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여름방학을 생각해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 시원했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당연하지만 에어컨은 없었다. 그리고 선풍기를 켜 놓고 잠이 들면 입이 돌아간다는 소문이 있어서 시간을 한 시간 정도로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깨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불쾌하게 일어난 기억이 없다.


홑이불까지 덮고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무엇보다 습도가 지금과 같지 않아서 더위도 맑은 더움이 가득했다고 생각이 든다. 그늘에서는 시원했고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더웠다. 밖에서 신나게 놀면 코끝이 타서 벗겨지기도 했다.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파트 단지 내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데 상쾌하지는 않다. 왜 그럴까. 기후변화 때문일까. 어른이 되면서 몸이 점점 노화가 되어서 그럴까. 잠이 들어도 깊게 잠들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잠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고로 짧은 시간을 잠들어도 깊게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상쾌한데 전혀 잠에서 깨어나도 상쾌하지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 극장에 쏟아지는 재미있는 영화도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화가 전혀 못 따라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왜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분명 예전에도 이 정도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었겠지만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물에 잠겨 죽거나,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하기까지의 엄청난 고뇌까지 알게 된다. 길거리를 걷다가 칼부림에 목숨을 잃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비가 좀 세게 내리면 불안하고 누군가 휘청거리며 다가와도 불안하다. 어제는 뉴스에 초등학교 교사에게 한 학부모가 교실에서 담임이 너무 밝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수해 때문에 공장에 물이 가득 차서 기계를 전부 못 쓰게 된 사람이 물을 빼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관청에 연락을 하니 바다에 띄우는 기름 제거 막을 보내줬는데 이 비용을 정부에서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이 비용을 개인이 내라고 관청의 관계자가 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하고 인력이 투입이 되어도 다리나 도로를 복구할 뿐이지 개인터전이 망가진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한 개인이 여름에 에너지를 다 쏟아내며 실컷 놀던 아이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 매일 관리하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베란다 찬장에 빗물이 새니 내일 실리콘을 쳐야 하고, 또 올 태풍에 대비해서 이번에는 새시도 갈아야 한다. 여름이 시작할 때 에어컨 점검을 하지 않으면 그걸 해야 하고, 빌려줬던 돈을 받을 시기가 다가오면 빌려간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병원에서 검진 날이 문자로 날아오면 그날은 시간을 비워둬야 하고, 아이가 있다면 여름에 먹는 걸 더욱더 신경 써야 한다. 어쩌다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소아과가 많이 없는 요즘은 아이가 아프면 더럭 겁부터 난다. 하나를 넘기면 두 개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른이 되어서 아이처럼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푹 잠들 수 없는 여름밤을 보낼 수밖에 없다.


나는 거의 매일 조깅을 해서 인지 일단 누우면 그대로 잠이 든다. 특히 요즘에 조깅을 하면 땀이 땀이 아니라 수돗물처럼 흘러내린다. 조깅을 하고 목이 마를 때 보통 사람들은 시원한 물을 마시지만 나는 대체로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그렇게 마시는 것에 습관이 들리면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훨씬 갈증들 걷어준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 시원한 맥주에 얼음을 동동 띄워서 한 잔 마시면 좋다.


오늘도 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풍경은 고즈넉했다. 아주 평온하고 편안하게 보였다. 나는 조깅을 해서 땀이 뻘뻘 났지만 가만히 서서 고즈넉한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낚시꾼의 모습은 고기보다 세월을 낚는 모습처럼 보였다. 일희일비하지 말자,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일에 하루종일 낚시를 하려면 아무래도 쉬는 날이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름대로 개개인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2, 3년 전의 이맘때 저녁 시간에는 아주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었는데 올해 여름은 습도가 높고 습기가 가득한 우기 속의 나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깅을 하면 땀이 어마무시하게 흐른다.


그렇지만 고즈넉하다. 이렇게 서서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안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다. 길냥이 녀석도 강을 바라보다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고개를 돌려 뭐야? 니?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저 길고양이도 힘들어서 강에 뛰어들려고 그러나?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자살에 관한 책자를 많이 출간한 인문학자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백과’의 402페이지에는 고양이의 자살에 과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바닷가의 어부 집에서 공생을 하던 암고양이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다. 다리를 저는 암고양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인을 따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같이 배에 올랐는데 고양이가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죽는 걸 주인이 건져서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볕이 드는 옆에서 털을 말리게 두었더니 다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칼부림으로 20대 청년을 죽은 그 사람은 모두가 행복한데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행복하게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체로 행복하지 않게 보내다가 한 번씩 행복을 맛본다, 맛보는 그 행복은 아주 짧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행복했던 기억으로 언제인지 모를 다가올 행복을 위해 연소시키며 살아간다.


매일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한 게 나은 삶일까, 늘 불행하다가 한 번 행복한 게 괜찮은 삶일까. 매일매일 돈이 넘쳐난다고 해도 매일매일 행복할 수 없다. 우리보다 행복을 많이 느끼는 아이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순간은 짜증을 낸다.


일행이 옆에서 인스타그램 속 타인의 멋진 사진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인스타그램의 멋진 사진만 보지 말고 이 고즈넉한 풍경을 한 번씩 보며 행복보다는 덜 불행한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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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2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기는 인생, 보기에도 흐뭇하네요.

교관 2023-07-27 11: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