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길거리에서 혼자 중얼중얼거리면 백 퍼센트 미친놈이었다. 저런 놈을 봤나! 그런 사람이 중얼중얼 거리며 다가오면 슬금슬금 피해야 할 정도로 기피 대상이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길거리에서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사람은.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 길거리에서 홀로 중얼중얼 거리는 사람은 거의 백 퍼센트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걸어가면서 손을 사용하지 않고 통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날 때부터 스마트 폰을 달고 태어난 세대는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걸어 다니면서 티브이를 보고, 전화통화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을 할 수 있고, 메신저도 가능하게 되었다. 두세 살 때부터 엄마아빠가 식당에서 밥을 편하게 먹기 위해 아이에게 스마트 폰을 쥐어 주면 조용하게 영상을 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마트 폰과 SNS가 몸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 지금의 세대는 그 이전의 세대보다 공황장애를 많이 겪으며 쉽게 겪는다고 한다.
정준희 교수가 말하는 공황장애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악몽을 꾼 적이 있는데 좋아하는 정준희 교수가 갑자기 정부의 편에서 국민을 몰아세우는 발언을 하는 것이다.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설득되게 국민들을 몰아가는 말을 단상에서 막 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전부 받아들이고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을 아무리 말려도 정준희 교수가 하는 말을 듣고서는 다 넘어갔다. 놀라서 꿈에서 깼는데 악몽이었다. 길게 쓰고 싶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고.
공황장애가 오는 이유는 내가 처리해 낼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훨씬 많은, 처리할 수 없는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왔을 때 뇌가 기능을 포기해 버려 공황장애가 온다고 한다. 지금 세대는 어릴 때부터 스마트 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그 사진을 매일 올린다. 사진을 올렸을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판단과 간섭을 받는다. 내가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얼굴 평가를 받는 것이다.
얼굴은 예쁜데 코가 좀 이상해, 아직 화장이 서투르네, 눈이 어떻네, 옷이 어떻네, 스타일이 어떻네, 친구가 없을 것 같네, 같은 댓글을 보게 된다.
보통 오프라인에서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스타일이나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뿐이지만 온라인에서는 그 범위를 훨씬 넘은, 많은 사람들에게 판단을 듣게 된다. 그중에 악플이 생각보다 많이 달리면 나의 뇌가 처리할 정도의 범위를 넘어서서 처리를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계속 그 댓글들에 시달리게 된다. 백 명, 천명 이상의 사람들의 평가를 들으니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처리를 하지 못하니 겁이 나고 숨이 막히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사람이 무서워진다.
그래서 공황장애가 많이 걸리는 부류가 연예인이다. 연예인들은 공황장애를 많이 겪는다. 엄청난 사람들의 공격을 한 개인이 처리하지 못한다. 연예인은 권력이 없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 연예인이다. 악플을 다는 인간은 그저 저 연예인이 싫어서 계속 악플을 단다. 그런데 그 악플이 교묘하게 그 연예인이 공정하지 못한다는 글로 도배가 도면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게 된다.
요컨대 연예인들은 노출이 되어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일반인을 만나면 대하는 태도가 늘 밝고 명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평소 행실이 엉망이라고 댓글을 달고 그쪽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그리하여 연예인을 끌어내리고 일거리를 줄이는 것으로 쾌감을 얻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공격에 연예인들은 속수무책이다. 악플에 승소를 했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추락한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린 이미지는 그대로 묻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승소를 하고 소송을 할 수 있는 연예인은 소속사가 대형회사 거나 자본이 많거나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회사일 때나 가능하다. 한 개인으로서는 권력도 힘도 없는 것이 연예인이다. 그래서 다른 직업에 비해 연예인들은 공황장애를 많이 겪는다.
인간은 너무나 모순적이라 내가 다는 공익적 악플이 정당하다고 생각이 든다. 계속 악플을 달다 보면 자신을 합리화를 시킨다. 무엇보다 나의 악플에 동의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마치 내가 정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치인? 정치인은 쉽지 않다. 가장 공격하기 쉽고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연예인이다. 그렇게 해서 한 연예인을 끌어내리면 끝나는가? 아니다. 재미있기 때문에 또 다른 타깃을 찾아다닌다.
공황장애는 정신적인 장애로 진단을 받아야 한다. 공황장애 그전 단계가 공황상태인데, 나는 공황장애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은 어쩌면 공황상태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황장애는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의사가 진단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공황장애 전 단계인 공황상태인 경우가 많다. 고로 공황장애는 심각하다는 말이다. 고로 공황장애는 스마트한 기기와 너무 가까이 있으면 빠져들기 쉬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제 길거리에서 유선 이어폰을 긴 사람도 거의 볼 수 없다. 그만큼 스마트한 기기들이 몸에 밀착되어 있다. 주위에서 왜 애플워치 사용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아이패드프로처럼 나는 스마트워치가 그다지 필요가 없다. 그놈의 심박수 매 시간 알아서 뭐 하나. 내 심박수가 80인지 100인지 매시간 체크해서 뭐 하려고. 그건 심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착용을 해서 체크를 하면 된다. 애플워치를 작년에 구입을 했으나 조카에게 줘버렸다. 조카도 또래에 비해서 좀 이상한 아이인지 하루이틀 착용하더니 벗어 놓고 다닌다. 친구들은 죄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지만 조카는 불편해서 싫다고 한다.
나에게는 지샥 DW5600 바리에이션이 두 개나 있어서 애플워치는 필요가 없다. 게다가 나는 지샥의 디자인을 좋아해서 다른 디자인 시계를 별로다.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스마트 한 기기들과 한 몸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생활이 편리해서 좋다고 많이들 말을 하는데 좀 불편하면 어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몇 킬로미터 달렸는지 바로 알 수는 없지만 매일 달리는 코스의 거리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신용카드가 없어서 폰으로 결재하는 것도 안 된다. 현금을 넣어 다니다가 현금이 없으면 안 사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왔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SNS에 올리고 듣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중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인가? 날 때부터 스마트기기를 달고 태어나는 세대에게 SNS를 멀리하라고만 하면 들어 먹을까. 공황장애는 무서운 장애다. 진단이 필요하고 처방이 필요하고 치료가 필요하다.
요즘은 문화심리학 박사 김정운 교수를 잘 볼 수 없지만 한때 김정운 박사를 티브이만 틀면 나오던 때가 있었다. 김정운 박사가 강조하는 것이 몸이 휴식이 필요하듯 정신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늘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매일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 뇌가 기능하기를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장 큰 문제는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제대로 된 진단을 받고, 제대로 된 처방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SNS로 손쉽게 약을 구입해서 투약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앞으로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약은 종류가 너무나 많고, 가격이 저렴할수록 혼합된 약물이 많고 중독도 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