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사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하야오는 전쟁에 대한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바람이 분다,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비판을 가득 담고 있다.

아직 어린 히미가 미래의 마히토를 만나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잖아”라고 말한다. 비록 히미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히토를 낳겠다는 심정으로 우리가 이 땅에 이렇게 태어났다.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는 존재가 없다. 할머니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오늘 나온 통조림을 보며 기뻐하고 음식에 열의를 보인다.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을 열심히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의 순환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지구본은 돌아가고 우리는 그 지구본을 열심히 돌려야 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전부 열려 있다. 보는 이들이 보는 대로 생각하면 그게 장면 장면이 말하는 의미이자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게 뭐지? 난해하고 이상한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삶의 의미일 수 있다. 우리의 삶 역시 정확하게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이상하기만 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죽 불행하다가도 한 번 행복함에 우리는 그때 웃기도 한다.

히미처럼, 실수하더라도 그리하여 목숨마저 잃을지라도 마히토를 다시 낳겠다는 것처럼 그 실수가 실패는 아니기에 우리는 두 발로 바닥을 딱 버티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야오가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원작 소설을 가져온 이유는 전쟁 속에서도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생명은 계속 이어져야 하며 죽음이라는 건 삶의 대극이 아니라 한 부분이라는 걸 히미와 마히토를 빌어 절실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야오가 팔순이라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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