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참 눈물이 없네,라는 말을 예전에도, 지금도 듣는데 그건 정말 잘 모르는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 누구 앞에서 눈물을 흘릴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나는 포인트가 늘어간다.


단지 아이처럼 넘어져서 아파서 울지는 않는다. 잘 넘어지지도 않지만, 일단 한 번 넘어지면 어른은 너무 쪽팔린다. 아픔을 느끼기 전에 이 난관을 어떻게 수습하지 같은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조깅을 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조깅 코스로 팍 들어오는 바람에 피하다가,,, 아무튼 넘어지면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게 나에게는 관건이었다.


그런 어른들도 근래에 코로나에 걸려 아파서 우는 경우를 봤다. 나는 코로나를 아직 걸리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나 역시 걸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고 굉장한 고통으로 훌쩍 눈물을 흘릴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른이 되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좀 다른 곳에 있다. 감정을 건드리는 포인트에 눈물을 많이 흘린다. 보통 소설을 읽다가, 영화 또는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몰입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인공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전부 모여서 그 전날 드라마에 대해서 수다를 떨며 그 감정을 공유한다.


나의 경우는 소설을 제일 많이 읽고 있지만 소설을 읽고 눈물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를 봐도 그렇고, 드라마를 봐도 눈물의 포인트에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노래를 듣고 눈물을 꽤 흘리는 편이다. 노래를 듣다가 가사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가사 앞뒤로 서사가 보이면서 주인공의 삶에, 또는 가사와 곡을 쓴 작곡가에게 이입을 하게 된다. 요컨대 이문세와 이소라의 ‘슬픈 사랑의 노래’가 그렇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오는 건 아니고 잘 설명할 수 없지만 나만의 분위기가 잡혀 있을 때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이 노래는 이영훈이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애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라고 했다. 86년에 자곡을 시작해서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쓰는데 또 4년이나 걸렸다. 10년에 걸쳐 노래 하나가 탄생했다. 그런 스토리가 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이문세와 이소라의 목소리에 붙어 있어서 어떤 감정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면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이렇게만 단정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그건 팝을 듣다가 눈물이 흐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팝의 가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를 알 수 있지도 않다. 정말 설명할 수 없는 게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나오는 포인트가 있는데 그건 무척 드문 일이다.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보다 빈도수가 낮다. 나는 영화를 무척 많이 보는 편이다. 장르도 특별하게 가리지 않는다. 독립영화부터 좀비물이나 고어물까지 두루두루 다 본다. 삼일에 두 편을 보는 편이다. 아주 많이 보는 편인데 최근에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기억은 없다.


보통 4월이 되면 장국영의 영화를 답습하듯 보게 되는데 좋아하는 장국영이 나온다고 해서, 장국영이 살아있지 않아서, 장국영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만 본다고 해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마 전에 다시 본 록키 발보아의 이야기, 록키 1을 보고 눈물이 많이 흘렀다. 록키는 정말 뒷골목의 지질한 인생이었다. 못 배우고 껄렁하고 고리대금업자의 뒷일이나 하면서도 돈을 제대로 받아내지도 못한다. 그들이 불쌍해서. 두목이 때려주라는 것도 잘 못하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농담이나 내뱉는 뒷골목의 쓸쓸함과 페치카의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록키 발보아의 이야기.


록키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70년대 필라델피아로 왔다. 돈을 걸어 내기를 하는 3류 복서장에서 몸을 혹사시킨다. 당시 미국은 기회의 나라였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의 성지이며 그 해가 독립 200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은 기념을 하기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는데 크리드와 록키의, 슈퍼 복서와 삼류 복서의, 신과 인간의 대결을 부추긴다.


록키는 배운 것 없고 배우기 싫어서 몸으로 되는대로 먹고살자, 같은 정신과 투박한 말투인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말투가 친숙해진다. 록키는 에드리안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는데 점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배우기 싫어하는 록키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쓸쓸한 집에서 거북이와 금붕어에게 농담 연습을 하는 장면이 찡하다.


어둡기만 한 필라델피아 골목은 록키의 앞날과도 같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 그것이 록키 발보아의 미래였다. 하지만 록키는 자신도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지만 친구의 여동생을 악의 소굴에서 데리고 집으로 바래다주고, 주위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챙긴다. 그러면서도 새벽마다 시합을 위해 조깅을 할 때 시장 상인들이 록키에게 사과를 던져 준다.


눈물이 펑펑 흐르는 장면은 마지막 크리드와의 시합이다. 너무나 멋진 장면이다. 판정승을 한 크리드. 사람들은 록키에게 재시합을 묻는다. 록키의 얼굴은 마치 찰흙을 벽에 던져 흘러내리는 얼굴로 애드리안을 큰 소리로 찾는다. 군중 속에서 모자를 잃어버리고 록키에게 안기는 애드리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린다. 록키는 승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꼭 이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너무너무너무 좋은 영화다.


당시에 록키를 실제 권투선수로 착각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영화 속 사과를 던져주는 것도 실제로 권투 선수로 알고 록키에게 던져 주었는데 그대로 영화에 삽입이 되었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록키를 실제 권투 선수 역사에 있는 실존 선수로 알고 있다.


록키를 몇 번을 봤다. 지치고 쓰러질 때 록키의 주제가는 많이 이들에게 어김없이 힘을 주었다. 저 필라델피아 광장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양손을 높이 든 록키가 되어, 보이지 않던 앞도 보이게 될 것만 같다. 록키보다 더 멋진 사람은 코치였다. 록키의 모든 캐릭터가 눈물의 포인트다. https://youtu.be/K-YSlyhSues Rocky1 트레이닝 장면과 끝부분. -노래 : 록키 테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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