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 경영난 속 휴간이라는 기사를 봤다. 휴간하면서 신인문학상 공모전도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안타깝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구름처럼 흘러가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실제로 닥쳤구나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기사에는 댓글이 한 줄도 달리지 않는다. 뭐랄까 그만큼 사람들에게서 많이 동떨어진 다른 곳의 이야기인 것이다. 일 년에 공모전은 수없이 열린다. 그리고 당선자들은 쏟아진다. 매 년 공모전이 여기저기에서 열리니 달려들었던 사람들에서 어떻든 매 년 당선자가 탄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 년 배출하는 문학 공모전의 당선자와 당선작을 대체로 잘 모른다. 쏟아졌다가 사라진다. 그래서 온전히 문학에 전념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드물다. 내가 아는 중소규모의 출판사도 매년 에세이와 시집을 발표한다. 공모전이라기보다 출판사 측에서 이 정도면 괜찮아, 해서 책을 출판하고 그 비용은 대체로 텀블벅으로 한다. 그래서 시집 같은 경우는 읽어보면 시?라고 생각되는 시집이 많이 있다. 박준이나 유희경 같지는 않다. 이전의 우리가 알만한 등단 시인의 시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렇게 출간을 한 사람들의 특징은 거의 모두가 강연을 한다. 그래서 그 강연이 들을만한 강연이가 한다면 또 글쎄다 같은 의문이 든다.
이것 또한 살아남기 위한 흐름이라면 흐름이다. 일단 책을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그 책을 읽어줄 독자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글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책까지, 그것도 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것이니까. 흐름이라는 건 설령 좀 잘못 흘러간다고 해서 딱 버티고 막아서 다른 흐름으로 돌리는 것이 아주 어렵다. 흐름이 바뀌는 흐름이 보이는 건 꽤 시간이 걸린다.
종이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전자책으로 전부 넘어가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이런 흐름은 시간이 걸린다. 종이책은 한 권 구입해서 여러 사람이 돌려 볼 수 있으니까 자신의 폰으로만 볼 수 있는 전자책이 수입적인 부분에서는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러나 조금씩 눈에 띄지 않지만 종이책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문예지가 사라지듯이 말이다. 문예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 것은 나의 단편 소설을 2년이나 연재해 준 계간 풍자문학이 사라졌을 때다. 수면 밑에서 깔짝깔짝 거리고 있던 나를 그래도 수면에 닿게 해 준 계간지가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런 계간지는 읽는 재미가 있다. 단편소설뿐 아니라 수필, 기행문, 시까지 여러 문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하루키 역시 에세이는 문예지를 통해서 발표를 한다. 그런 점은 우리나라와 좀 다르다. 계간지 같은 문예지는 그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정치와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영화가 기록하고 다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흐름이다. 야후를 대동한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전문가들은 큰일이 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흐름이다. 스마트 폰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역시 큰일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주 5일 때에도 그랬다. 그냥 흐름이다. 그 흐름에 올라탄 나는 몸을 맡기면 된다. 단지 그 흐름 속에서 흐름을 잘 타는 사람이 있고, 못 사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