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오이냉국을 한 모금 마신다. 오이를 한 입 씹어 먹는다. 상쾌하고 식초의 좋은 맛이 입 안으로 와르르 들어온다. 우걱우걱 씹을수록 오이가 아삭함을 온몸으로 퍼트려 준다. 비가 내리는 무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오이냉국만 한 음식도 없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 바다를 보며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시원한 오이냉국의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모든 게 예전 그대 로고 달라질 이유 없는데, 오이냉국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인데 그대만 곁에 없다는 게 너무나 슬프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오이냉국이라는 곡도 만들면 여름에 너무나 좋을 것 같다. 아삭아삭 씹히는 상쾌한 소리가 여름밤에 울려 퍼지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계절송이 되어 여름밤이 되면 그대를 그리워하며 오이냉국을 꿀꺽 먹는다. 여기서 말하는 그대는 연인이라기보다 어머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 여름이면 시원하게 송송 오이를 잘라 담가주던 오이냉국은 여름이면 늘 그대로인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권성연이 1990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한여름 밤의 꿈을 듣고 있으면 이야기가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영상을 찾아서 보면 그날, 권성연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한다. 간주 중에는 자막으로 권성연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고려대 불문과에 국민학교 때 MBC어린이노래자랑 우수상 수상, 취미는 낮잠, 별명은 쥐방울이라고 한다.


자막도, 화면도, 가수도, 사회자인 이수만과 이미연은 비현실적이라 정말 꿈같다. 오직 권성연이 부르는 노래만이 시대에 머무르는 꿈같지 않다. 노래를 끝내고 들어가려는 권성연을 이수만이 붙잡아서 이런저런 말을 막 시키고 요들송을 시킨다. 그런데 권성연이 요들송을 부르는데 와, 정말 잘한다.


권성연은 자신의 자작곡인 한여름 밤의 꿈으로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재즈가수가 되고 싶어 했던 권성연은 당일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배탈이 나서 정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고. 그런데도 노래를 부르고 남아서 요들송도 멋들어지게 불렀다. 권성연은 이후에 영심이 주제곡 ‘해봐’도 부르고 피구왕 통키의 주제가도 부른다.


권성연의 한여름 밤의 꿈을 듣고 누군가가 여름에 이 노래 한곡만으로 여름 내내 버텨낼 수 있다고. 한 번 끝까지 노래를 들어보면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매년 여름이 시작할 때 오이냉국에 관한 글을 적는 것 같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오이냉국에 대해서 열심히 적고, 또 열심히 먹었다. 나는 보통 이렇게 오이냉국으로 해서 오이를 일 년에 한 네 박스 정도를 먹는다. 라면박스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책이 택배로 오는 정도의 박스다. 여름이 되면 찾아서 먹게 되는 채소와 과일이 있다.


수박은 잘 먹지 않지만 오이는 여름이 되면 찾아서 먹게 된다. 그리소 복숭아와 자두를 먹게 된다. 물방울이 겉면에 흐르는 시원한 자두를 먹고 있으면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이는 그냥 생으로는 잘 먹게 되지 않지만 오이냉국으로 해 놓으면 하루에 한 그릇씩 뚝딱 먹게 된다.


오이냉국으로 만든 오이는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좋아서 자꾸 먹게 된다. 맥주와 먹기에도 좋다. 이렇게 시원하게 국을 만들어 먹기 좋은 건 콩나물국도 그렇다. 콩나물만으로 만든 슴슴한 국도 뜨거운 것보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꺼내 마시는 시원한 콩나물국이 좋다. 시원한 콩나물국은 겨울에도 좋다. 뜨거울 때는 잘 못 느끼는 간간한 맛도 시원하면 느낄 수 있다.


여름에 나를 찾아온 오이냉국.

오이냉국만 있다면 이 여름 내내 나는 견뎌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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