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에 양배추김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때 뭐 맛있으면 그만이지. 사실 양배추 김치를 우리는 잘해 먹지 않아서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양배추로 김치를 하면 나름대로 맛있다. 배추김치에 길들여져서 그렇지 양배추로 담근 김치도 수육에 꽤나 잘 어울린다.


짜장면을 상추에 싸서 먹는다면 뭐야 그게?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또 그렇게 먹으면 맛있다. 게다가 기름진 짜장면을 상추의 상큼함이 완화시켜 준다. 어릴 때 나는 우유에 밥을 왕왕 말아먹었는데, 그때에도 그런 소리를 듣곤 했다. 우유에 밥을 말아서 무슨 맛으로 먹어? 하지만 우유에 밥을 말아서 먹으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꽤나 맛있다.


솔직히 지금의 로제떡볶이의 모습을 예전에 상상이나 했을까. 떡볶이는 무조건 붉은색이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 틀이 완전히 다 무너졌다. 맛있는 것에 있어서 편견은 정말 무섭다. 떡볶이는 예전부터 5일장이 열리는 전통시장에서 간장떡볶이를 팔았다. 오래되었다. 떡볶이에 밥을 비벼 먹을 거라고 누구도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걸 우리는 크로스오버라고 한다.


노래에도 둘이 만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둘이 만나서 어울리는 노래가 있다. 정지용 시인의 시에 김희갑 선생이 곡을 붙인 곡 ‘향수’가 바로 그것이다. 향수를 부른 테너 박인수 교수가 2월 28일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같이 부른 가수 이동원은 21년에 친구인 개그맨 전유성이 보는 앞에서 별이 되었다. 정지용 시인의 시에 음을 붙은 곡이라 가사를 보면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향수를 들을 때마다 이 가사에 매료되어, 거짓말 좀 보태서 미칠 것만 같다. 이런 표현, 이런 문장이 마치 나를 그 광경으로 데리고 가는 것만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말 너무 시가 좋다. 특히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라는 부분은 나의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릴 것만 같다.


향수는 89년에 느닷없이 이동원이 박인수 테너를 찾아간다. 그때까지도 박인수 테너는 이동원이라는 가수도 몰랐고, 정지용 시인의 시도 알지 못했다. 난생처음 보는 이동원이라는 가수가 찾아와 정지용 시인의 아름다운 시가 있는데 이 시에 곡을 붙여 같이 부르시겠습니까. 너무 아름다운 곡이 될 겁니다.라고 한다. 박인수는 뭐지? 하며 시를 읽었는데 대번에 같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런 박인수 교수도 이제 고인이 되었다.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하는 크로스오버의 문을 연 고인은 생전에 국민테너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국립오페라단에서는 쫓겨나야만 했다. 그 이유가 대중가수와 노래를 불렀다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장르에 따른 고귀함, 높낮이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한 고인의 말처럼 크로스오버는 이제 흔한 장르가 되었다. 하지만 풍성해진 음악과 달리 여전히 우리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이곳저곳, 여기저기에서는 선을 긋고 서로를 구분하고 멸시하고 있다. 이런 차별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차이를 인정하기보다 차별하는 것이 예전보다 더 만연하고 있다.  


박인수 교수가 보여줬던 크로스오버의 용기가 우리 사회 곳곳 더 넓게 퍼져나가서 향수를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마음 깊이 한 번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노래를 마음으로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던 고 박인수 교수와 대중가수 이동원의 명복을 빌며.



향수 https://youtu.be/h8V3bm8io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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