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국에서는 여성팬들을 비틀스만큼 몰고 다녔던 록밴드는 부활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항상 비교되던 시나위와 블랙홀 그리고 다른 밴드는 우리는 록!이라는 걸 누가 봐도 아는 의상을 입고 있었지만 부활의 이승철은 머리도 짧고 미소년 같은 모습에 무엇보다 우수에 젖은 눈망울로 희야~를 불렀다.


그야말로 여성팬들을 집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든 록 밴드가 부활이었다. 이승철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김태원의 터질 것 같은 그로울링의 화음이 부활의 어떤 색깔이 되었다. 전국의 아마추어 록밴드들이 프로 록밴드의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부활의 이 대조적인 목소리를 따라 부르는 게 힘겨웠던 것이다.


김태원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알려졌다. 아이의 가정사부터,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투게더 같은 아이스크림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밥 대신 매일 먹었던 일까지. 그래서 몸이 엄청나게 불어버린 일화가 여러 방송에서 소개가 되었다.


김태원이 예전에 예능에 한창 출연을 할 때 그때는 트위터가 지금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처럼 사람들의 일상소통 창구였다. 그때 누군가 나의 부활 이야기에 댓글로 김태원이 예능으로 나오지 않고 계속 음악만 했으면 좋겠다는 글을 달았다. 예능에만 나오니까 어린아이들이 김태원을 예능인으로만 알고 있다면서 주절주절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예능인으로 알려지면 좀 어때? 도대체 그게 왜 문제인가. 예능인으로 알려져서 그 사람이 원래는 기타리스트였어?라고 알게 되면 또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거지. 뭐 그런 댓글싸움을 많이도 했었다.


그때는 나도 지금처럼 유순하지만은 않아서 대단히(까지는 아니지만) 공격적이었다. 사람들에게 막 그랬지. 왜? 그럼 변호사가 범죄소설을 쓰는 것도 못하게 하지 그래? 변호사는 변호사 일만 하고, 개그맨들은 라디오 디제이 못하게 하고, 안재욱은 노래 못 부르게 해야지. 라며 나도 대들었다.


그때 사람들과 가장 많이 싸웠던 내용이 ‘먹거리 엑스 파일’이었다. 당시에 먹거리 엑스 파일이 대단한 인기였다. 마치 성역과도 같아서 거기에 문제를 제기하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건드리면 안 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먹거리 엑스 파일은 이상한 프로그램이었다.


즉,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식당은 착한 식당이라 칭하고 조미료를 조금이라도 사용하는 식당은 마치 착하지 않은 식당, 장사를 해서는 안 되는 식당으로 매도해 버렸다. 조미료는 몸에 엄청 나쁜 것으로 말했다. 게다가 몰래카메라로 섭외한 음식 전문가들이랍시고 불러다가 그런 편집으로 방송을 했다.


조미료는 간단하게 말해 음식에 들어가면 맛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매워야 할 떡볶이에 조미료가 들어가면 맵기만 하지 않고 맵고 달고 짠맛이 서로 잘 섞이게 만드는 게 조미료가 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조미료가 몸에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지금은 감미료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조미료의 주원료가 되는 게 예전에는 다시마였다. 우리가 요리를 할 때 다시마를 우려내서 국물을 만들기도 한다.


어떻든 조미료가 문제라고 먹거리 엑스파일은 말했는데, 그렇게 조미료가 정말 나쁜 것이라면 조미료를 만드는 공장을 공격해야지 왜 일반 식당으로 가서 조미료를 썼네 마네 해서 그곳을 공격하는지. 방송국 지들이 뭔데 착한 식당, 그렇지 않은 식당으로 분류를 하는지에 대해서 글을 올렸다가 정말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때는 그래서 내가 졌다. 사람들의 맹신이 그렇게나 무섭다. 일단 알아보기보다 내가 믿는 것이 올바름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공격이 무서워지는 것이다.


