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자석처럼 멍게를 찾아 먹는다. 봄 미나리와 멍게를 먹기 시작한 후로는 봄이 되면 개나리가 피듯 멍게를 찾아서 먹게 된다. 멍게는 뜨거운 물에 아주 살짝, 한 번 데쳐서 먹으면 더 맛있다. 멍게는 멍게 맛으로 먹는 게 훨씬 좋다.


멍게를 먹을 때 초장에 찍어 먹으라고들 하는데 멍게를 초장에 찍어 먹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멍게는 멍게 맛으로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훨씬 맛있기 때문이다. 멍게의 그 풍요로운 맛, 그 기분 좋은 맛을 초장에게 다 빼앗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초장은 반찬이 아무것도 없을 때 밥에 훌훌 비벼 먹을 때나 사용하자.


멍게를 미나리와 함께 밥에 이렇게 올려 멍게와 밥을 먹거나 휙휙 비벼서 먹는 맛이 나에게는 봄의 맛이다. 여름은 여름이라고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지만 봄은 언제 왔는지 모르게 온다. 아직 난로를 틀고 있지만 밖은 벚꽃이 올라오고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색을 띄운다.


멍게는 사계절 늘 먹을 수 있지만 봄에 먹는 멍게가 나는 제일 좋다. 이렇게 5월까지는 열심히 먹어재 낀다. 미나리와 함께 먹는 멍게가 단연코 맛있다. 멍게비빔밥에도 옆에서 자꾸 초고추장을 넣으라고 하지만 용납할 수 없다. 이것만은 타협을 하지 않는다.


나는 멍게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요즘은 멍게가 전부 손질이 되어서 팔지만 예전에는 직접 아버지가 직접 손질을 했다. 여름방학의 일요일에 오전 일찍 일어나면 티브이에서 어린이특선 만화가 하고 있었다. 그걸 보다 보면 아버지가 이른 시간에 시장으로 가서 멍게를 이만큼 사 와서 마당의 수돗가에서 늘 손질을 했다.


나는 만화를 보다가 마당에 나와서 앉아서 아버지가 수돗가에서 멍게를 손질을 하는 모습을 봤다. 아버지는 쪼그리고 앉아서 멍게를 다듬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남달라서 회사에서 만들어온 칼들이 많았다. 아주 잘 들고 용도도 남다른 칼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여러 칼들 중에서 작고 날이 아주 날카로운 칼로 멍게를 따고 쓱싹쓱싹 내장을 분리했다.


꼭지도 따고 내장을 빼내는데 이미 등에 나는 땀 때문에 러닝셔츠가 다 젖어 있었다. 나는 일요일 마침마다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질이 끝나면 나를 불러 등목을 치게 했다. 멍게는 간간하니 묘한 맛이 났다. 멍게를 먹고 있으면 아버지의 등이 생각난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정수리에 그대로 받으며 멍게를 손질하는 모습. 그의 뒷모습.


멍게를 먹으면 먹게의 맛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아주 기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건 분명 기시감이다. 봄이 되면 느끼는 그 알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멍게가 기억의 한 부분을 건드린다. 기시감 중에서도 가장 깊고 강력한 기사감이다. 아? 이건 그때에도 이런 일이 한 번? 같은 기시감이 아니다. 한 번 겪어봤는데? 따위의 것이 아니라 몹시 모호하고 부옇고 애매하고 끈적하지만 강력한 기시감이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멍게를 먹으며 이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휩싸일 수 있다. 그때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흐른다. 시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특히 물리학자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난처한 얼굴이 되는 질문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다. 시간을 정의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단지 시간은 흐른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의 시간이 흘러 지금의 시간이 되었다. 분명 멍게의 맛도 달라졌겠지만 기시감 때문에 그때의 멍게 맛을 느끼고 있다. 인간이란 너무나 기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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