는 당신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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