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을 굽는데 토마토를 같이 구웠다. 토마토가 기름에 튀겨지듯 구워졌다. 촤르르 하는 기름에 타들어가는 소리가 듣기 좋다. 토마토를 한 입 먹으니 주욱 하고 토마토의 즙과 기름이 동시에 폭죽이 터지듯 터져 나왔다. 쓰읍 할 만큼 즙이 흘러나와서 만족했다. 만족하는 얼굴을 셀카로 담아 놓을 걸 안타깝다. 꼭 지나고 나면 후회를 한다.
누군가 그걸 무슨 맛으로 먹냐?라고 하면 내 맘이야,라고 말하겠다. 내가 먹을 건데 이렇게 먹든, 저렇게 먹든 무슨 상관이야, 내 맘이야.
서태지와 아이들의 [내 맘이야] 가사가 떠 오른다. [한숨을 크게 쉬면 날이 밝아와 치마를 둘러 입고 나가볼 거야, 난 신문을 보며 눈이 뒤로 돌아가 내가 이루려던 꿈에 네가 깔리진 마, 날 행복하게 만든 거라면 난 마당에 나가 잡초나 뽑아야지 말 시키지 마] 또 누군가 이 가사가 무슨 뜻이야?라고 말한다면 나도 몰라, 그냥 정말 멋진 가사야,라고 말하겠다.
구운 생선과 구운 토마토는 잘 어울리는 맛있는 조합이다. 이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요즘을 생각한다. 똥파리들만 들끓고 있으니 물이 깨끗할 리 없고 물이 더러우니 물을 마시고 배탈이 멈추는 날 역시 없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인데 아름답게 볼 수 없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슬픈 걸 슬프다고 느끼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것이겠지.
영어를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작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한다는 게, 그게 문제다. 문제는 늘 가까이 있다. 문제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그게 문제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에게 있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읽으랬더니 글자를 읽고 있다.
김민기 시인이 얼마 전에 작고하셨다. 김민기 하면 나는 [봉우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꽤 많이 들었다. 학창 시절 바쏘리, 오비츄어리, 메탈리카, 머틀리 크루 등 박살 나는 음악을 듣다가도 외로움이 폐 깊숙이 파고 들어올 때면 어김없이 봉우리를 들었다.
김민기의 그 울림이 가득한 저음이 폐를 가득 매운 외로움으로 밀고 들어왔다. 주로 암실에서 들었다. 나는 사진부여서 선배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럴 때 암실에서 청소를 하며 김민기의 봉우리를 들었다.
봉우리는 아주 묘했다. 친구들과 소리 지르고 달리고 놀다가도 봉우리를 들으면 나는 이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는 하찮은 인간일지라도 봉우리처럼 빛나는 거야, 뭐 그러는 것 같았다.
우리는 늘 봉우리를 찾아다니는 그런 존재인 거 같다.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 주겠지 뭐. 그러나 언젠가 알게 돼, 지금 내가 오르는 이곳이 바로 봉우리라는 걸.
김민기의 봉우리 https://youtu.be/3DMQc76GfzQ?si=Fzs5N4st_Ka7BZK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