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말한, 맛없는 토마토가 많아서 어떻게든 먹어치워야 했다. 맛이라고는 1도 없는, 돌처럼 딱딱해서 생으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토마토를 잘라서 소고기와 전복과 간장 양념을 넣고 폴폴 삶았다. 그러면 토마토에서 나오는 채수로 잘 끓어올라 고기와 전복의 맛이 훨씬 좋아져서 토마토 스튜 같은 맛이 날 거라는 나의 생각은 순전히 착각이었다. 간장양념이 토마토에 배고, 토마토의 신 맛은 또 고기와 전복에 배여 이도저도 아닌 맛이지만 이도저도 아닌 맛이라 괜찮은 것 같았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음식을 만들어 먹은 이유는 토마토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가득 넣어서 스튜 비슷한 것을 먹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봤다. 아니 정우성은 장태산으로 그렇게 멋있더니, 여기서는 또 차진우로 사랑스럽다. 어쩜 이리도 잘 어울릴까. 멋있다 멋있어.


나는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원작을 오래전에 봤다. 파릇파릇한 토키와 타카코가 배우 지망생으로 나온다. 토키와 타카코는 90년대 정말 말도 안 되게 예뻤다. 만화나 잡지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았다. 성월동화에서 장국영과의 모습도 영화지만 만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원작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95년 작품인데 2000년대 중반에 보면 모든 배경이나 의상이 촌스럽게 보였는데 요즘 다시 보면 그다지 촌스럽지 않다. 그 당시의 유행이 요즘에 다시 유행하고 있어서인지 토키와 타카코가 입은 옷들이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지만 작정하고 활짝 웃으면 모든 세계가 행복할 것만 같은 토키와 타카코의 모습이 몽글몽글하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덜 불행하지도 않아서 T들은 뭐야? 할지도 모르지만 F들은 그저 빠져 들어서 볼 수밖에 없는, 그래서 이 차가운 겨울에 한없이 마음을 데워줄 그런 이야기다.


원작에서

청각장애 화가로 나오는 에츠시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인간의 손동작이 이토록 사랑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어딘가를 쳐다보는 멍한 표정과 보고 싶어 하는 눈빛,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을 말하는 예술이었다. 말은 말이 하는 것 같은데 수어는 온 마음을 다해서 자신을 표현했다. 그게 너무 아름답고 안타깝고 애처롭게 보였다.


마지막에 그림으로 완성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정우성과 신현빈이 다시 한다. 원작에서 시간이 많이 흘러 팩스와 편지에서 휴대전화로, 각색도 많이 되었지만 제주도에서 펼쳐지는 첫 화에서 우수에 찬 차진우의 눈빛과 진우를 보며 활짝 웃는 정모은의 모습에서 다음이 궁금해졌다.


차진우와 정모은의 이야기 사운드트랙이 너무 좋다 https://youtu.be/9Ae7T-JJjx4?si=_KjdWu7be-JX0z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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