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설가 지망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자연계 출신이고 건축을 전공해서 그런지 원래는 문학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문학은 개뿔, 책은 라면 받침대, 벼개(베개 – 베게, 배게 왜 이렇게 헷갈리나/의 사투리다)로만 쓰는 건 줄 알았던, 그런 섬뜩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소설도 집필하고, 밀리의 서재에 소설집도 내고, 문예지에 소설도 연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전에는 독서모임도 주최하고 사람들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


와, 전공자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같은 말을 가끔 듣는데, 그럼 전공한 건 엄청나게 잘 알겠네? 인생이란 뭐 그렇지. 전공했다고 해서 그 분야를 전부 잘하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 전공하지 않아도 관심이 있으면 또 그 분야를 파고들지도 모르지. 나 같은 인간이 하루키의 소설을 죄다 몇 번씩 읽다니,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소설가 지망생과 나의 공통점은 둘 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장편소설이 일본에서 오늘(4월 13일) 서점에 풀렸다. 어서 빨리 한국출판물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전의 단편집 ‘1인칭 단수’도 마지막 단편 소설은 아직 읽지 않고 있다. 다음 소설이 나오기 직전에 읽어야지 했는데,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글 쓰는 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잘 쓴다. 단지 지가 쓴 글이 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소설가 지망생은 꼭 그런 말을 한다. 아니 그런 맨트를 쓴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단 한 명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같은 말. 이런 말은 겉멋 든 프로필용 멘트 아니냐.


너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가 너를 위로하고 너를 감싸 안으면 됐지, 왜 꼭 누구에게 위로를 주고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네, 응? 잘 나가는 작가하고 비교해 봐야 나만 손해다. 하루키하고 비교해 봐야 나만 초라해질 뿐이다. 하루키처럼 되고 싶은 건 알겠으나 하루키는 되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비틀스가 되고픈 가수들을 몇십 년 동안 봤다. 하지만 비틀스가 되지 못한다.


한 달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소설적으로, 작법이니 문학적으로 조금 발전했으면 정말 기분 좋은 거 아니냐. 그렇다면 일 년 후의 나는 일 년 전의 나보다 훨씬 나아졌겠지. 그때 일 년 전의 나의 글이 나를 위로하고 있구나. 그렇게 해서 일 년 동안 나를 이만큼 달려왔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누군가를 위로하고, 한 사람에게라도 위안을 주는 건 그건 그저 멋이 들린 멘트다.


예스 24에서 하루키를 검색하다 보니 책제목이 ‘무라카미 하루키 일큐팔사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이 150권이나 팔렸더라. 그저 나의 생각이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분명히 정작 하루키의 일큐팔사는 읽지 않을 것이다.


목차를 보면 하루키의 소설과 무관하게만 보이는 제목들뿐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분석하는 글이 하루키의 일큐팔사를 읽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이 책을 볼 시간에 일큐팔사를 보는 게 훨씬 낫다고 본다.


나는 이미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책에서 그걸 깨달았다. 이렇게 쓸데없이 분석하고 까발리는 글을 보는 것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낫다. 마녀배달부 키키를 보며 지지와 이야기를 하던 키키가 어떻게 변하는지, 또 세상을 받아들이는지 눈과 귀로 직접 보는 게 낫다.


어른들 중에 전두환을 두둔하는 말을 가끔 들을 때가 있다, 이런 쉬발 미친. 그럴 때는 가만있게 되지 않는다. 그러면 본인 주위는 다 그런다고 한다. 본인 주위의 4, 5명의 친구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이 세상 모두가 그런 줄 안다. 어른이 되어도 눈과 귀를 협소하게 좁혀 놓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518에 대해서 물어보면 전혀 뚱딴지같은, 이상한 말을 한다. 눈과 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것이라 믿으면 낭패가 온다.


글은 이미 잘 적는 소설가 지망생아, 학교에서 겉멋 같은 것은 빼라고 가르쳐달라고 해.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쓰고, 나의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다. 다른데 정신이 팔리면 망치게 된다. 권경애를 봐. 변호사 일은 제쳐두고 매일 정치에 관심만 보이고 SNS만 하고 사건 변호일은 나 몰라라 하더니 이 사달이 난 거다. 겉멋에 맛들 리면 답이 없다. 너도 하루키를 좋아하니까 우리 같이 하루키의 한국출판물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