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의 소설 여자의 남자를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가. 이토록 처절하고 아름다우면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나 빠져들게 적다니. 이 소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그 여파로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
주인공 방송국 작가인 강찬우는 이대 불문과를 나온 대통령의 외동딸 김은영을 스키장에서 만나 밤을 불태운다. 그때 김은영은 첫 경험이었다. 이후 김은영은 아버지의 대권 때문에 한강 그룹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하지만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은영은 찬우를 찾아서 위험한 사랑을 하지만 두 사람은 청와대 경호실과 한강 그룹 비서진의 방해가 엄청나다. 김은영으로 김혜수가, 강찬우로 정보석이 열연했다. 대통령, 김은영의 아버지로 신성일이 특별출연했다. 김한길의 소설은 대단했다.
김한길이 최명길과 결혼하기 전에는 이민아의 남편이었다. 이민아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딸이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대드는 그런 스타일의 딸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줄 알았던 딸이 결혼을 한다며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김한길이었다.
이민아의 아버지는 딸을 말렸다.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이민아는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며 두 사람은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고 했다. 이민아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이어령이었다. 이었다,로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민아는 김한길과 이혼 후 목사가 되었고 2012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을 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문공부 장관까지 역임한 그였지만 이어령을 제일 잘 표현하는 수식어는 국문학자가 아닌가 싶다. 이어령은 국어를 정말 사랑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아마도) 국어를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서재에는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과 태블릿들이 이어령의 국어에 대한 열정을 충족시켰다.
이어령은 ‘무진기행’의 김승옥을 너무나 좋아했다. 광주 민주화 항쟁 후 김승옥이 절필을 선언했을 때 이어령은 김승옥을 잡아서 호텔에 던져놓고 신문에 연재하는 장편소설을 집필하기를 바랐다. 그때 김승옥이 집필하던 소설이 ‘서울의 달빛’이었다. 그러나 김승옥은 도저히 광주항쟁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호텔을 도망쳐 나간 뒤로 더 이상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다.
연작으로 이어져야 했던 서울의 달빛은 단편소설로 끝이 나서 ‘서울의 달빛 0장’이 되었다. 김승옥이 무진기행으로 모국어의 폭발을 알렸을 때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들썩들썩 했다. 잘하면 노벨 문학상 작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문학의 지평이 열린다, 굉장했다. 유명한 일화로 소설가 김훈,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역시 1세대 소설가였는데 꼬꼬마 김훈에게 막걸리를 받아오게 해서 김광주는 후배 문인들과 모여 밤새 술을 마시며 김승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 꼬꼬마 김훈이 문밖에서 들어보니 김광주가 문인들에게 괴물 신인이 탄생했는데 읽어봤냐? 이제 우리는 뭐 먹고 사냐, 우리의 시대는 이제 갔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이 영화가 된 ‘안개’의 각본도 직접 썼다. 그때 한국 문예영화의 거장 김수용 감독이 옆에 붙어서 제발 각본을 쉽게 써달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 올해 1월에 세상을 떠난 윤정희의 10대 시절을 볼 수 있다. 윤정희는 인숙을 인숙답게 연기를 한다. 무진, 안개를 뜻하는 말로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 같은 것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아직 안개를 이만큼 표현한 한국문학이 없다.
김한길이 또 정치판에 나오니 이 모든 게 주마등처럼 생각이 나네. 김한길도 2017년에 폐암 말기로 지금까지 최명길의 간호를 받으며 건강을 챙기고 있는데, 정치를 멀리하고 소설이나 적었으면 했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 더불어 딸을 먼저 보내고 내내 마음 한편이 안 좋았던 이어령 학자님 편히 쉬세요.
여자의 남자 https://youtu.be/E7Ga3JKhpSc?si=nc1f7lTXWxKt6V33
안개 https://youtu.be/nfYGPEjQ8-8?si=vMfAEiLU3a9JIz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