식당이라는 게 사실 매일 같은 맛을 낸다는 것이 어쩌면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날의 습도, 온도, 물기, 시간, 특히 조리사의 컨디션에 따라 음식의 맛은 달라지기 마련인데 맛이 조금 달라지면 이거 큰일이 났다고 생각을 한다. 음식의 맛이라는 게 음식이 가지고 있는 식재료의 맛만 가지고 우리가 맛을 느끼는 건 아니다. 식당의 노란 조명, 옆 테이블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함께 갓 나온 음식이 풍기는 냄새와 같이 먹으니 맛이 나는 것이다.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도 포장을 해서 집에서 혼자 먹으면 식당에서만큼 맛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때는 그럴 때라 김태원은 가수만 해야지, 부활만 해야지 왜 예능을 하느냐며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태원은 천재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정말인 거 같다. 김미경 강사, 유명한 김미경 강사가 대학생 때인가 음악에 재능을 보여 작곡도 하고 노래로 밀고 나가려고 했단다. 그래서 혼을 다해 작곡한 곡을 어느 날 우연찮게 김태원이 그 곡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5분 만에 싹 뜯어서 바꿔 주며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며 가버렸다. 그때 김미경이 그런 천재적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 가요계구나 하며 자신은 포기했다고 했다.


김태원은 괴짜 같은 구석이 많아서 그런지 타인의 노래나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김태원의 곡은 창조적이다. 표절시비에 모든 가요가 걸려 있는 요즘 부활의 곡은 거기에서 멀어져 있다. 지금 세상에서 음악이 완전한 창조가 있을 수는 없다. 이미 6, 70년대에 좋은 리듬과 곡은 다 나와 버렸다. 인간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좋은 곡에서 리듬을 좀 따온 들 사람들은 너그럽게 생각을 할 것이다.


중학교 때 학교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왔다. 한 40분 정도 걸어야 했다. 등하굣길에 친구가 되어 준 건 미니카세트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노래였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친구도 없고 그저 먼지처럼 지내는 중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우울의 극치였다. 어딘가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없는 바보 같은 중학생 시절이었다.


자율학습을 해야 하는데 한 시간만 하다가 도망을 쳐서 간 곳은 음악 감상실이었다. 거기서 디제이가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의 80년대 이야기. 사춘기가 심각하게 와버린 디제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했을 때 학교에서 학교로, 여학생에서 여학생으로 그리고 남학생으로 열병처럼 번진 부활의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것이 힘든 학생들에게 위로가 되어준 부활의 노래들.


너 이 노래 들어봤어? 무슨 노래? 부활 몰라? 부활? 그래 부활, 록 밴드인데? 에이 록 밴드는 싫어. 아니야 부활은 달라. 롤링 스톤즈의 믹재거가 레이디 제인을 불렀다면, 부활의 이승철이 희야를 불렀어.라는 이야기를 디제이가 숨을 참아가며 해 주었다.


그런데 그 희야라는 노래 말이야, 17살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노래야, 부활의 리더 김태원의 친구 양홍섭이 여자 친구가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는데, 그 아픔을 담은 노래가 바로 희야,였어.


디제이가 부활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자리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부활의 1집 앨범을 사서 희야를 듣고 또 듣고 내내 들었다. 그 가슴아픔 사연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먼지 같았던 중학생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앨범의 뒷면에는 희야에 대한 곡 설명이 있다.

[희야는 17세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진혼곡. 특히 마이클 생커도 실패한 기타에 의한 진혼의 종소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곡이다]


나는 이 진혼이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나도 글에 써먹어야지. 나의 진혼곡을 만들어야지 하며 생각했다. 1집의 타이틀 곡이 원래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였지만 ‘희야’로 바뀐 것도 그 사연이 깃든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부활의 희야 https://youtu.be/Fy3OUzgwORE


부활 초기작품을 들어보면 미소년 이승철의 미성의 목소리에 김태원의 기타 연주와 긁어대는 그 강렬한 목소리의 화음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개인적으로는 희야보다 더 좋아하고 미쳐버렸던 노래가 ‘회상 3’이었다. 이 노래를 이승철의 미성으로 부른 버전이 마지막 콘서트다. 하지만 김태원의 온전한 굵은 목소리로 부르는 회상 3은 엄청난 해외 해비메틀 속에서도 단연 나의 가슴에 박힌 곡이었다.


그건 김태원이 목이 아니라 가슴으로 회상 3을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힘겹게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자신을 저 무대 뒤에서 숨 조리며 바라보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 역시 김태원의 부인이라는 걸 안다. 노래 마지막에 나나나 하며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는 김태원 부인의 목소리라고 한다.


소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이 노래를 부르는 것뿐인 그 오래전 소년이 시간이 흘러 2023년의 늙은 소년이 되어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드럼의 거대한 소리가 공백을 흔들어 깨울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모든 풍경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 풍경 속에는 나를 바라보는 어린 소녀가 애써 눈물을 참고 있다. 불안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가슴을 이렇게나 뒤 흔들었던 김태원의 노래가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회상 3 https://youtu.be/-fRov8cqw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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