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바닷가이니 가끔 바닷가를 조깅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일하는 곳 주위를 조깅하는데 바다와 좀 떨어져 있고 강변이다. 그러다가 집 근처 바닷가를 조깅할 때가 있는데 바닷가에 붙어 있는 여러 군데의 편의점 중에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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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만 먹기에 뭔가 모자란다 싶어서 칼스버그 캔맥주도 사고, 무엇 때문인지 방울토마토도 구입했다. 방울토마토는 왜 구입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빨간색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토마토가 먹고 싶었는지. 방울토마토를 대충 씻은 다음 아작아작 깨물어 먹어도 양이 많아서 한 열 개 정도 컵라면에 넣었다.


칼스버그도 4캔이나 사버렸다. 조깅 후 먹기에는 뭔가 헤비헤비하다. 홀가분하게 조깅으로 집에 들어와야 하는데 배는 배대로 무겁고, 손은 손대로 자유롭지 못하다. 남은 캔맥주와 남은 방울토마토까지 들고 와야 하니. 왜 이렇게 귀찮게 살지? 나는 왜 그랬을까 싶다가도 뭐 어쩌다가 그런 건데, 마 이까.


사실 맛만으로 따지면 토마토는 가열해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 매운 라면을 끓여 먹을 때 큰 토마토를 왕왕 넣어서 먹다 보니 컵라면 안에도 방울토마토를 넣어 버렸다. 우리나라 토마토는 집구석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토마토의 본고장, 토마토 축제가 열리고 상대방에게 토마토를 집어던져 핀지 토마톤지 구분도 안 되게 하는 주옥같은 상황에서도 즐거운 이태리의 토마토는 불타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는 소년기를 갓 넘긴 청춘의 느낌이다.


얼마 전에 영화 ‘탐정 홍길동’을 봤다. 이 영화는 저짝 천조국의 ‘씬시티’를 옮겨 놓은 듯했지만 나름 재미있다. 그 재미 속에는 말순이가 있었다. 말순이 덕분에 영화가 재미있게 보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말순이는 어린이 멜리사 맥카시의 모습 같았다. 멜리사 맥카시가 ‘스파이’에 나왔을 때 스파이로 분장을 해야 하는데, 풍성한 아줌마, 캐롤 젠킨스로 신분세탁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실망하는 얼굴이 말순이의 표정과 비슷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방군가.


홍길동에서 김성균의 안경이 반짝이는 건 ‘씬시티 2’에서  에바 그린을 찾아간 유부남이었던 모트의 안경이 반짝이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에바 그린은 정말 여러 장르, 모든 장르물에 어울리는 배우 같다. 특히 에바 그린의 목소리가 악역에도 어울렸다. 내가 뭘 안다고 큭큭큭. 아무튼 많은 배우들이 씬시티 2에 나오는데(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님) 레이디 가가도 나온다. 무슨 역으로 나왔을까요.


씬시티에서 조니 역으로 나오는 조셉 고든 레빗을 보면 카세 료가 생각난다. 역시 나만 그런 것이겠지만. 카세 료는 재벌집 아들로 연기를 재미로 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는 않다.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라는 느낌이 강하다. 스님 역을 해도, 질투에 불타는 지질한 놈팡이 역을 해도, 은행원을 해도,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많은 성공한 배우들이 한결 같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절망 끝에 다다르면 연기가 꽃처럼 피어난다고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쫓기지 않아서 어쩌면 연기를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기는 타고나는 것도 있겠지만 동선이나 행동, 상황 모두가 과학이라 정교하게 이루어져 노력 또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타고 나는 경우가 거의 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고 생각한다. 노력으로 어느 선까지는 글을 적을 수 있겠지만 그 너머의 글은 그 사람이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타고났는데 어떤 식으로든 방향을 잡지 못하니까 노력을 통해서 발가락 끝 세포까지 글을 쓰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다. 또 타고났는데도 노력 또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베토벤이다. 베토벤이 그랬다. 2층에 살고 있었는데 비가 오고 난 후 계속 1층 천장으로 물이 떨어졌다. 집주인이 빡이 돌아서 올라가 보니 피아노를 치다가 손에 통증이 오면 받아놓은 빗물에 손을 담가 통증을 완화시키면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그대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천재적으로 타고난 베토벤도 통증을 참아가며 연습에 연습, 노력에 노력을 했다. 베토벤은 임현정, 쇼팽은 조성진, 리스트는 백건우로 정리 끝. 비발디 사계 겨울은 주미강!으로 정리한다.


빌리 조얼도 그랬다. 피아노 맨이 터지기 전까지 그는 모든 게 실패였다. 실패하는 게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한 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파트타임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이야기를 만든 게 ‘피아노 맨’이었다. 이상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떤 지점에서 코끝이 시큰거린다. 오늘의 맥락 빻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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