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계절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입니다. 이런 날은 꼭 달의 뒤편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맘때가 되면 늘 드는 감정이니까요. 달의 뒤편은 가본 적이 없지만 상상을 하면 달력의 뒷면처럼 늘 가까이 있지만 펼쳐 보지 않는 세계, 그래서 그 세계가 있다는 걸 알지만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입니다. 어제까지 주머니에 손을 짚어 넣어 걸어야만 하는 날씨였다가 오늘에 이르렀을 때 그 틈을 벌리고 봄날의 기운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달의 뒤편 같은 겨울의 끝인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끝이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끝이 있으면 반드시 시작이 있으니까요. 끝이란 시작을 알리는 시점 같은 것입니다. 나는 궁금하여 뒤편으로 돌아가면 다시 저만치 가버리고 주저하다 보면 어느새 달의 뒤편은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분명 밤이 도래하면 역시 겨울의 차가운 날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뒤편의 세계가 사라질까 불안합니다. 기시감이 들지만 이런 기시감은 언제나 기묘한 감정을 불러들입니다. 그 속에는 불안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지금에서 보니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인간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끝없는 불안이 밀려들지는 몰랐습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내내 불안했던 마음이, 지금 불안이 더 커졌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불안의 형태와 크기는 더 커지고 불확실합니다. 불안은 점점 모호해지며 구체적으로 늘어난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불안은 어쩌다 불안하지 않을 때 더 증식합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일상을 유지하지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나면 이 불안은 나의 일상을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나면 분명 일상은 와그작 망가지겠죠. 매일 라디오를 켜 놓는데 가요가 나오면 가사는 되도록 곱씹어 듣습니다. 가사가 주는 터치가 음이 건드리는 터치보다 나에게는 더 강력합니다. 그래서 가사를 무시하려고 하지만 가사에 집착은 더 심해집니다. 집착을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 노래를 들어야 하는데 라디오는 그렇게 하지는 않군요.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요. 나는 분명 달의 뒤편처럼 알 수 없는 곳에 서 있습니다. 깜깜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때 누구에게 털어놔야 합니까. 아닙니다, 나의 불안을 듣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나의 불안 따위를 털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거울 속에는 불안이 짐짝처럼 붙어 있는 한 남자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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