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목요일] 날이 몹시 더웠다. 오전에 밖에 커피를 투고하러 나오니 더위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건물 안에 있으면 더운 지 어떤지 전혀 모른다. 더욱이 내가 일하는 건물은 건물 뒤편의 외풍이 심해서 실내가 춥다. 그러나 밖은 더워서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났다. 이런 날은 정말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달려야 하는데 대기가 너무 뿌옇고 미세먼지가 너무 많다. 정말 공기 질이 엉망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뿌연 대기를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처음 보는 미세먼지, 처음 보는 대기질이 더 늘어나겠지.


이렇게 부옇고 뿌연 날에는 귤이 먹고 싶어 진다. 귤이 먹고 싶어서 커피를 투고해서 오다가 슈퍼와 시장에 들렀는데 귤은 하나도 없고 오렌지만 있었다. 세상에, 몰랐는데 오렌지천지였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렇게 먼지가 가득한 날에 귤을 하나 까먹으면 입으로 들어와 목에 낀 먼지가 다 내려갈 것 같다. 그러나 귤은 없고 오렌지가 세계를 차지했다. 오렌지도 종류가 많지만 요즘 먹는 오렌지는 껍질이 잘 까지지 않는다. 껍질이 얇아서 그런지 고목에 붙은 매미마냥 딱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토록 껍질이 잘 까지지 않을까. 귤처럼 한 번에 시원하게 까져서 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오렌지 껍질은 얇기도 얇아서 온 신경을 그쪽으로 돌려야 한다. 맛에 있어서도 나는 오렌지보다 귤이 더 낫다. 오렌지는 맛이 너무 진하다. 맛이 너무 난다. 이래도 안 먹을래? 같은 분위기를 가진 게 오렌지다. 그에 비해 귤은 껍질도 잘 까져, 맛도 내 입에는 딱이다. 사실 요즘 귤도 달지 않은 귤을 찾기가 어렵다. 귤이고 오렌지고 전부 스테로이드를 잔뜩 맞은 보디빌더 같다.


오렌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생활 속으로 밀접하게 들어왔을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렌지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슈퍼마켓에 귤보다 오렌지가 더 많아졌다. 어릴 때에는 오렌지가 잘 없었다. 오렌지하면 델몬트에서 나온 오렌지 주스가 전부였다. 델몬트 오렌지는 고급진 음료라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마시고 나면 그 병에 보리차를 넣어서 먹는 집들이 많았다. 요즘은 유리병은 나오지 않는데 검색을 하면 델몬트 유리병만 따로 판매한다. 델몬트 오렌지 주스는 단 맛보다는 약간 새큼한 오렌지 맛이 많이 나는 주스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맛이 별로 안 났지만 설탕은 엄청나게 들어가 있었다.


좀 비켜간 얘기로 간혹 미국의 햄버거는 엄청 짜던데, 우리나라는 짠맛이 안 나기 때문에 소금이 미국보다 덜 들어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소금 맛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서 짠맛이 나기 때문에 덜 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짠맛이 그대로 드러나면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많이 못 먹게 된다. 그러나 소금이 왕창 들어갔지만 조미료나 어떤 소스로 인해 그 짠맛이 가려지면 계속 먹게 된다. 짠맛이 덜 난다고 해서 소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뇌가 속고 있는 것이다. 국밥이나 탕이 식었을 때 먹어보면 뜨거워서 드러나지 않았던 짠맛을 잘 느낄 수 있다. 델몬트도 그렇지 않을까.


미국에도 귤이 있을 텐데, 여러 미드를 봐도 오렌지를 먹는 장면은 많이 나오는데 귤을 먹는 장면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분명 귤도 먹을 텐데 먹는 장면이 없는 걸 보면 그들은 확실히 귤보다는 오렌지가 더 맛있고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외와 멜론 같을지도 모른다. 참외는 의외로 우리나라 정도만 먹는다고 한다. 참외와 비슷한 맛이 멜론인데 더 달고 씨도 없고, 먹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더 맛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참외를 먹을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래서 메로나도 멜론이 아니라 참외를 가지고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맛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멜론을 먹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참외도 예전에는 씨까지 다 먹었는데 근래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씨는 버리고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는 시원한 참외를 노란 껍질 째 우걱우걱 씹어 먹는 걸 좋아한다. 멜론이 아무리 맛있다지만 껍질 째 먹는 참외의 맛을 못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나의 입맛에는 그게 훨씬 맛있다.


미제가 최고의 서구문화권이었던 때 오렌지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집에 정원이 크고 소나무가 있고 큰 주방이 거실에서 벗어나 따로 있는 저택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집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던 초등학생이었다. 놀러 가면 그 집 어머니가 오렌지를 꺼내 주었다. 귤 같지만 귤에서 느낄 수 없는 크고 노란 압도의 분위기가 있어서 마구 집어서 까먹을 수 없었다. 친구는 여자아이로 집에 피아노도 있고 아버지가 소아과 의사였다. 그 애가 오렌지를 까서 반을 나에게 건넸다. 맛있어,라며 먹어보라고 했다. 한 입 먹으니 주욱 오렌지의 진한 맛이 입으로 퍼져 들어왔다. 맛있지만 적응할 수 없는 오렌지의 진한 맛. 그건 그 애와의 관계가 거기까지인 것과 비슷했다. 우리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며 놀았지만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 애의 어머니가 점심식사로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스테이크 접시에도 오렌지가 놓여 있었다.


도형이네 집은 골목길에서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고 방이 붙어있었다. 신발을 벗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그런 단칸방에 도형이는 살고 있었다. 동생과 부모님이 단칸방에 살았다. 낮에는 부모님이 일하고 집에는 도형이와 동생밖에 없었다. 도형이네는 워낙 자주 가서 들어가자마자 이불을 꺼내서 덮고 눕거나 엎드려서 놀았다. 도형이네는 검은 봉다리에 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꺼내서 엎드려 까먹었다. 귤을 네 개 정도 까먹으면 배가 불렀다. 우리는 마스터 키튼 만화책을 봤다. 키득거릴 만화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재미있게 봤다. 그러다가 귤로 부른 배가 꺼지고 배가 고프면 도형이가 라면을 끓여 왔다. 도형이네는 연탄으로 난방을 했기 때문에 도형이가 연탄에 라면을 끓였다. 잘 끓였다. 방바닥에 앉아서 호로록 먹는 안성탕면은 정말 맛있었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그러면 귤을 까먹고, 마스터 키튼도 재미있었고, 도형이도 좋았다. 도형이는 6학년까지 같이 붙어 다녔다. 잘 지낼까. 도형이도 여자였다. 지금은 시집가서 아이들하고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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