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소매치기당한 발랄한 재수생 소녀와 권총으로 아내와 아내의 애인, 두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로맨스 같은 이야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컬러인데도 어두운 부분은 꼭 흑백 영화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감독인 이만희는 컬러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영화 속 흑백으로 보이는 부분은 이만희 고집 같은 부분일까 싶기도 하다.

발랄하다 못해 태양 같은 인영 역의 문숙은 이 영화로 데뷔를 했다. 이만희 감독은 인영의 행동과 말투를 각본대로 하지 않고 촬영장에서 청춘의 문숙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촬영하고 나서 문숙과 연인관계가 되고 부부가 된다. 이때 이만희에게는 전 처 사이에 어린 딸이 있었는데 이혜영이다.

문숙의 젊은 시절 연기가 대박이었던 [삼포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 영화를 재미있어서 몇 번 봤는데 백일섭과 문숙이 티격태격 타누는 대사가 아주 재미있다. 삼포 가는 길의 마지막 장면에서 문숙이 울면서 먹었던 삶은 계란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계란일 것이다.

태양 닮은 소녀에서 재미있는 장면은 이 당시에도 서울은 북적북적하며 길거리 촬영 때에는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해서 흘깃흘깃 사람들이 보는 장면까지 다 촬영이 되어 있다.

인영의 친구로 고영수가 나오고, 바보들의 행진의 병태도 엑스트라로 1분 정도 나온고, 당시 지방과는 비교되는 서울의 거리와 상가, 패스트푸드 같은 것들이 잔뜩 나오는 것 역시 재미있다. 아파트 단지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고 신성일이 미키마우스 하연 티셔츠 입는 장면에 문숙이 까르르 거리며 귀엽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이만희라는 대 감독과 대 배우 신성일 그리고 신예 문숙이 만나 당시에는 볼 수 없는 실험적인 영화였고 탐미적이다. 서울로 문숙을 찾으러 간 고영수가 나오는 장면에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이 영화 음악으로 나온다.

인영은 그야말로 태양을 닮았다. 밝고 맑고 꾀죄죄하고 더럽지만 인영의 주위에는 밝음의 아우라가 있다. 마치 바삭바삭한 여름 햇살 같다. 영화는 한국 영화 같지 않다. 마치 불란서나 미국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의 색감은 꼭 오즈 야스지로의 색감이 떠오른다.

인영은 살인자 아저씨의 생일을 위해 엄청난 준비를 하는데. 순수한 영화다. 이만희 감독은 아내가 된 문숙과 함께 다음 해 황석영 소설 원작의 ‘삼포 가는 길’을 촬영하는 도중 사망하고 만다.

문숙은 꾸준하게 영화배우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미국으로 가고 만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의 천재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태양 닮은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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