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씨육공삼 이승환 2집이야. 근데 비씨육공삼이 뭔 뜻 이래?ㅋㅋ 승환 옹의 1, 2집은 여름이 안녕을 고하고 계절이 옷을 갈아입으면 꺼내서 듣게 되는 거 같아.


어릴 때 집에 마당이 있었거든. 겨울의 마당은 차갑지. 지나치게 세제를 많이 넣은 빨래처럼 새하얀 마당은 참으로 냉랭했어.


하얗게 표백된 세계였어. 등에 담요를 덮고 귤을 까먹으며 하얗게 표백된 마당을 보며 이승환의 앨범을 듣는 거야. 그저 멈춰있는 하얀 마당의 뷰를 보며 승환 옹의 노래를 듣는 게 지겹지 않았던 거지 ㅋㅋ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카페나 뭐 이런 데에서 뷰를 따지지 않아. 논뷰도 좋고, 앞이 막힌 골목뷰나 벽돌뷰도 멍하게 보고 있으면 그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라서 좋더라고. 카페에 승환 옹의 노래가 나온다면 더 좋고.


2집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은 히트를 친 다음 아직까지 여기저기서 불리고 있잖아. 좋은 노래는 세대와 시간을 구분하지 않는 거 같아. 영화에서 타임슬립 이야기가 많은데 노래가 시간을 후퇴시키는 기묘한 메타포가 아닐까 싶어.


1집의 쓸쓸함과 고독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 같은데 2집은 좀 더 여러 사운드를 담아냈어.


“본격적인 음악을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만 했어요. 경제적인 여건은 물론 변변한 PR계획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팬들에게 제 노래를 직접 들려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칠 때까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그대로 만약 사람들이 외면한다면 그때는 음악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1991년 3월 당시 인터뷰를 했어.


앨범 표지에서 엘리베이터 안의 고개 숙인 여자와 그 앞을 스치는 승환 옹으로 보이는 남자의 스침은 어떤 표현일까 하며 예전에는 한참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 생각으로 끝내기 안 될 것 같아서 그 생각을 단편소설로 써보기도 했어ㅋㅋ


2집의 노래들을 죽 듣다 보면 인간과 인간의 만남, 해복 그리고 헤어짐, 추억 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더라고.


오후의 아무도 없는 시간. 담요를 등에 덮고 귤을 까먹으며 마당을 보며 이승환의 노래를 들었다. 조금 있으면 동생이 엄마와 집으로 오고 그러면 이 고요한 자유의 시간이 깨질 것이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이 시간을 즐겼다. 마당의 화단에 있는 나무의 마른 가지가 바람에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것마저 그림처럼 보였다. 새 한 마리 없고 누구 하나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세상은 분명 이런저런 이유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을 텐데 이렇게 고요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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