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난 뒤에 교복 바지를 좀 걷어 올린 다음 창가에 건방지게 앉아서 김현식을 듣고 있으면 겁나 멋있었다. 개뿔도 모르면서 김현식의 음악에 대해서 주절주절 거렸다.
이쪽에서는 메탈리카와 메가데쓰를 이야기하고, 저쪽에서는 유리스믹스 파들이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루나 씨, 엑스 제팬의 히데 파들이 있었다. 아무튼 그 녀석들은 유행하는 가요는 취급을 하지 않았지만 부활, 시나위, 블랙홀에 관해서는 살벌할 만큼 좋아했고, 유치하게 대립을 했다. 생각해 보면 중고딩시절에 나는 음악이 없었으면 어떻게 지냈을까, 하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고. 아 그러고 보니 미술대회에는 초중시절에 몇 번 나갔다. 그 덕분인지 대학교 때 건축과 아이들의 투시도를 그려주고 밥도 실컷 얻어먹었다. 아무튼 학창 시절에 어른들이 보기에 진절머리가 나도록 음악을 들었다. 뭐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물론 아주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멘탈이 와그작 무너질 것 같은 음악들.
그 속에서도 김현식은 독보적이었다. 김현식을 듣고 있으면 여기저기 음악적 분파들도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김현식 하면 따라다니는 말이 많았다. 전설, 싱어 송 라이트, 진정한 아티스트이자 폭군, 술꾼이라는 것.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의사가 말했을 정도로 간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안 되지만, 이 앨범, 6집을 녹음하던 중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노래를 완성할 수 없다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술을 마시게 해 달라고 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하지만 결국 6집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90년 11월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후배들이 노래를 못 부르면 의자도 집어던질 정도로 노래에 집착했다고 하는데 김현식이 술에 입을 댄 것이 밴드 활동으로 풍부한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해체하고 난 후 힘든 시기를 거쳤을 때지 싶다.
김현식은 그때 다시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이 되는데 그 해가 87년 11월이었다. 김현식은 독기를 품고 4집을 발표하는데 4집의 수록곡들이 무척 좋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그대 내 곁에’는 정말 좋아 죽을 것 같은 노래다. 그러나 4집의 멋들어진 노래들은 조금 우울하고 어둡고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노래들이었다. 88년 당시 한국은 올림픽으로 인해 굉장히 붕 떠 있던 시기였다. 김현식의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거지.
김현식은 신촌블루스의 객원보컬로 노래도 부르고, 89년에 나온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주제곡을 녹음할 때부터 슬슬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곽재용 감독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는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보면 참 재미있다. 곽재용 감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영화가 ‘클래식’이다.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다. 곽재용은 사랑을 늘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곽재용 식 판타지가 있다.
특히 영화 ‘중독’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의 반전이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가 탄생되는 배경을 그린 영화, 그 이전의 이야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에서 현재로 와 버린 어마무시한 사이보그 그녀, 아야세 하루카를 데리고 만든 ‘싸이보그 그녀’가 정말 곽재용 식 사랑을 잘 표현했다. 이 모든 곽재용 세계관의 시작이 아마도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아닌가 싶다.
그 주제가를 요즘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는 권인하 그리고 강인원, 김현식이 함께 불렀다. 김현식의 가장 매력이라고 하면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그 허스키한 목소리다. 그로울링으로 거칠게 내뱉는 김현식의 독보적인 목소리가 노래에 젖어들게 만든다. 김현식은 소울, 록에도 어울리지만 블루스에 정말 끝장이었다.
6집에서 한 곡을 고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추억 만들기’를 듣자. https://youtu.be/LMNJiA6Xl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