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와인은 잘 모르지만 영화는 꼭 묵직하고 진한, 쌉사름하고 짙은 와인을 마신 기분이다. 인상은 써지는데 끝 맛이 뭔지 모르게 괜찮네, 같은 기분. 영화는 내내 답답하고 우울하지만 잘 만들었다.

이 현실감 쩌는 이야기. 내가 사는 도시의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 서민의 이야기. 사람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러나 힘든 이야기. 삶을 살아가는 건 살아내야 하는 거야.

울산의 중추적인 별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던 때가 있었다. 그 찬란한 울산의 별이 지면서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되었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마찰을 겪고. 그러나 헌 별이 지면 새 별이 떠오른다.

영화 속 영화적 허용을 말하자면 윤화가 새마을금고에서 대출하려고 주소 적을 때 동구 전화동이라고 적는데 전화동은 없고 전하동이 있다. 윤화가 잘못 적었나 싶었는데 영화 속 윤화가 벽보에 쓴 글을 보면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주 디테일한 장면이었다.

영화는 방어진 전하동과 조선소가 배경인 것 같은데 전하동은 사실 전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지 오래되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는 집과 마을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잘 도 찾아낸 것 같다.

윤화가 조선소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등대 같은 곳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는데 아마 슬도의 등대 같다. 실제로 조선소 내에서 슬도 등대까지 먼 거리다. 회사에서 걸어 나와 등대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기는 무리다.

딸과 연예인 지망생 친구가 서울로 가기 위해 공업탑에서 버스를 타려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소가 있는 방어진에서 바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거나, 공업탑과 방어진 사이에 있는 고속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데 굳이 끝과 끝의 공업탑까지 간 것을 보면 울산의 상징 같은 공업탑 로터리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문 옆에 청명길이라고 붙어있는데 전하동에는 청명길은 없다. 영화를 위해 만든 것 같고, 영화 속 조선소와 작업복을 역시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울산의 현대 조선소의 작업복은 전혀 저렇지 않은데 아마 현대 조선소를 직접적으로 영화에 나오게 하는 것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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