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데 맛이 안 난다. 집에서 밥이 남고 반찬이 남아 있으면 김치볶음밥을 해 먹는 게 좋은데, 김치 들어가고 고기 들어가고, 먹다 남은 반찬 들어가고 버터를 두르고 볶으면 맛있다. 거기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 노른자를 톡 터트려 비벼 먹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맛이 안 난다. 맛이 안 난다는 말은 분식집의 김치볶음밥 맛이 안 난다는 말이다. 김치볶음밥은 분식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거기에는 밥과 김치 밖에 없는, 말 그대로 김치볶음밥인데 집에서 많은 내용물을 넣어서 볶은 것보다 훨씬 맛이 난다.


누군가는 김치 넣고 볶으면 되는 걸 왜 분식집 같은 곳에서 사 먹고 그래?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에게 분식집 김치볶음밥을 한 번 먹여주고 싶다. 매콤함에도 분식집 특유의 그 맛이 있다.


7월에도 김치볶음밥 이야기를 하면서 분식집 김치볶음밥에 대해서 찬양을 했었다. 김치볶음밥의 특징은 너무 하찮다는 것이다. 하찮아서 사람들이 외면할지도 모르지만 그 하찮음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버텨 살아남아서 김치볶음밥을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 거창한 것보다 하찮은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내가 하찮은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김치볶음밥이라는 게 김치 따로, 계란프라이 따로, 고기 따로, 들어가는 다른 반찬 따로 해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잡채나 돼지갈비 찜 같은 음식은 그대로 하나의 완성형 요리고 맛있다. 들어가는 재료를 따로 먹지 않는다. 뭔가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면 해 먹는 음식들이라 맛도 좋다. 김치볶음밥은 그렇지 않다. 따로 떼어 넣고 먹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음식인데 김치볶음밥으로 해 먹고 나면 이상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에는 분명 ‘하찮은’이라는 것들이 한데 모여서 으쌰으쌰 하며 힘을 내는 것에 맹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찮은 것들만 모였는데 하찮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요컨대 칫솔하고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칫솔. 칫솔이 닳고 못 쓰게 되면 다시 새 칫솔로 바꾸면 그만이다. 그라나 없어서는 안 된다. 칫솔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정말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다. 전국의 칫솔을 만드는 공장에서 경기도 너무 안 좋고, 단가도 너무 올라가서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먹고살기가 힘듭니다, 하며 칫솔 공장 전부가 칫솔 만들기를 포기하면서 지금부터는 알아서들 이를 닦으세요,라고 한다면 세상은 암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괜찮아, 칫솔이 없으면 뭐 어때, 아무거나 가지고 닦으면 돼, 치실도 있고 수건도 있고 소금도 있으니 괜찮아. 아무런 문제가 없어.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는 칫솔로 이리저리 쓱싹쓱싹 닦아야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집을 떠나 여행을 가서 일박을 하게 되었을 때 씻지 못하고 잠이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얼굴이나 발은 못 씻어도 이는 닦아야 편하게 잠들 수 있다. 칫솔이 아닌 다른 어떠한 것으로 이를 닦는다고 해봐야 답답할 뿐이다.


칫솔은 손으로 꽉 움켜 잡게 생겼다. 그것이 칫솔이 사람에게 부여한 의미가 있는데, 세상에는 아주 많은 물품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하게 해 주지만 손으로 움켜잡고 무엇을 할 수 있는 물품은 드넓은 물품 중에 몇 없다. 그렇게 손으로 꽉 쥐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물품은 인간사에 반드시 밀접하게 필요한 물품들이고 그 종류는 생각만큼 넉넉하지 않은 것 같다.


칫솔이 어느 순간에 인간 세계에 짠하며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물품들이 많다. 컴퓨터가 없어도 안 되며 냉장고가 없어도, 자동차가 없어도 안 된다. 칫솔은 여기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물품이다. 있으면 다행이고 없어도 다른 것으로 대처하면 그만인 물품이다.


하지만 없어지면 서서히 불편해진다. 그리고 불편함은 점점 불안으로 번진다. 사소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중요하다고 느끼는 물품일지 모른다. 사람들 중에서도 칫솔 같은 사람이 많다. 어쩌면 칫솔 같은 사람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자동차나 냉장고 같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회사나 학교 그 단체, 조직에서 컴퓨터나 자동차 같은 사람은 한두 명씩 있다. 하지만 단체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칫솔 같은 사람들이다.


언젠가 필요 없어지만 갈아치워 질지, 닳고 못쓰게 되면 버려질지 모르면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비록 칫솔은 하찮고 어디를 가나 널려있고 일회용으로 한 번 쓰이고 나면 버려지는 물품일지 모르지만 분명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물품 중 하나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처럼 말이다.


김치볶음밥도 하찮고 가끔 해 먹지만 그래서 맛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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