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초난강, 쿠사나기 츠요시가 주인공으로 나온 데서 보게 된 영화다. 초난강이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는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놀란 영화였다.


어린 시절 글짓기를 잘해서 선생님의 칭찬을 먹고 아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지내는 히사는 불혹에 만년 대필 작가로 헤어진 아내와 딸을 가끔 만나며 의미 없이 지낸다. 대필 제의가 들어왔는데 편집자에게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며 대필해 주면 곧바로 5만 부가 팔려 나가 돈을 번다고 빨리 작업하자고 한다.


가끔 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면 홀로 집으로 들어가 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시작도 못한다. 화면에는 커서만 깜빡일 뿐이다. 그러다 고등어 통조림(사바켄 – 일본 원제는 사바캔이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영화는 마치 몇십 년 만에 먼지가 가득한 일기장을 펼치는 향수를 느끼게 한다. 그 속에는 나와 비밀을 나누었던 친구와 일상이 담겨있다. 특별한 것도 없고 그저 껌 하나로 낄낄 거리며 지냈던 시절. 키득거리며 그걸 읽는데 눈물이 갑자기 흐르는 것 같은 영화다.


초난강이 하는, 어른이 된 히사의 대사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로 시작해서 1986년 그 여름으로 간다. 너무나 새파랗게 멍이 든 하늘과, 실루엣이 아름다운 여름의 푸르른 바다, 부메랑 섬, 탄탄 바위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공유했던 타케.


타케는 친구도 없이 늘 혼자서 책상에 물고기 그림이나 그리는 아이였다. 옷도 단 두 벌로 여름을 그렇게 보낸다. 타케는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다. 그러다 한 녀석이 타케에게 너네 집에 피아노 놓으면 바닥이 무너지는 거 아니냐며 놀린다. 타케는 그렇지 않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아이들은 너무 먼 곳에 있는 타케의 집으로 가면서 지친다.


타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다 쓰러져가는 모습처럼 보여서 아이들은 일렬로 서서 웃으며 타케를 놀린다. 그때 타케의 여동생이 집으로 오지만 오빠와 함께 같이 놀림을 받는다. 웃으며 놀리는 그 아이들 속에 히사도 있었다.


히사는 가기 싫은 엄마의 두부 심부름 때문에 슈퍼에 갔다가 백 엔을 줍는다. 그 큰돈을 주워서 경찰서에 돌려줘야 하나. 철없는 아빠에게 물으니 아빠는 경찰서에 안 갖다 줘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히사는 저금통에 백 엔을 넣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여름방학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건 성적표다. 펼치는 순간 망했다고 생각하는 히사. 집에 와서 악마보다 더 무서운 엄마에게 혼난다. 그러나 철부지 아빠는 국어는 잘했다고 하다가 둘 다 엄마에게 혼난다.


어느 날 친하지 않았던 타케가 히사의 집으로 놀러 왔다. 히사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타케는 부메랑 섬에 돌고래가 나타났다고 한다. 히사는 좋아하는 돌고래를 상상한다. 타케는 돌고래를 보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그 경험으로 글짓기를 해서 선생님에게 또 칭찬을 들을 수 있다며 같이 가자고 꼬신다. 하지만 히사는 내키지 않는다. 그때 타케가 그 주운 돈 백 엔 경찰서에 돌려주지 않으면 도둑으로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히사는 말을 더듬으며 겨 겨 경찰서에 가 가 갖다 줘줬어.


타케의 으름장에 히사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히사에게는 자전거가 있었다. 둘이 같이 타고 새벽에 섬으로 가는 거야. 새벽 5시에 부모님 몰래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철부지 아빠가 나와서 둘을 보더니 뒷자리 안장을 제대로 만들어준다. 그대로 뒤에 타고 갔으면 엉덩이 다 으스러진다며. 아빠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엄마 깨기 전에 얼른 다녀오라며 용돈까지 준다.


그렇게 둘은 섬으로 둘만의 여행을 간다. 가다가 자전거도 망가지고 지치고 힘들다. 그러다가 동네 양아치들을 만나서 히사가 당하려는데 똥 누고 돌아온 타케는 양아치들에게 달려든다. 양아치 형들은 타케를 때리고 발로 밟는다. 타케는 맞으면서 히사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한다. 그때 동네의 제일 일인자 형이 나타나서 그 양아치들을 때린다.


그렇게 타케와 히사는 그곳을 벗어난다.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부메랑 섬으로 간다. 지쳐 잠시 바닥에 누워서 히사는 타케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냐고 묻는다. 나에게 자전거가 있어서 그랬냐고 묻는다. 그러자 타케가 너는 웃지 않았으니까. 뭐? 너는 우리 집보고 웃지 않았잖아.라고 한다. 이상하지만 별것도 아닌데 여기서부터 눈물이 흐른다. 밝고 맑은 영화인데 기이했다.


그렇게 시작된 둘만의 1986년 여름방학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향수를 일으켰다. 바다에 떠 밀려온 한국의 오성사이다. 목숨을 구해준 누나. 귤을 서리하러 가면 늘 나타나서 잡으려는 고약한 과수원 할배, 고등어로 초밥을 만들어 주었던 아버지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며 씩씩하게 지내는, 나와 너무 다르지만 언제나 나의 편일 것 같은 타케.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의 친구, 어른들, 동네 바보 형, 친구 집 앞에서 친구야 놀자!라고 큰 소리로 부르면 집 안에서 그래!라고 친구가 말하고, 시끄럽다고 소리치던 삼촌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양아치들에게 구해준 동네 형이 자신의 모자를 타케에게 씌워줄 때에는 의도인지 꼭 원피스의 상디와 루피를 보는 것 같았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비밀을 공유하며 땀을 흘리며 같이 시간을 보냈던 친구와 함께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 타케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히사와 헤어지게 된다. 친구와 영영 헤어지게 된 히사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안겨 엉엉 운다. 헤어질 때 귤 농장의 악마 할배가 타케에게 귤을 줄 때, 기차에서 귤을 까먹을 때에도 뭉클했다.


이 영화는 너무 아무것도 아닌 노스탤지어를 섬세하게 다루어서 너무 특별하게 만들어서 감동이 되는 그런 영화였다. 좋은 영화를 보면 지금 이 따라다니는 잔상을 좀 오래 주욱 끌고 가고 싶다.



https://youtu.be/pkUeT12nA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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