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때 사진부였는데 1학년 때에는 잔심부름을 많이 해야 한다. 심부름이라 하면 사진부 암실을 청소하고 물약을 정리하고 인화지를 제자리에 두고 주말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단속을 하는 것이다. 토요일에 심부름을 다 끝내고 선배들이 빠져나간 암실의 한편에서 조용한 것을 확인했다. 토요일의 점심시간이 지나면 학교는 마치 고요한 호수의 수면과 비슷하다. 그 떠들썩하던 남자 고등학교의 함성과 냄새가 빠져나간 직후는 그야말로 적요했다. 정리를 다 끝내고 암실의 한편에 앉아서 헤드셋으로 크게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을 들으면 가슴이 터질 정도로 좋았다.
이래서 모두가 메탈리카 메탈리카 하는구나. 다른 밴드에 비해 라스의 드럼 소리가 미친 듯이 귀를 때렸다. 드럼 소리가 이렇게 멋지게 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력하고 또 강력한 이 드럼의 소리에 절대 밀리지 않는 게 제임스의 보컬이었다. 전율이란 이런 것이구나.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은 메탈리카 최고의 앨범이라 한다. 모든 노래가 육체와 정신을 살짝 분리시켜 놓았다. 시작의 앤터 샌드맨부터 세드 벗 트루를 이어서 낫띵 엘스 메럴까지. 메탈리카는 메탈리카 특유의 소울이 있었다. 그 부분이 오리지널리티 또는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아니라 대번에 이건 메탈리카야!라고.
막사는 거 같은데 그 속에는 자신들만의 어떤 규칙이 있어서 벗어나되 벗어나지 않는, 텅 비어있되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리하여 흔들림 없는 확신보다는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 같은 걸 보여주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뭔가를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제대로 잘 안 되는 시기에 메탈리카의 앤터 샌드맨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서 메탈리카의 메탈리카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이들은 태생적으로 난봉꾼기질을 잔뜩 가지고 있지만 천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인슈타인이 살아있을 때 폴란드 시인 폴 발레리가 아인슈타인을 인터뷰를 했다. 그때 “착상(창작의 실마리가 되는 생각, 구상)을 기록하는 노트를 들고 다니십니까?”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온화하지만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으로 “아, 그럴 필요가 없어요. 착상이 떠오르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라고 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인 콜드 블러드(읽다가 죽는 줄 알았다, 신문 사설을 읽는 기분이었다)’로 유명한 소설가 드루먼 카포티는 사실 기자로 더 유명했다. 그의 스타일이 녹음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받아 적는 일도 없었다. 그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눈을 보며 진심으로 들어줄 뿐이었다. 그렇지만 카포티의 기사는 적확했고 맹점을 관통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리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말을 새삼 떠올리게 했는데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이 꼭 그랬다. 이런 앨범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이후에는 이런 앨범은 나오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이 앨범은 그저 모여서 노력을 한다고 해서, 연주를 준비한다고 해서, 경험이 많아서 작곡을 이렇게 저렇게 고쳐가며 한다고 해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비틀스를 뛰어넘는 밴드가 현재까지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메탈리카의 이야기는 역시 유튜브에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채널이 많다. 메탈리카니까 얼마나 많은 록 마니아 채널에서 메탈리카를 파헤치고 난도질해 놨을까. 그곳을 이용하면 메탈리카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소식은 메탈리카는 2008년부터 음반 제작을 담당해 온 레코드 공장 ‘퍼니스 레코드 프레싱’을 사버렸다. 우리의 음반을 레코드로 찍어 내는데 무슨 터울이 이렇게 많아? 그냥 우리가 사 버리자. 우리 그 정도는 되잖아. 그래서 우리의 앨범을 레코드판으로 실컷 찍어내자. 그렇게 공장을 사 버린 메탈리카는 메탈리카의 앨범을 엘피로 공장에서 열심히 내놓고 있고 미국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모든 노래가 좋지만 가장 전율을 받았던 노래가 더 언포기븐이었다. 요즘은 르세라핌의 언포기븐이 먼저 떠오르지만 메탈리카의 더 언포기븐은 대단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후에는 더 언포기븐 2(더 후에 더 언포기븐 3도 나왔는데 사람들에게 좀 외면을 받았다)가 나왔을 정도로 이 노래는 전 세계를 휘어잡았다. 그 육중하고 굉장한 무게감이 주는 매력에, 아니 마력에 빠져서 학창 시절의 토요일에 모두가 떠난 사진부 암실에서 메탈리카의 더 언포기븐을 들었다.
이 터질듯한 감정을 가지고 늦은 오후에 학교를 나와서 음악 감상실에 갔다. 그곳에 가면 나와 비슷한 놈들이 한 두 명씩 있었다. 우리는 마음을 모아 메탈리카의 더 언포기븐을 신청했고 디제이는 뮤직비디오를 무척 큰 화면으로 틀어 주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영화도 열심히 보러 다녔지만(더스틴 호프만의 졸업이나, 리차드 기어의 아메리칸 지골로나 주성치의 영화) 메탈리카의 뮤직비디오를 이렇게 큰 화면으로 보는 것 역시 너무 좋았다.
분명 강력한데 처절하고 슬펐다.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것이고, 주먹보다 작은 심장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으며 그 유지를 위해 인간은 끊임없는 고통을 겪으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유라는 흔한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느끼게 하는 것 같았던 노래가 더 언포기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