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학교 가기 진짜 싫었는데, 그래서 야자도 도망 나오고, 나는 사진부라 사진부 핑계 대고 수업을 째기도 했다.

학교 가는 게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지만 쉬는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소풍이라든가 방학 이럴 때 행복이 넘쳐났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요일이 좋았지.

그런데 일요일에 학교에 가는 날이 있는데 미칠 것처럼 학교 가기 싫은데 이상하게도 일요일의 학교는 또 괜찮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하고 고즈넉이 흐르는 고요한 학교에 있는 건 나쁘지 않았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고, 학교에도 사람이 없어서 휑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일요일의 학교는 평일의 학교와는 달라 보였다. 학교는 싫은데 교실은 괜찮은 느낌? 아무튼 그랬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졸지 않고 엎드려 편안하게 잠들 수 있고 배고프면 교문 밖에서 나가서 마음껏 라면을 사 먹었다. 교실에서는 책을 펼쳐 놓지만 책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의 교실.

학교는 참 싫은데 일요일의 학교는, 교실은 괜찮은 느낌. 이 시리즈가 그런 느낌이다.

일요일의 교실은 너무나 다른 세계 같아서 교실에 앉아 책을 펼쳐 놓았지만 책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서 창밖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봤다. 평일에는 절대 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평일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아무도 없는 일요일의 교실에서는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있으면 친구가 왔다. 우리는 명목상 공부 때문에 학교에 왔지만 책을 펴 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부는 저 멀리 가버리고 만다. 나 같은 경우는 정말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앉아서 뭔가를 쓰고 외운다는 것을 고등학생 때까지 왜? 하지? 같은 생각이었다. 바보 같은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1학년 초에는 전교에서 17등을 덜컥하는 바람에 담임의 사랑을 잔뜩 받았지만 그건 운이었다. 그 뒤로는 밑으로 밑으로 하락세를 걸었다. 수학은 빵점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건 중학생 땐가? 아무튼 그때 선생님이 빵점은 백점보다 맞기 어렵다면서 대단하다고 했다. 담임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보가드로가 별명이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촌지 받는 걸 좋아했던 선생님이었다. 사진부에 들어갔다고 많이 혼났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사진부 활동을 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이후락이 만든 학교로 부지가 커서 교정이 넓었다. 학교 건물도 두 채였고, 소규모 대학교의 캠퍼스만큼 좋았다. 나는 사진부 일로 일요일에도 왕왕 학교에 나왔다. 그럴 때 학교의 정취에 심취하기도 했다. 사진부 실은 교무실 바로 맞은편에 있었는데 일요일에 나온 선생님도 어쩐지 공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과는 친하지 않았는데 일요일에 나온 선생님과는 사진부 실과 교무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요일에 나온 선생님은 갓 부임하거나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땐 전부 필름 카메라라 일단 현상을 하거나 인화를 해야만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디지털처럼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그때 사진부 아이들 사진을 보면 주로 정적인 사진이 많았다. 일요일에 텅 빈 사진부 실에서 사진을 정리하고 있으면 꼭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 때문에 일요일에 사진부에 올 일이 있으면 내가 온다고 했다. 그 덕에 선배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텅 빈 일요일의 교실에 있는 게 나름대로 좋았던 기묘한 그 기분은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서 국민학교 때의 일요일에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날을 정해서 일요일 오전 7시에 아이들이 전부 청소를 했다.

일요일 7시면 푹 자야 하는 시간이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기 때문에 아침잠을 늦게 까지 잘 수 있는 날은 일요일뿐이다. 그런데 날을 정해서 청소한다고 7시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청소를 한다. 안 나가도 된다. 하지만 나온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전부 앞집 옆집 뒷집 이렇게 붙어서 살기 때문에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엄마가 깨워서 억지로 일어나서 동네로 나가면 전부 부스스한 얼굴로 모여서 청소를 한다.

그런데 청소를 하다 보면 또 재미있다. 청소는 사실 할 것이 없다. 동네 곳곳을 다니며 쓰레기를 줍줍 하는 것인데 내가 살던 동네는 달동네였지만 깨끗했다. 아이들은 인원점검을 마친 뒤에는 모여서 신나게 놀았다.

오전 8시에 마을의 공터에서 논다. 나는 여자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 놀았는데 공기놀이도 내가 제일 잘했다. 그래서 나를 편으로 집어넣으려는 누나들이 있었다. 일요일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건 싫었지만 막상 일어나서 어울리는 그 오전의 일요일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나 장소가 있다. 평소에는 너무 싫은데 막상 어떤 날에는 그 장소가 괜찮은 것이다.

아마 사람도 그럴 거야. 곁에 있는 사람이 늘 좋기만 하지는 않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좋다, 싫다 같은 개념이 없지만 곁에 늘 있는 사람은 매일 좋을 수 없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참 정의가 어렵다. 왜 학교에서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을까. 사랑하는 방법이나 제대로 분노하는 법 같은 거나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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