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사이다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지금 당장 편의점에 가서 사이다를 사 와서 꿀꺽하고 마시고 싶다. 그러나 병에 담긴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병에 담긴 사이다를 잘 볼 수 없다. 병 사이다면 킨 사이다라도 좋다. 꼭 칠성 사이다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칠성 사이다로 마시고 싶다. 시원한, 그리고 병에 담긴 사이다.


따지고 보니 사이다를 언제 마셔봤더라. 근래에는 마신 기억이 없다. 오히려 얼마 전에 콜라를 마신 기억은 있지만 사이다는 마신 기억이 없다. 대학교 때 학교 앞 주점에서 2통 1반 많이도 마셨는데. 달달하니 잘 취하지도 않다가 한 번 취하면 걷잡을 수 없었다. 같이 먹은 빈대떡과 함께 위장에서 믹스가 되어서 역류하는데 $#^$%&%#ㅆ$. 그때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는 놈들이 많았다.


일요일에 조깅을 하는데 월요일이 근로자의 날이라 쉬는 가족단위가 많아서인지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계절을 즐기고 있었다. 날은 좋아 하늘은 멍이 들어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고 먼지가 조금 걷혀 그야말로 봄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봄 소풍에는 역시 김밥이며 역시 사이다지. 초등학생 때 봄 소풍을 가면 가방에 엄마가 싸준 김밥과 사이다와 과자를 넣고 한 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도형이는 우리 반도 아닌데 나에게 와서 김밥을 뺏어 먹었다. 이 놈의 도형이는 기억 속에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냐. 도형이는 여자애다. 사실 도형이는 김밥을 잘 못 싸왔다. 도형이네 엄마, 아버지가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는데 소풍 때 김밥을 못 가져올 때도 있었다.


도형이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김밥 뺏어먹으면 되니까. 짜증 나. 초등학생 때 생각해 보면 김밥을 그렇게 많이 먹지도 못했다. 그걸 부모들은 알아서인지 많이도 싸줬다. 그래서 뺏어먹고 빼앗기고 뭐 그랬다. 목적지까지 가면 김밥이 김밥통 여기저기에 부딪혀 모양이 다 찌그러져있기도 했다. 도형이가 두 개 먹으면 질세라 나도 입에 한가득 넣어서 김밥을 먹다가 목이 콱 막히면 사이다를 마셨다. 아 시원한 사이다.


사이다. 가방에 있어서 시원하지 않았는데, 근처에서 사 먹어도 될 텐데 초등학생 때에는 가방에 적당한 무게를 채우는 그런 맛이 있었다. 소풍 가방이 너무 가벼우면 안 된다. 병으로 된 사이다의 맛을 몰라서 캔 사이다를 넣어서 갔다. 탁 따서 마시고 있으면 도형이가 사이다도 뺏어서 마셨다.


코로나 전에 고등학생들은 소풍에 김밥 같은 건 싸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인원체크하고 찢어지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찢어진다고 했다. 와 너무 재미없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고등학생 정도면 단체로 움직이는 것보다 친구들끼리 셀카 찍으며 카페에서 음료 마시는 게 훨씬 재미있겠다 싶었다.


내가 초딩 때 봄 소풍은 몇 월에 갔을까. 오월이 되고 나니 봄 소풍에 어울리는 달이 오월이 아닌가 싶다. 소풍은 가을 소풍보다 봄 소풍이었다. 가을에는 가을 운동회가 있었고 달리기에서 3등 안에 들면 상품을 받았는데 나는 곧잘 달려서 줄곧 상품을 받았다. 4학년 때 한 번 등수에 들지 못했다. 그때 좌절감이란. 어린놈의 세키가 맛보는 좌절감의 맛은 떫은 감의 몇 배는 되었다. 그래서 달리기 뒤의 행사, 뭐 있더라, 뭐 박 깨기 같은 거, 혼신을 다 했다. 하지만 상품이 걸린 달리기만큼의 성취감은 들지 않았다. 달리는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경쟁 구도에서 나 같은 놈도 잘 도 견디며 지내왔구나.


봄 소풍은 우리나라의 말에만 가능한 ‘아련 아련’이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저학년 때에는 엄마가 따라왔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 없이 반 아이들과 함께 오와 열을 맞춰서 소풍 장소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아련 아련이다. 벚꽃이 다 떨어진, 아직 장미가 세상을 점령하지 않은, 아지랑이가 흐믈흐믈 땅 위에 오르고 밤이 되면 밤꽃냄새가 퍼지는 계절이다. 소풍을 가기에는 딱 좋은 계절인 것이다.


가방에는 김밥과 사이다가 들어있다. 소풍 당일에 장소까지 가는 일도 즐겁지만 진정 행복 충만은 소풍 전날이다. 알 수 없는 기대와 학교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소풍 전날은 축제다. 아직 어린이라서 그런지 소풍 당일에도 그저 즐겁다. 요즘처럼 행복한 날이 저문다는 생각에 찬란한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기에 그저 좋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소풍이 그러면 된 것이다.


꽃가루가 코끝을 간질이고 꽃이 핀 곳에 향기가 가득하고 몇 안 되는 새들의 소리가 전부 달라서 새들의 교향시를 만들어내는 풍경이 봄 소풍의 그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햇빛을 피해 각자 그늘진 곳에 앉아서 김밥을 까먹으며 사이다를 마셨다. 생각해 보면 그럴 리 없지만 사이다는 분명 아주 시원했다. 도형이는 뭘 하고 놀았던지 이마에 맺힌 땀이 햇빛에 비쳐 반짝였고 사이다를 마시고 아 시원하다고 했다.


소풍이 다 끝나고 아쉽지 않았던 건 집으로 와서 소풍에서 뒹굴며 몸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남은 김밥과 사이다를 마시며 티브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홈 스윗 홈인 것이다. 머클리 크루의 홈 스웟 홈. 지구에서 가장 악동이고, 지구에서 제일 별나고 과격하고 약을 엄청나게 하고 인기가 제일 많은 골 때리는 세기의 밴드, 머틀리 크루는 온 세계를 씹어 먹어 버릴 해비해비한 메틀을 했지만 홈 스웟 홈을 부를 땐 한 없이 부드럽다.


지금 필요한 건 시원한 사이다 한 잔과 홈 스윗 홈이다. 야호.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홈 스윗 홈 https://youtu.be/Gmrh42foU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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