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해안도로가 길어도 신호등이 없고 차들이 7, 80킬로미터로 달리기 때문에 10분이나 15분 정도면 끝이 난다. 해안도로가 끝이 나면 신호등의 연속이다. 다운타운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안도로 끝에 처음으로 보이는 건물이 어린이집이다. 아이들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물론 그저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어느 공포 영화에서 누군가 댓글을 달았는데, 아이들은 늘 착한데 왜 괴물로 변하는, 같은 글이었다.        

       

 아이들이 착하다는 건 너무나 심한 편견이다. 가장 악한 존재가 가장 순수할 때의 아이들이다. 벌레 죽이는 재미를 들이면 다른 재미를 찾을 때까지 벌레를 잡아서 죽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죽이는 재미를 알게 되지 않는 건 훈련과 교육 때문이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선과 악의 구분이 가능하게 되는 게 어린이들이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다는 것을 착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분쟁 지역 국가에서는 사격 연습을 어린이 때부터 시킨다. 그래서 상대국 군인이 망설일 때 어린이는 교육받은 대로 방아쇠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긴다. 무라카미 류의 희망의 나라 엑소더스에서도 세상을 지배하려는 미성년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단지 물리적인 힘이 약할 뿐이지 착한 것과는 무관하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말을 한다. 엄마가 못생겼으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큰 소리로 말을 해버린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런 아이들이 좀비 영화 속에서 좀비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영화는 더 무섭고 더 공포스럽게 된다. 배 속에 있을 때 엄마가 좀비에게 물려 태어날 때부터 좀비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어른들보다 면역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좀비에게 물려 금방 좀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스티븐 킹의 한 영화에서는 한 마을에 아이들만 산다. 어른들을 어린이들이 다 죽여 버리고 만다. 마을에 들어온 성인 남녀를 아이들이 죽이려 든다. 생각만으로 너무 끔찍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살해한다니. 여자 주인공으로 아주 젊을 때의 린다 해밀턴이 나온다.        

       

 아이들은 무력한 존재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손길이 항상 필요하다. 어린이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기 때문에 잠이 오는데도 하품을 하면서 한숨을 쉰다. 바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다면 이 도시의 다운타운에 폭력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된 가장 연약한 존재다.              

 

 해안도로를 벗어나 다운타운의 진입로에 들어섰다. 들어오자마자 신호등이 기다리고 있다. 어김없이 빨간불에 걸렸다. 여기서 보면 저기에 마을의 작은 공원이 보인다. 공원은 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은 석성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장수가 마지막까지 버틴 성이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밀리고 밀리던 왜장이 데리고 있던 말도 다 잡아먹고, 성의 벽면을 채우고 있던 흙, 적토를 끓여서 먹어가면서 목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방어를 해야 하니 성벽을 돌로 쌓았다. 성의 이름은 직성으로 직성의 벽면은 돌로 바뀐 석성 형태가 되었다. 토성에서 석성으로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일대는 벚꽃이 봄이면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다.               


 그래서 불리는 이름은 직성공원이다. 직성공원은 오래전에 그림 그리기 대회를 많이 하던 곳이었다. 현재는 국가정원도 있고 크고 작은 아름다운 공원이 이 도시에도 수십 곳이 조성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직성공원 하나뿐이었다. 도시락 먹기 좋고, 꼭대기에 올라서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하기도 좋아서 많은 어린이들의 미술 대회가 열렸다. 나는 그 대회에 종종 참여했던 어린이였다. 그림은 곧잘 그렸다. 나는 학교 대표로 그림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집에서 그렇게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어린이 때 그림 잘 그려봐야 그게 죽 이어지지 않는다고 부모님은 믿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은 언제부터 사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모르는 사이가 부모자식 간 일지도 모른다. 우리 애는 안 그래요. 같은 말을 하는 부모는 참 자식에 대해서 무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아주 비슷하게 흐른다. 아이를 낳으면 옆에 끼고 다닐 정도로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면서 친구를 만나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사회와 부모에게 반항을 하며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인간관계에 허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내 아이의 얼굴을 묘사하라고 하면 잘 하지만 부모의 얼굴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어째서 이렇게 모순에 모순을 거듭할까. 사랑의 결정체 아이는 섹스를 통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섹스는 금지어이며 묘사 또한 해서는 안 된다. 고귀한 행동인 동시에 퇴폐적인 인간욕망의 결정체가 섹스다. 섹스는 빛이며 어둠이다.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며 인간의 삶을 보내고 있다. 그게 인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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