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추운 날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음식으로 찌개만 한 것도 없다. 호다닥 끓여 먹기에도 찌개가 가장 간단 빠르다. 이렇게 추위가 세상을 덮쳐 꽁꽁 얼게 했을 때 찌개는 몸과 마음에 뜨거운 공구리를 쳐버렸다. 그 뒤로는 휘이이잉 칼바람이 부는 날이면 찌개를 끓여 먹는다.
찌개는 제목처럼 근본 없이 끓여야 맛있다. 이유는 밖에서 몸이 식을 대로 식은 채 들어와서 빨리 찌개를 끓여 먹어야 한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죄다 넣어서 끓이면 된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하는 건 두부다. 두부가 찌개에서 뜨거울 대로 뜨거워져 두부를 건져 먹었을 때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그 고통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껴야 몸이 풀리는 듯한 마법이 벌어진다.
참치라도 있으면 넣으면 된다. 꽁치? 꽁치는 고급 재료 속한다. 있으면 넣고 없다 해도 크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근본 없이 이것저것 넣어서 끓이게 되면 뜨겁고 맛있(다고 느껴지는)는 찌개가 완성된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퍼지는 냄새가 있다. 벌써 이 냄새에 한 번 몸은 한 번 녹아내린다. 냉장고에 남은 고기가 있다면 그것도 넣고, 떡국떡도 넣고, 매운 고춧가루를 많이 부어 너무 맵다 싶으면 아이스크림을 넣어도 된다. 찌개나 라면에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모두가 으 하는 표정이지만 먹어보면 아주 맛있어한다. 이건 정말 혁명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겨울에 일하고 힘든 몸을 끌고 집으로 곧장 올 수 있었던 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맛있는 찌개를 우리와 함께 밥상에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작은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에 손을 호호 불며 버스 정류장에 아버지를 마중 나가서 아버지가 내리는 버스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다. 찌개는 아버지에게 큰 위로이자 위안이었다. 근본 없이 끓여 놓은 따뜻한 찌개와 가족이 나를 기다린다는 기대가 하루 종일 노동에 지친 몸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 것이다. 이 평범함이, 이 평범한 생활이, 이 평범한 식탁이 아버지에게는 특별함이었던 것이다. 깨지지 않게 하리라.
이런 한 끼의 소중함을 잘 다룬 소설이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다. 보통 인간의 삶은 잠깐의 행복한 순간을 연료로 길고 긴 썩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당장 행복하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고, 지금 불행하면 계속 불행할 것만 같지만 인간의 삶이란 그렇지 않다.
아들의 생일에 빵집에 케이크를 주문하면서 무뚝뚝하고 정이 없는 빵집 주인에게 아들에 대한 글귀나 메시지 같은 것을 케이크에 주문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서 속상한 엄마와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내는 생활을 행복의 정점이라 여기는 아빠가 있는 평범한 가족의 천진난만한 아들이 그만 차에 살짝 치이고 난 후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 아들은 죽었는데 빵집 주인은 케이크 찾아가라고 자꾸 전화를 하고. 아이의 엄마는 아들의 죽음이 마치 빵집 주인 때문인 것처럼 느껴져 빵집 주인을 찾아가 아들이 죽었다며 울며 따지고 든다.
그러면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처럼 빵집 주인은 미안해하며 빵과 커피를 내주며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라고 한다. 그제야 며칠 동안 먹지도 잠도 제대로 못 잤다는 걸 알게 된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먹으며 허기를 채운다. 그리고 빵집 주인의 외로움과 어떤 보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 먹었던 빵은 그렇게 비싸고 좋은 빵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근본 없는 찌개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타인과 매일 작게든 크게든 소통이 되지 않아 늘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상대방은 나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나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그렇다. 아침에 나올 때 엄마와 말이 통하지 않거나, 친구와 마음이 맞지 않거나, 애인은 연락도 없이 지하고 싶은 대로만 하거나.
그럴 때 근본 없는 찌개를 끓여 사이에 두고 먹다 보면 어느새 소통이 되고 말이 통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근본 없는 찌개를 불편한 사람과는 먹지 않는다.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이와 같이 먹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 의해서 영화가 되었다. 제목은 ‘숏 컷’으로 1995년 작품이다.
아이의 엄마로는 젊디 젊은 앤디 맥도웰이 나온다. 이 영화에는 지금의 대 스타들의 2, 30대 시절을 볼 수 있다. 앤디 맥도웰을 비롯해서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미국 영화계 안에서도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 매들린 스토우. 전 세계를 휩쓴 넷플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일레븐의 양아빠로 나오는 매튜 모딘, 말해 뭐하겠노 줄리안 무어와 아이언 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까지. 그 외에도 수두룩하다. 3시간이 넘는 시간 이어지지만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면 푹 빠져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일단 감독이 로버트 알트만 아닌가. 그리고 숏 컷 이 영화를 흐르는 골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모든 단편 소설을 이어 붙였다. 그래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 이 장면! 같은 흥분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 아주 젊은 줄리안 무어가 발가벗고 나오는데 가리는 게 없음을 알려드림.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의 하마구치 류스케가 하루키의 단편들을 죽 엮어서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것과 비슷하다. 영화 숏 컷 밑에 달린 댓글 중에 누군가 [세상은 작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딱이다. 영화가 그렇고 우리 삶이 그렇다. 그 속에 나의 근본 없는 찌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