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을 기점으로 몸보신의 날이 펼쳐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현대인에게는 사실 보신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신진대사가 빠른 10대를 제외하고 대체로 신체는 더 이상의 에너지를 섭취하지 마!라고 하는데 뇌가 때가 되면 자꾸 음식을 먹는다. 이 놈의 배꼽시계가 때가 되었으니 음식을 먹으라고 뇌에서 분비물을 마꾸 뿜어낸다. 일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가장 수월하게 도파민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몸은 온갖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체는 "주인 놈아! 이제 그만 좀 먹으라고! 너 배를 좀 봐! 등도 배처럼 불룩하단 말이야! 더 이상 에너지를 보낼 때가 없단 말이야!"라고 외치지만 우리는 신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복날이라고 해서 따로 보신이 되는 음식을 챙겨 먹을 필요는 없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초복을 챙기게 된다. 그래야 또 불경기에 호황을 누리는 식당도 생기기 때문이다. 초복에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당연하지만 삼계탕 집이다. 복날이라도 있으니 요즘 같은 시대에 장사가 잘 된다.
복날은,
한국의 닭들이 초토화되는 날이다. 집집마다 삼계탕을 끓여 먹기도 하고 삼계탕 집에서 먹기도 하고, 백숙 집으로 가기도 한다. 삼계탕은 생각해 보면 그 집이나 그 집이나, 저 집이나 이 집이나 맛이 거의 비슷하다. 대체로 비슷하니 대체로 무난하게 맛있다. 특별한 맛이 나지 않는 것이 삼계탕이다.
그래서 가정집에서 닭을 삶아 먹으면 맛이 집집마다 좀 다른데 들어가는 재료가 가지각색이라 그렇다. 마늘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넣는 집이 있고, 들깨나 녹두를 왕창 넣는 집도 있고, 전복을 넣어서 삶아 먹는 집도 있다. 미역국과 비슷하다. 집집마다 미역국의 맛이 전부 다르듯이 가정에서 닭을 삶아 먹으면 맛이 좀 다르다.
이렇게 평균적으로 닭을 삶았을 때 맛이 거의 비슷한 이유는 닭이 육계라서 그렇다. 마트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닭이 대부분 육계(다 그런 건 아니지만)다. 육계는 외국에서 들어온 종인데 주로 기름에 튀기거나 구워서 먹으면 맛있는데 국물을 우려내서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지 않다.
육계는 하림이라는 대기업에서 유통시키고 있다. 흔히 5일장 같은 전통시장에서 개인이 토종닭을 키워서 잡아서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기업과 정부가 거래를 해서 개인이 닭을 잡아서 털을 벗겨 판매하는 행위를 위생을 걸고 불법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전통시장에서 개개인이 집에서 키운 토종닭을 파는 경우가 있는데 맛이 육계보다 훨씬 좋고, 그 닭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불법을 감안하고 판매를 하기도 한다.
그럼 육계보다 국물을 우려내서 먹을 때 맛있는 닭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맛닭’이라는 이름의 닭이다. 이는 거의 20년 동안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개발해 낸 새로운 종이다. 원래 있는 한국 토종 재래닭과 60년대 미국에서 들어와서 토착화된 토착종을 교배하여 만들어낸 토종닭이 우리 맛닭이다.
이 닭이 맛있다. 닭이 거기서 거기지 흥.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육계를 삶아서 국물을 우려내 먹는 맛과는 천지차이다. 아주 맛있다. 국물이 일반적인 삼계탕의 육수보다 깊고 맛있고, 고기도 부드럽게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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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사람들이 왕왕 착각하는 것이 토종닭이라고 해서 삶으면 졸깃졸깃 좀 질겨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백숙집 같은 곳에 가면 압력밥솥에서 삶아서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뚜껑을 덮는 냄비에서 삶게 되면 닭이 질기게 된다. 이를 졸깃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질기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이 맛에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
폐닭도 보통 그런 맛으로 먹기 때문에 조리를 잘하지 못하면 질겨 못 먹는다. 폐닭으로 닭곰탕을 잘하는 식당에 가면 맛있다. 영화 완득이를 보면 잘 나온다. 노계, 폐닭으로 조리를 잘하면 그 맛에 빠지게 된다. 입에 넣어서 흐믈흐믈 후룩 그냥 살이 분리되는 것보다 씹는 맛이 좋다고 느끼면 그게 훨씬 좋다.
