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집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이기에 나만의 방법으로, 나만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또 인간이다. 인간이란 그래서 참 알 수 없다. 집에 십일만 있으라고 하면 지겹고 심심하기만 하다. 좀이 쑤셔 미칠 것만 같다. 아무리 집이 좋아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집이란 악착같이 들어가고 싶은 곳인 동시에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한,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소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갈 때는 집으로 간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도착지의 숙소가 자신이 지내는 집에 가까운 형태를 띤 장소를 말한다. 호텔이나 모텔 같은 박스형 숙소에서 벗어난 곳을 찾아서 간다. 내가 지내는 집처럼 생긴 구조물에서 숙박하려고 애를 쓴다. 여행하다 보면 집이 또 그리워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의 느낌과 기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장소라 사람의 손때가 타고 들숨과 날숨이 오고 가야 깨끗하게 유지가 된다. 며칠 비워두고 여행을 다녀오면 먼지가 쌓이고, 한 달 이상 비워두면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형태를 가진 어떤 물품이든 가만두면 더 오래가고 깨끗한데 집은 그 반대다.
집이란 무엇일까. 집은 우리에게 너무 힘들면 요만큼 기운을 내봐,라고 한다. 절대 이만큼 힘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들어오면 수고했다며 편하게 잠들라고 한다. 나에게 집은 그런 의미다. 집은 내 아버지의 등이자 엄마의 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되면 비록 떠나야 하지만 돌아오면 좋은 느낌이 집이다.

멍하게 있는 걸 좋아하는 난 (오래된 집 의) 벽 뷰 또한 좋아한다. 눈앞에 벽이 있으면 앞이 꽉 막혀 답답하다고 하는데 나는 벽을 쳐다보고 있는 게 좋다. 불멍, 바다멍보다 벽멍이다. 벽은 갑갑할지 모르나 벽이 없다면 나 같은 소심한 자는 불안하다. 벽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벽이 없으면 기댈 수도 없어서 더더욱 불안하다. 사람들은 벽은 썩 유쾌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벽이 없다면 세상은 끔찍할 것이다. 그런 안전한 벽, 우리의 벽, 민주주의 벽을 주말에는 더 크고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살면서 이토록 간절하게 기다려 본 적이 있었는가. 극우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을 수 있는 우리의 거대한 벽을 세워 헌제에게 보여줘야 한다. 의식의 벽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날 수 있게. 이젠 집으로 가고 싶다.

의식의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