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첫 일요일이 지나간다. 단 한 번뿐인 2023년 4월 9일의 일요일지 지나간다. 사월치고는 날이 쌀쌀하다. 그늘에 있으면 춥다. 햇빛에 있으면 따뜻한데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 버리면 춥다.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하는가. 아직 난로를 틀고 있다. 날이 쌀쌀하지만 저기 건장한 청년은 반팔을 입고 다니고 있다. 근데 실은 나도 반팔이다. 실외는 오히려 괜찮은데 실내가 더 춥다. 잔인한 달이다.


극과 극. 사월인데 비슷해야 할 옷차림이 대극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있다. 내가 겨울 옷을 입고 있다는 건 아니고. 어떻든 사월은 잔인하다. 극과 극이 공존하고 있으니. 밑으로는 며칠 간의 사진이다. 며칠 동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후두두둑 다 떨어져 버렸고, 그와 동시에 쌀쌀함이 틈을 벌리고 세상에 들어와 버렸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대체로 몸속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느닷없이 다른 형태가 되어 비명처럼 밖으로 툭 튀어나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잘하지 않는다고 해서 친밀함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열심히 사랑을 나누고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꼭 자야 하나? 와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온도가 맞지 않고 불편하면 따로 잠들어도 될 텐데. 그런다고 친밀함이 멀어지는 것도 아닌데 멀어진다고, 멀어졌다고 생각을 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문젠데 간단하게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보통 생각하는 게 무서우면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진격의 거인에서 아르민이 한 말이었다. 진격의 거인 재미있었다. 이제 4기까지 나왔나? 아무튼 생각하는 건 사실 무섭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니 일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이 다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이 그랬나? 모든 문제는 모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고. 좋은 말이라 생각된다.


생각하는 건 무섭기 때문에 자꾸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고 싶다. 나만 그럴까. 나만 그렇다고 치자. 생각이란 생각을 자꾸 불러낸다. 그래서 생각은 하면 할수록 가망성이 떨어진다. 가망이 없는 생각은 무섭다. 생각에 생각을 덧입혀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들어도 생각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젠 생각에서 벗어나야지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사생활을 필요이상 말하지 마라. 사람의 이기적 본성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 따라서 나의 사생활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내 이야기가 주변에 퍼져서 심심풀이 주제로 소비되거나 언젠가 비수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털어놓으면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기보다 오히려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금은 아주 가깝지만 몇 년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 사이다.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 만약 나의 깊은 사생활을 잘 아는 사람과 관계가 안 좋아지면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특히 나의 안 좋은 습관들이나 불행한 가정사는 더욱 타인의 판단과 비판에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삶의 특정 부분을 비밀로 유지해야 내가 더 품위 있고, 남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하고, 집에 돌아와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내가 따라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말을 너무 하게 되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히데의 이야기나 서태지의 음악이나, 유투의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주저리주저리 잘 도 한다. 하루키에 대해서도, 백석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은, 백석 빠인 안도현의 백석평전을 읽은 덕분일까.


플라톤의 위대함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삐삐다. 다 아는 그 말괄량이 삐삐. 삐삐의 롱네임은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매크럴민트 에프레임즈 도터 롱스타킹.


말괄량이 삐삐를 보면 플라톤에 대해서 나온다. 삐삐는 어느 날 빌라빌라클라라는 큰 집으로 미스터 넬슨(원숭이)과 점박이 큰 말(이름이??)과 함께 이사를 온다. 큰집을 동경하던 토미와 아니카가 그 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는 소리를 듣고 가게 된다.


베개를 머리가 아닌 발로 베고 자고 온 집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의자를 치우는 것도 집어서 저쪽으로 던진다. 토미와 아니카는 자신의 집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을 삐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제멋대로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만 삐삐를 사랑하게 되는 토미와 아니카.


삐삐 속에서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전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삐삐를 끝까지 고아원에 데리고 가려는 리사 아줌마가 있다. 또 마을을 지키는 경찰 두 명이 있다. 크림이라는 키가 크고 마른 경찰과 크레인이라는 뚱뚱한 경찰. 그리고 마을의 감옥에서 늘 탈출을 하는 악당(이라 부르기에 너무나 귀엽고 철딱서니가 없는, 그렇지만 게으르다) 두 명이다. 작고 마른 부릉과 뚱뚱한 돈이다.


그들은 삐삐를 괴롭히거나 삐삐의 금화를 훔치려고 하지만 늘 삐삐에게 당하는데 삐삐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푼다. 삐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른들의 세계, 자본주의에 저항을 한다.


하루는 토미와 아니카처럼 방학을 하고 싶어서 삐삐는 미스터 넬슨을 데리고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미스터 넬슨을 소개해 주는데 선생님만 넬슨을 싫어하고 아이들은 좋아한다. 삐삐가 학교에 가자마자 하는 말이 위대한 플라톤에 대해서 배우러 왔다고 한다.


선생님: 5 더하기 7은 얼마니?

삐삐: 모르세요?

선생님: 나야 알지, 12잖니.

삐삐: 다 아시면서 왜 물어요?

선생님: 토미는 사과가 7개 있고 동생은 9개가 있는데 합치면 몇 개가 되니?

삐삐: 아유 그걸 다 먹으면 배탈이 날걸요. 그걸 왜 다 먹어요?


삐삐는 그리고 선생님에게 다른 지문에도 왜 그걸 알고 싶어 하느냐고 묻는다. 삐삐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말을 시원하게 한다. 결국 삐삐는 갇힌 공간과 짜인 틀에 싫증을 내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러면서 위대한 플라톤의 배움을 받으러 다시 올 수 있으면 오겠다고 한다.



사월이 잔인하다고 한 건 티에스 엘리엣이다. 그의 시 ‘황무지’의 시작을 사월의 잔인함으로 출발한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엘리엇의 시가 아니라도 우리나라도 잔인한 사월이다. 사월에는 유독 사건, 혁명, 참사가 일어났다. 매일 달리는 조깅 코스도 사월에는 남달라 보인다. 어디서 잠을 자는지 알 수 없는 강변의 길고양이가 그리운 이가 있는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움은 잔인하다. 5월에는 동네의 길고양이처럼 살도 찌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라.


낚시하는 모습은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 세상 재미없을 것 같은 게 민물낚시다. 물고기보다 시간을 낚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 물고기들아 제발 걸려 올라오지 마라.


비가 한 번 오더니 벚꽃이 다 떨어졌다. 그다음 날에는 벚꽃이 전부 떨어졌다. 잔인하다. 잔인한 사월이다. 유채가 예뻐서 잔인하고, 저녁에 보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잔인한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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