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뉴스를 접했을 때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체온이 측정이 되지 않을 저도로 온혈질환을 앓다가 사망을 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이건 분명히 뭔가 이상한 구조에서 탄생한 사고사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일을 하도로고 내버려 두었을까. 설령 아르바이트 청년이 손을 번쩍 들어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곳에서 누구 하나 그 청년에게 조심 그리고 음료 같은 온열질환에 대응할 수 있는 당부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올해 이전의 여름보다 온열질환을 더 조심해야 한다. 온열질환에 걸리면 병원에 실려 가야 하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예전 같지가 않아 졌다. 이상해졌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온열질환이 걸리지도 않겠지만 이들은 병원에서 바로바로 잘 받아 줄 것이다. 그러나 20대 에어컨 아르바이트 청년 같은 경우는 병원을 찾아서 가도 쉽지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시대에 와 있다. 잘못되어도 너무나 잘못되었다. 하지만 잘못되었다고 쉽게 말을 할 수도 없다. 한 대표는 자리에 나와서 할 말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전에 할 말을 했다가 전부 입틀막을 당했다. 이럴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생계가 걸려 있어서 지금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 역사관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나서서 잘 못 되었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한국은행에서 급전으로 90조를 당겨 썼다는 기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문제의 관심을 전부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티브이에 출연한 김태효의 말도 안 되는 발언으로 모든 관심이 그곳으로 쏠리고 있다.


20대 청년은 푹푹 찌는 곳에서 에어컨 아르바이트를 하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졌다. 작업하는 곳의 온도가 얼마나 높은지 체온이 고온으로 측정불능상태였을까. 그저 어지러워 쓰러졌는데 3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기사들은 하나 같이 폭염에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결말로 끝을 맺었지만 아르바이트 청년이 온열질환으로 숨을 거둔 건 회사 내지는 사회의 구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트럭기사들도 자신의 운행을 콘텐츠로 제작해서 유튜브로 올려 자본을 벌어들인다. 잘 생긴 사람과 예쁜 사람이 잘 놀기만 해도 그 영상을 유튜브로 올리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돈을 벌어들인다. 예전과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잘 나가는 직업이 아니면 대체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도 ‘나’ 자체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돈을 모으는 능력이 된 시대다.


이론은 분명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풍족하게 생활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더 어려워졌다.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들고 콘텐츠를 제작할 정도로 상상력을 밖으로 꺼낼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상상력이라는 게 너무나 협소하고 낮게 좁아서 결국 누군가가 했던 콘텐츠를 모방하게 되었다. 모두가 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는 없지만 20대 청년이 에어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폭염에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라가 자극적이고 흥한 것, 좋은 것들만 사람들이 보는 티브이나 유튜브로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호러블 하고 테러블한 이야기들이 널려 있다. 권력자들에 대해서 안 좋은 걸 안 좋다고 이야기를 하면 글이 사라지거나 불이익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무라카미 류의 [자살보다는 섹스]를 보면 일본은 8,90년대에 이미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렸다. 나라가 부추겼다. 그 결과 일본은 현재 혹독한 앓이를 하고 있다.


류가 뉴욕의 일본 음식점에서 아구찌개를 먹고 있는데 누군가 류를 알은 채 하면서 스포츠 신문 뭉치를 건네주었는데 신문 앞면 전체가 미야자와 리에와 스모 선수 다카하나다의 기사로 채워졌다. 일본의 모든 스포츠신문은 ‘전 국민이 축복’이라는 표제 기사가 실렸다.


과연 진짜 전 국민의 축복일까. 류는 생각했다. 당사자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일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한가하고 평화롭다 보니(실은 한가하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뉴욕에 있다 보면 일본이 여러 면에서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들의 약혼을 과대 포장하며 무슨 행복의 전형인 양 만들어놓았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 파견된 PKO 대원의 가족들이라면, 우리는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는 마음일 것이다. 막 실연 당한 여자도 내가 지금 그런 일에 눈을 돌릴 마음이냐 싶으리라.


그러나 밝은 내용의 기사에 굶주려 있는 일본에서는 어떤 종류의 전통적인 강제 행위가 존재한다. 슈퍼스타끼리의 결혼은 예전에도 없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한 것이 이미 80년대 말, 90년 대 초다.


행복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명해지는 것, 스타로 얼굴이 팔리는 것, 나름대로 돈이 들어오는 것, 유명인과 결혼하는 것, 결혼 그 자체, 이런 것들을 행복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고 했다.


지금은 더 그렇다. 현재 한국도 이혼 비중은 늘어났지만 결혼 비중은 줄어들었다. 결혼을 결코 행복의 목적에 집어넣지 않는다. 결혼을 했더라도 딩크 족으로 살아가는 부부가 많다. 사회는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것들이 인공지능을 앞세워 인간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했다, 인공지능이 이런 기능이 생겼다 같은 기사는 앞다투어 내보낸다. 이는 사람들이 원하는 밝은 내용의 기준에 속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해 주리라 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방향에 맞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청년들과 중년들은 점점 설 곳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제작을 해서 방영을 할 뿐이다. 사람들은 외면한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즐기지만 마음에 두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은 동떨어진 취급을 한다. 사람들이 클릭을 해서 보는 건 유튜브 쇼츠다. 짧고 강력한 자극이 있는 쇼츠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댓글도 열심히 단다. 나라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부추긴다.


그래야 나라가 잘못하는 일들에 대해서, 정부가 하는 못 미더운 프로그램에 대해서, 대통령 부부가 한 금품수수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한다. 도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부산엑스포에 들어간 그 천문학적인 돈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건 금기가 되었다. 누군가 자세하게 파헤쳐서 글을 올리면 대번에 제재가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밝고 재미있는 쇼츠만 봐라. 하는 분위기가 전반에 깔렸다.


그러다 보니 소외된 사람들이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숨을 거두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직 태풍이 한두 개 더 올 텐데. 작년 힌남노에 불안했던 사람들은 또 그 불안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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