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버스 타고 한 시간 넘게 학교 다는 게 귀찮아서 학교 앞 독서실에서 두 달인가 생활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꼬질꼬질하니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울릉도에서 와서 하숙하는 놈이 있어서 거기서 씻기도 하고, 가끔 학교 근처 사우나를 가기도 했다. 거기 사우나는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꺼려했는데 거기 사우나는 요구르트도 주고 스킨로션이 일반 목욕탕보다 냄새도 좋고 느낌도 좋아서 친구와 가곤 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다녔는데 나는 독서실 생활을 해서 도시락을 싸다닐 수가 없어서 애들 도시락 돌아가면서 얻어먹었는데 싫어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독서실은 공부하는 곳인데 공부는 참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막상 자려고 하면 잠이 안 오고 앉아서 책을 펼치면 꾸벅꾸벅 졸리는 신기한 곳이 독서실이었다. 잠자리가 몹시 불편한데 어떻게든 즉응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책상 밑의 침낭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잘도 쿨쿨 잠들기도 했다. 요즘의 나를 생각할 때 – 이렇게 예민하고 낯선 곳에서 잘 못 자고 냄새에 민감한데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도 생각해 보면 아버지 병실생활을 할 때에 그 불편한 간이침대에서도 적응을 하니 쿨쿨 잤다. 낮 동안 그렇게 시끄럽고 죽음과 사투하는 환자들도 밤이 되면 고요하게 잠들었다. 병실과 병원 복도가 적요한 것도 기묘했다. 간이침대에 누우면 병실의 바닥 부분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잠을 잘 수 없어서 그대로 눈을 뜨고 새벽을 맞이하거나 잠깐 졸다가 아침이 되곤 했는데 적응이 되며 어디서든 쿨쿨 자게 된다. 복도의 벤치에서도, 대기실의 의자에서도, 가족들을 위한 커다란 방에서도, 어디서든 자려고 하면 쿨쿨 자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는 기묘한 존재다.


학교 바로 앞에 독서실이 있어서 3분 거리다. 도로를 하나 건너면 바로 학교 정문인데 지각을 자주 했다. 새벽에 겨우 잠 들어서 눈뜨면 등교시간이 다 된 시간이었다. 번개날치기로 일어나서 곧바로 튀어 나가도 지각이었다. 그러면 교문 앞에 무시무시한 학주가 몽둥이를 들고 딱 버티고 있다. 저 정문만 통과하면 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담벼락도 높아서 넘을 수도 없었다.


일단 학주에게 걸리고 나면 일주일이 괴롭다. 마치 좀비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바지 끄트머리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처럼 공포가 엄습함을 느끼는 것이다. 수학여행 때 포항에서 온 여고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학주가 와서 조용히 그랬다. 못 꼬시면 학교에서 죽는다고. 거기가 설악산이었고 묵었던 숙소가 포항에서 온 여고생들이 묵었던 숙소와 가까워서 그 애들 숙소에 들어가서 만나서 밤에 놀았던 기억이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길어서 나중에 할 수 있으면.


아무튼 학교에 가면 좋았던 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무도 건들지 않았다. 일진은 반마다 있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들을 계속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또 아이들을 따돌리는 일도 없었다. 모르지? 다른 반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단 우리 반에는 그런 분위기가 없었다.


반에는 운동부도 있었는데 양궁부가 있었고, 펜싱하는 놈도 있었다. 또 학교 내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악대부도 있었는데 얘네들은 다른 학교의 일진들과 파벌싸움을 다니곤 했다. 그래서 얼굴에 멍이 늘 따라다녔는데 계급처럼 여기곤 했다. 나는 사진부라서 암실에서 주로 머물면서 놀고, 선배들에게 맞고, 사진 이야기하고 뭐 그랬다. 선배들에게 욕 나올 정도로 많이 맞았다. 그때 많이 맞아서 그런지 군대에서 구타는 뭔가 잘 견딜만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학생 때에도, 군대에서도 많이 맞았는데 사람을 한 번도 때려 본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한 번이라도 때리고 싶은 인간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홍(이라고 하자)이는 기타를 신급으로 연주했다. 재홍이는 점심시간에 등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연주하곤 했는데 아이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곤 했다. 학교 축제 때에는 대학교 밴드와 협연을 하기도 했고 여상 클래식 콰르텟과도 합동 연주를 하는 등 인기가 좋아서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녔다.