닭을 삶아서 먹을 때에는 뚜껑을 열고 삶는 냄비에서 끓이게 되면 고기가 질기지 않고 맛있는 식감이 된다. 퍽퍽함이 거의 없다. 우리 맛닭은 2호까지 개발됐다. 10호의 작은 육계에 비해, 우리 맛닭은 14호 정도로 크고 고기살도 많아서 3인 가족이 한 마리만 삶아서 먹어도 된다. 초복은 일 년에 한 번 있고 중복, 말복 해서 세 번 정도 닭을 삶아 먹을 거라면 맛있고 푸짐하게 먹으면 좋다.
내 어릴 때에도 여름방학에 외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면 외숙모와 큰 이모가 키우던 닭을 잡아서 닭을 삶아 주었다. 아주 옛날, 조선시대 같은 시기에도 닭은 귀한 가축이었다. 닭과 돼지와 소는 같은 급이었다. 닭과 돼지, 소 전부 사료를 먹는다. 그러니까 귀할 수밖에 없다. 닭이 돼지나 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같은 양의 고기를 얻는데 가장 적은 양의 사료가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는 날은 경사가 아니면 잡아먹지 못했다. 하지만 닭 한 마리를 여러 명의 가족이 나눠먹기는 너무나 작은 양이라서 삶아서 국물을 우려내서 온 가족이 밥을 말아서 먹었다.
영화 관상을 보면 닭 한 마리 삶아서 닭다리 두 개는 송강호와 아이유의 남자, 이종석이 먹어 버리고 그렇게 먹고 싶은 닭다리를 바라만 봐야 했던 조정석을 떠올리면 된다. 집에서 닭을 푹 고아서 우려낸 육수는 맛있다. 내 어릴 때 외가에서 키우던 닭을 외숙모가 잡아서 삶아 먹으니 먹다 보면 덜 뽑힌 털이 나오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공장사육을 하지 않고 방목으로 키워서 고기가 졸깃졸깃 부드럽다. 닭의 크기도 크다.
우리 집은 바닷가라서 매일 보는 바다보다 방학에 외가가 있는 불영계곡 속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릴 때는 그랬다. 물이 너무 맑아서 가재도, 피라미도 요래 다 보여서 잡는 재미도 좋았다. 물놀이를 하며 놀다 보면 배가 금방 허기가 진다. 이상하게도 물놀이는 하면 배가 금빵 꺼진다.
그러면 외숙모와 큰 이모가 닭을 삶아서 죽을 만들어서 닭고기를 죽죽 찢어서 넣어주었다. 그런 닭이 맛있었다. 개울가에서 그렇게 먹고 또 물놀이를 하다 보면 금방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되어 해가 산 넘어서 사라지고 나면 추웠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은 여름이라도 밤이 되면 그렇게 덥지 않았다.
저녁에는 닭을 삶은 육수에 대파, 고사리와 고추장을 넣고 닭개장을 끓여서 다 같이 둘러앉아서 먹었다. 끼륵끼륵, 요즘 잘 들을 수 없는 귀뚜라미나 메뚜기 다리 비비는 소리를 들으며 사촌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외가의 마당에 앉아서 닭개장을 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요즘 치솟는 물가를 생각해 보면 병아리로 삼계탕을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삼계탕 집은 너무 비싸다. 일단 만원이 넘잖아. 그럴 바에는 우리 맛닭으로 집에서 삶아서 먹는 게 낫다. 아무튼 초복에 우리 맛닭을 삶아서 먹으니 어릴 때 물놀이 후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