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소주는 저렇게 소주병보다 작은 병인데 거의 칠천 원 정도 한다. 안동소주는 독한데 그 맛이 좋다. 사실 소주보다 훨씬 좋다. 이렇게 기름에 두른 생선구이를 먹을 때 독한 술이 꼴까닥 목으로 넘어가면 목이 화악 씻기는 느낌이다.


중국집에서 탕수육이나 유린기를 먹고 고량주를 한 잔 꼴까닥 넘기는 맛을 아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까지 고량주를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한 안동소주도 어쩌다가 마실 뿐이라서 자주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이렇게 술맛이 강한 안동소주를 마시다가 소주를 마시면 물 같은 맛이다. 소주로는 몇 병을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안동소주는 한 병으로 끝낼 수 있는 것 같다. 소주는 도수가 점점 약해져서 소주를 마시고 취하려면 술값이 많이 든다. 전부 상술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조깅을 할 때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은 다운타운을 지나서 온다. 다운타운은 밤의 화려함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면 수많은 식당과 술집에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한 잔을 즐긴다. 그걸 구경하면서 오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술집의 테이블 위에 소주병이 한 두 병이 아니라 주로 여섯, 일곱 병씩 올려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술은 취하려고 대부분 마시니까 소주를 마시고 취하고 싶은데 도수가 약해빠져서 몇 병씩 마시게 되는 것 같다. 오래전에는 소주도 독해서 마시다가 킵해 놓고 다시 꺼내서 마시기도 했고, 더 오래전에는 잔술로 소주를 팔기도 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보면 병태가 영자를 기다리며 포장마차에서 잔술 한잔에 오뎅을 먹는다.


바보들의 행진은 참 재미있다. 여러 번 봤는데도 계속 재미있다. 거기서 영철은 동해바다의 고래를 잡고 싶어 한다. 그 갈망은 10년 후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바보들의 행진 속에 등장하는 바보들은 돈도 없고 여자만 좋아하지만 찾고 싶은 것이 있었다. 거대 기성세대의 압박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는 희망세대의 바보들은 고래를 잡고 싶었다. 유신시대를 살아가는 핍박받는 청춘들의 아픔과 답답함을 그려내는 영화다. 참 웃긴데,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은데 슬픈 영화다. 참 이상한 영화다.


 영화 속 재미있는 장면이 많지만 병태와 영자가 같이 샤워를 하는데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따로 샤워를 하며 이야기를 한다. 병태는 영자에게 같이 살자고 하지만 영자는 야야 치워라, 너 군대 갔다 오면 나는 얘, 호호 할머니다 얘, 같은 대사를 한다. 그리고 병태는 입대를 하면서 끝난다. 그때 열차가 떠나가는데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병태를 영자가 따라가면서 키스를 하려고 하지만 닿지 않을 때 뒤에서 헌병이 와서 영자를 올려서 키스를 하게 해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바보들의 행진 2- ‘병태와 영자’에서는 군대에 간 병태를 영자가 면회를 가는데 1편에서 병태 역을 했던 윤문섭은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1편과 2편의 병태 역을 맡았던 주인공들은 영화배우의 필모로는 이 영화가 전부다. 1편에서 병태 역을 병태보다 더 병태처럼 한 윤문섭은 이 영화 이후로는 출연작이 없다. 성대출신으로, 이때 영자 역의 이영옥만 빼고 전부 실제 대학생들을 캐스팅했다. 병태 역의 윤문섭은 병태 이후 엄청난 인기로 2편의 제의도 받았지만 학업에 충실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한 터라 연기와는 멀어져 영화는 한편이 고작이다.


감독이 하길종 감독으로 대부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과 동기다. 당시 UCLA 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감독의 힘이었는지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감독의 동생이자 배우인 하명중, 김희라, 윤일봉 등 그리고 당시 꼬꼬마였던 얄개의 주인공 이승현과 코미디언 땅딸이 이기동까지, 소설가 최인호도 나온다. 재미있는 이유가 감독의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길종 감독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다. 40년 정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하길종 감독의 영화가 7편 정도밖에 안 되는데 한국 고전영화를 좋아하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다. 유튜브에서 몇 편은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래 소주, 영화 속 시대에서는 소주를 그렇게, 잔술로도 포장마차에서 마셨다. 이제 잔술이라는 낭만은 바이러스, 세균 같은 시대적으로 드러난 관념에 이길 수 없다. 포장마차나 안주와 술은 어떻게 예전처럼 만들어 볼 수 있다고 해도 모든 걸 추억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어제는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국밥 집의 한 테이블에 아버님 두 분이서 국밥과 소주를 마시는데 소주병이 불어나서 옆의 빈 테이블 위에까지 몇 병이 올라가 있었다. 도대체 몇 병을 드시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주병이 많았다. 도수를 약하게 만들어서 소주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그리하여 딱 한 병만 마시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바보들의 행진 ost나 한 번 https://youtu.be/clVePPcIy4Y?si=SgCb-BrAYYxtuw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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