게다가 재홍이는 주말에 학생들이 많이 가는 호산나에서 디제이를 했다. 우리는 모이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주로 록음악, 헤비메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앎은 얕고 가늘었지만 재홍이는 기타를 연주해서인지 각 밴드들의 차이나 특징 같은 것들을 잘 알려 주었다. 재홍이는 연습을 얼마나 했던지 당시 우리가 좋아하는 스티브 바이처럼 기타를 연주했다.


학교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이 없어서 친구와 친구의 도시락을 1교시 후에 해치우고 점심시간에는 매점으로 갔다. 하지만 매점은 늘 인산인해다. 도시락이 있음에도 매점은 항상 북적북적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다니는 독서실에 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이 언제가 제일 맛있냐? 독서실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다. 이상하지만 독서실에서 꼬질꼬질한 버너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기가 막혔다. 계란까지 야무지게 사 와서 넣어서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김치는 독서실 지킴이 형이 줬다. 라면을 끓여서 호로록 먹고 있으면 젓가락을 들고 나타나는 애가 있었다.

나 이때 인기 많았다 ㅋㅋ


그 애는 여고에 다니고 있었는데 김태희가 나온 여고로 유명한 여고였다. 그 애의 이름은 연주였다. 연주는 미팅을 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미팅을 세 번 정도 했는데 전부 땜방으로 나갔다. 너 미팅할래?라고 다이렉트로 먼저 들어온 경우는 없었다. 땜방내지는 폭탄 제거반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나를 미팅에 데려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다. 요컨대 헤비메탈 음악에 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여자 아이들이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미팅에 땜방으로 나갔다가 연주가 파트너가 되었고 연주는 딩클럽이라는 학생 밴드들이 공연하는 곳에서 객원으로 키보드를 연주하는 록 마니아였다.


본조비도 반 헤일런도 좋아하는 왈가닥 여고생이었다. 연주도 독서실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여고는 명문여고로 공부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공부로 짱 먹는 학교라 키보드와 학업을 병행하려면 잠을 줄여 가며 공부를 해야 했다. 여자는 라면을 먹어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기는 개뿔, 여자인 연주는 말랐는데 참 많이도 먹었다. 야금야금 먹고 치우다 보면 테이블이 깨끗해졌다. 우리는 가끔 투다리에서 닭꼬치를 실컷 먹기도 했다. 물론 맥주와 함께.


투다리 이모와 아주 잘 알아서 교복을 입고도 잘 들여보내주었다. 중학교 고등학교가 밀집한 지역이라 투다리 이런 선술집에 단속이 왕왕 떴는데 단속이 뜨면 투다리 이모에게 연락이 오고 이모는 우리를 꽁꽁 싸메서 주방의 한편에 숨겨 주었다.


너도 도시락 안 싸왔냐?


연주는 꼭 라면 끓여 먹으려고 하면 어떻게 냄새를 맡고 오는지. 그래도 라면 먹으며 셋이 시답잖은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주 즐거웠다. 존 본조비가 어떻니 리치 샘보라의 스타일이 어떻다느니, 니키 식스가 개 똘아이라던가 귀네문트가 더 예쁜지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하하 호호 행복했다. 연주는 이번 주말에 딩클럽에서 자신의 밴드가 공연을 하니 보러 오라고 했다.


딩클럽은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학생밴드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은 그런 클럽이 전혀 없는데 그때는 구마다 그런 클럽이 있었다. 딩클럽은 11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는데 꽉 차면 백오십 명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조명이 밴드가 연주하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에 맞춰있어서 아주 좋았다. 음향 시설도 좋고 관객으로 온 아이들의 호응도 끝내줬다.


그때는 각 학교마다 밴드 한다고 하는 녀석들이 다 있었다. 전부 부모님에게 혼나고 한 번 쫓겨나고 손들도 울고 성적은 안 떨어지기 하겠다며 그렇게 해서 허락을 받아내서 시간을 내서 밴드 연습을 해서 노래를 불렀다. 멋진 나날들이었다.



호산나가 언급된 기사를 찾았다.https://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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