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인 좋아하지? 이 검은 버섯을 먹다 보니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 생각나더라 ㅋ 기형도의 시집의 제목은 기형도가 지은 게 아니야.
기형도 시인을 좋아하는 스니들은 다 알겠지만 기형도는 자신의 적은 시를 아기처럼 안고 출판사로 가던 도중 제목도 짓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잖아.
기형도 시인의 시집 제목을 지은 사람은 당시 문지에서 활동하는 평론가 김현 선생이 지었어. 김현 평론가의 평론을 듣던 80년대 대학생들은 딱딱할 줄로만 알았던 평론이 문학이 된다는 것을 느꼈지.
요즘은 신형철의 평론이 그렇지? 신형철의 평론을 읽고 있으면 아아 하며 빠져들잖아. 이건 평론이 아니야 문학 그 자체야 하면서 말이지 ㅋㅋ
기형도가 파고다극장인가?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을 당시 김현 평론가가 기형도의 가방을 보니 시집을 내기 위한 시들이 있었어. 그때 그 시들을 보고 김현 선생이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출간을 했지.
잎은 혀를 말하며 그 혀는 이미 검게 되었고 그 입은 죽은 자의 입속을 말하는 거야. 기형도의 시를 읽고 있으면 창밖으로 보이는 비를 보며 적은 시가 아니라 창밖으로 나가서 비를 맞으며 시를 적은 것 같은 느낌이지?
거기에 두터운 모호함과 이성의 손길로도 잡히지 않는 무의식의 신호와 예측 불가의 미지를 향한 구애, 두려움의 대상인 낯선 것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우리는 어둠 속 미아로 헤매는 존재이며 죽음과 상실을 미치도록 탐닉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난히 기형도의 젊은 죽음은 비극적이야. 기형도의 시는 몽상과 심연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김현 평론가가 이런 기형도의 내면을 들어가 본 것처럼 알고 제목을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지은 것은
김현 평론가 역시 기형도와 같은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해. 기형도의 시가 세상에 나온 그다음 해 김현 평론가도 기형도를 따라갔지. 김현 선생은 기형도를 무척 좋아했데.
기형도의 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으면 인간은 사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존재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게 되는 게 있어.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갈 곳이 없음에도 버스에는 계속 사람들이 올라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