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만히 귀를 대고 소리를 듣다가 나는 손으로 우물을 덮은 쇠뚜껑을 탁탁 쳤다. 그러자 히히히히 하는 소리가 뚝 끊어졌다. 나는 다시 탁탁탁 손으로 두드렸다. 5초 정도 지났을까. 톡톡톡 하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쇠로 만들어진 뚜껑이 덮인 틈으로 말을 했다.


[너 왜 거기 밑에 있니? 어른들 불러와서 뚜껑을 열라고 할게]라고 말했다.


[아니야, 나는 빛을 보면 사라지고 말아. 여기 우물 밑이 꽤 아늑하고 좋아]라고 아이가 말했다.


[너는 죽은 거니?]


[글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에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애]


[너 혼자 있니? 외롭지는 않니?]


그 부분에서 아이는 잠시 틈이 있었다.


[응, 괜찮아. 여기 친구들도 있어. 지금 같이 놀고 있었어]


[친구들? 정말?]


[응, 너도 친구가 되어 줄래?]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귀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만나?]


[이렇게 만나도 되고, 내가 너를 찾아갈게. 괜찮지?]


[응, 언제든지 찾아와. 우물 밑에서 춥지는 않아?]


[여긴 달의 뒤편 같은 곳이야. 춥지도 덥지도 않아. 내내 따뜻하거나 시원해. 그래서 밖에서 폭풍이 쳐도, 비가 여러 날 내리지 않아도 여기는 아무 문제가 없어]


[잠은 언제 자?]


[잠은 안 자]


[정말? 와 좋겠다. 나도 잠 안 자도 되면 그 시간에 태권도 배울 텐데]


[태권도? 왜?]


[그냥,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맞기 때문에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엄마는 도장에 보내주지 않거든]


[그렇구나. 나중에 내가 태권도 가르쳐줄게]


[너 태권도도 할 줄 알아?]


[응, 나 이래 봬도 태권도 1단이야]


[와 너 대단한데. 빨리 만나고 싶구나]


[너는 내가 무섭지 않니?]


[왜? 귀신이라서?]


[그래]


[응 무섭지 않아.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는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선생님이고, 술 취한 아저씨고, 이유 없이 때리는 학교에서 짱 먹는 아이들이야]


군인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다시 가깝게 들려왔다.


[나는 가야 할 것 같애. 또 이야기하고 싶으면 여기로 오면 돼?]


[응, 하지만 내가 없을 수도 있어. 내가 너를 만나러 갈게 곧]


눈을 뜨니 나는 우물에 등을 기댄 채 잠이 들었고 아이들이 나를 찾으러 여기까지 우르르 왔다. 게임은 벌써 끝났는데 너는 도대체 여기서 잠들어 있으면 어떡하냐고 아이들이 웃었다. 군인 게임을 통해서 옆 동네 아이들과는 친숙하게 되었다. 여자애들도 다 같이 친하게 지냈다. 나는 그 뒤로 자주 우물에 갔다. 갈 때마다 뚜껑에 대고 탁탁탁 두드리곤 했다. 하지만 우물 밑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방학을 일주일 남겨두고 나는 매일 우물이 있는 곳에 갔다. 그곳에서 그 아이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우물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방학 동안에도 마치 일기처럼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우물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겨울 방학이 끝났다.


겨울 방학은 끝났지만 2월은 아직 추웠다. 하지만 곧 봄방학이 기다리고 있다. 이상하지만 나는 우물과 대화하는 게 좋아졌다. 마치 우물은 그 아이 같았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기이하게도 지난번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한 사실이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꼭 영화 ‘사랑과 영혼’의 몰리의 마음 같았다. 비록 샘은 사라졌지만 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서 기쁨으로 매일매일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봄 방학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걸레를 들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걸레를 든 녀석을 변기 안으로 밀어 버렸다. 녀석은 변기에 그대로 엉덩이가 빠져서 울고 말았다. 아이들은 당황했는지 내가 노려보니까 그렇게 무서웠던 괴물 같았던 녀석들이 조무래기들처럼 느껴졌다. 왁! 하니까 아이들이 도망쳐 나갔다. 나 같지 않았지만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야,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일만 학교에 오면 곧 봄방학이다. 그럼 우물에 일주일 동안 매일 갈 수 있다. 이상하지만 별거 아닌 거에 기분이 좋았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나왔다. 교문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의 앞으로 걸어왔다. 못 보던 여자 아이였다. 여자 아이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곧 전학 올 거야. 너 만나러 왔어]


반가운 그 목소리였다. 우리는 첫 만남에 손을 잡고 교문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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