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닭죽을 먹었다. 닭죽은 배가 금방 꺼진다. 집에서 해 먹는 닭죽은 엄마의 냄새가 있다. 닭죽도 너무나 간단한 음식이라 닭 한 마리를 넣고 그냥 끓이면 끝인 음식이다. 그런데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해주는 닭죽의 맛이 다 다르다.
집에서 해 먹는 닭백숙에는 마늘을 있는 대로 넣으면 맛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 먹던 닭죽보다 마늘도 잔뜩 넣고, 방울토마토도 넣어서 끓였는데 이상하지만 집에서 만든 닭죽을 먹으면 엄마의 맛이 있다. 비논리와 비상식에서 벗어나서 먹는 맛인데도 먹다 보면 엄마의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나는 집밥, 엄마의 손맛, 같은 말을 썩 좋아하지도 않고, 혼자서 밥을 챙겨 먹게 될 때에는 잘 차려서 먹기보다 그저 있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먹는 게 낫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마찰을 겪기도 한다. 마찰을 겪는 것도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나는 집밥을 좋아하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맹신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냥 내 개인적으로 별로라고 생각을 하는데, 왜 엄마의 손맛을 부정하냐며 마찰을 겪는다.
집밥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집과 떨어져 살다 보니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지내다 보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는 좀 이상해서 그런지 몰라도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겠어, 이제 이 음식은 질린다. 같은 것이 별로 없다. 그냥 그 지역에 가면 거기에 나오는 음식을 그냥저냥 먹는 편이다. 못 먹는 음식이 아닌 다음에는 특별히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에게 이 음식이 먹고 싶으니 좀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내 기억은 그렇다. 모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다른 집의 어머니 음식은 내가 모르니 나의 모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나의 모친이 한 음식은 그렇게 맛있지가 않다. 그건 엄마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옆 집의 아주머니들에게도 늘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맛없는 음식도 맛없네, 마네, 같은 이야기를 나는 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잘 먹는 편이다. 모친은 국, 찌개, 탕 같은 음식을 많이 했었다. 이 국물이 있는 음식을 집에서 없애는데 7년 정도가 걸렸다. 손이 커서 이삼일을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양의 찌개를 끓인다. 그런데 정작 모친은 먹지 않는다. 음식을 버리는 건 또 하지 않는다. 하하하 그러면 어떻든 내가 다 먹어야 한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몇 해 전부터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음식을 하지 않는다) 한 상 깔린 음식을 몇 날 며칠 동안 내가 다 먹어야 한다. 모친은 새로 만든 음식은 드시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거의 드시질 않는다. 빵이나 치즈 같은 건 두 달 정도 유통기한이 지나서 내가 버리려고 하면 그제야 먹으려고 한다. 조카가 어릴 때 일주일정도 모친이 봤는데 애가 일주일 만에 너무 통통해졌다. 애가 좋아한다고 매일 아이스크림에 치킨에. 그래서 나는 집밥, 엄마의 손맛이 별로다.
김범수의 ‘집 밥’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웃었다. 그 당시가 집 밥에 대한 예능프로그램, 이야기가 많았다. 시류에 묻혀 나온 노래에 그놈의 바이브레이션에, 가족의 마법에. 나이가 든 엄마에게 이제 집 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라면이나 끓여 먹자,라고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 밥을 매일 꼬박 세끼를 한다는 게 그게 얼마나 힘든 노동인가. 그럼에도 가족에 묶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나 힘드니 밥 해 달라고 한다. 고독한 미식가 씨처럼 그냥 혼자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맛있게 묵으라고.
그 시기에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에 줄을 서서 먹는 음식 트렌드가 생겼다. 그 식당이 ‘집밥’이라는 곳이다. 집밥 식당에서 판매하는 상차림은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을 표방했다. 상추가 있고 콩나물이 있고 멸치조림과 김치 정도에 된장국이 나오는 게 전부다. 이렇게 해서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 정도 했다.
상차림이 다른 음식점에 비해 초라한데 비싸다. 그런데도 줄을 서서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식탁의 주인은 반찬이 아니라 밥이라 생각하고 식당 한 편에 도정기를 갖다 놓고 손님이 오면 바로 나락을 도정해서 밥을 해서 내놓았다.
도정을 해서 바로 밥을 해 먹어 보면 그 맛있음이 그대로 소리로 나오게 된다. 그냥 밥만 먹어도 맛있다. 밥이 정말 맛있기 때문에 반찬은 그야말로 옵서버일 뿐이다. 그저 간장만 있어도 맛있다. 쌀이라는 건 나락으로 있을 때 살아있는 상태다. 도정하기 전에 쌀은 한 알 한 알 숨을 쉬고 있다. 대신 도정을 하면서 나락을 까는 순간 죽어버려 변성이 시작된다. 그리고 도정한 지 15일이 지나면 변성이 되어서 밥이 조금 맛이 없다. 일반적인 밥이 된다.
사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에서 이렇게 맛있는 맛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 그리움이라는 것에는 역사적인 어떤 사회상이 깃들어 있는 부분도 있다. 그저 ‘밥 집’이라 불리는 식당은 외식산업의 시초가 되었다. 한국은 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여자들이 생계를 위해 집에서 늘 해 먹던 식단으로 ‘아침밥 됩니다’ ‘가정백반’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정식 백반으로 매일 다른 반찬과 밥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남자의 로망이었다. 신혼인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나물과 함께 저녁상을 차린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손만 씻고 오세요”라는 말을 듣는 것까지가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면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땐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는 집밥, 엄마의 손맛에서 벗어나야지. 어쩌면 보통의 어머니들이 가족의 밥을 하느라 정작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집밥의 환상에서 벗어나면 가족이 다 편하다. 가끔 가족이 모여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라면 끓여 먹어도 아주 즐겁다. 오랜만에 모였다고 거하게 차려서 거하게 먹을 필요가 없다.
요즘은 재철 식재료로 간단하고 저렴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제철 음식이라 가장 영양가도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도 아주 짧고 간단하다. 그런데 맛도 좋다.
마늘을 엄청 넣고 닭죽을 끓였는데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그 냄새가 난다. 닭죽을 먹고 마당에 나가 놀다가 보면 금방 배가 꺼져서 또 호로록 떠먹었던 닭죽. 좀 있으면 또 닭죽을 많이 먹을 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