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철이의 이야기


인간은 왜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무서워하면서도 집착을 하는 것일까. 얼마 전(2021)에 일본에서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라고 쓰고 휴머노이드에 가까운) 오르타 3이 슈퍼 엔젤스라는 오페라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인간과 닮았다고는 하지만 얼굴의 앞면만 인간의 모습이고 나머지는 차갑디 차가운 기계의 몸이었다. 게다가 하체는 뱀처럼 붙박이였다.


안드로이드와 휴머노이드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말하면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닮은, 완전히 같은, 흔히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인조인간을 말한다. 웨스트 월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호스트들을 안드로이드라 부른다. 반면에 휴머노이드는 안드로이드처럼 인간형 로봇이지만 팔다리가 달린 로봇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피부나 인간의 얼굴을 그대로 본뜨지 않는 로봇을 말한다. 좀 더 세세하게 말하면 ‘가이노이드’도 있는데 이는 인간 여성형 로봇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2015년에 인간형 로봇 휴보와 에버를 개발해서 선 보였다. 얼굴은 인형 인형 한 아인슈타인의 얼굴에 몸통은 우주복 같은 모습이었다. 또 하나는 완전한 로봇의 모습이었다. 안드로이드가 아닌 휴머노이드이다. 어쨌거나 모두 인간의 모습을 본뜨고 있다. 2015년에 한국이 어떻든 이 분야에서, 세계 로봇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인간은 휴머노이드를 넘어 안드로이드에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있다. 2017년 미국에서 소피아라는 인간과 아주 흡사한 안드로이드를 선보였다. 우리나라에도 방문해서 한복을 입고 사람들과 대화를 했다. 그때 벤처 장관인가? 박영선 의원과 대화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소피아는 말을 하면서 표정도 변하고, 상대방을 보며 나이나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도 했다. 소피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로봇 최초로 시민권을 받았고 모델로 패션잡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소피아를 보고 사람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과 너무나 닮은 로봇의 모습에 무서워하기도 했다. 소피아는 2016년에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암울하고 비관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바로 인류를 파멸시키겠다고 해버렸기 때문이다. 놀랍도록 무서웠다.


그럼에도 감염병을 앓고 있는 전 세계를 보며 자동화 AI 기술력은 더 진보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 왜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이는 인간을 이루고 있는 세포 체계가 잔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미래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했던 공각기동대. 쿠사나기 소령의 이야기였던 1편에 이어 2편에는 눈이 안경에 봉합되어 있던 바트의 이야기다. 거기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언급을 했다.


애완용 로봇이나 가이노이드(가이노이드 또는 팸봇은 남성만을 일컫는 좁은 의미의 안드로이드와 대비되는 여성형의 휴머노이드)는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와는 관계없는 존재다. 왜 그들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며 인체 이상형을 모방해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왜 닮은꼴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애들은 늘 인간이란 규범을 벗어나 살아간다. 확립된 자아와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게 인간의 정의라면 말이다. 인간의 전 단계로서 카오스 속에 살아가는 애들은 대체 무엇일까. 내면은 인간과 다른데 모습은 인간이다. 여자애가 소꿉놀이를 할 때 쓰는 인형은 실제 아기의 대체물이 아니다. 여자애는 육아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인형놀이가 실제 육아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즉 육아는, 인조인간을 만들려는 오랜 꿈을 가장 쉽고도 빠르게 실현시켜주는 방법이다.


인간과 기계,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구별하지 않았던 데카르트는 다섯 살 때 죽은 딸과 꼭 닮은 인형을 프란신느 라 이름 짓고 엄청 사랑했다. 바로 여기서 인간은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에 집착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먼저 떠난 어린 자식이 너무 보고 싶은데 이미 한 번 죽은 딸은 다시 태어날 수 없다. 하지만 딸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표정 짓고, 무엇보다 아빠와 생각을 공유하고 잠들 수 있다면 아마 부모는 어떤 짓이든 할지도 모른다. 자식이 부당한 사고로 죽고 나면 자식을 잃은 부모는 이전의 생활을 버리고 사고 수습을 하기 위해 몇 년이고 전사로 변하기도 한다. 비록 잔인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닮은, 어쩌면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를 무서워하면서도 집착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영화 안테벨룸을 보면 남북전쟁 전에 흑인들을 노예로 두고 부려먹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미국 백인들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 안테벨룸이다. 그런 망상 속에 빠진 미국 백인들. 그 수가 아직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인간도 많아서 그런지 아직까지 지구는 네모네모 하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고 있는 인간들 역시 엄청나게 많다. 남북전쟁 전에 백인들이 흑인들을 처음 붙잡아서 노예로 두면서 온갖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역사와 여러 영화에서 잘 알고 있다. 또 동물원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서 발가벗겨 전시도 하기도 했다. 일본도 한국인을 그렇게 한 적도 있다. 치가 떨리는 일이다.


동물들을, 인간과 닮지 않은 가축들 역시 노예처럼 부리지만 말 그대로 가축으로 대한다. 그러나 흑인을 노예로 두고 있다면 이는 가축과 같은 취급을 하지만 그 이외의 무엇도 저지르려고 한다. 너희는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다.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처럼 생각하면 안 되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이 잔인함. 이 같은 잔인함이 세포를 타고 유전자의 열차에 올라 지금까지 이어지고 앞으로도 이어져 안드로이드에 집착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웨스트 월드 시즌 1을 보면 너무나 잘 나온다. 원작을 가지고 이미 70년대에 율 부린너 주연으로 한 번 만들어졌기에 이번 웨스트 월드를 보면 인간과 구별을 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는 자기 자신이 마치 인간이라 생각을 하지 피부를 이식한 인조인간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인간과 똑같이 추억이 있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배설을 하지만 웨스트 월드 속에 관광하러 온 억만장자들의 진짜 인간들에게 마음대로 유린을 당한다. 아주 처참하게 찢기도 발리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허용했을 때 착하기보다 악마 같은 본성을 드러낸다. 잔인함이 있는 그대로 돌출하여 나오게 된다.


만약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닮지 않았다면, 가축을 닮거나 안드로이드 전 단계인 휴머노이드 같은 깡통 로봇의 형태였다면 인간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인간으로 착각하며 지내는 안드로이드 철이의 이야기가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이 소설에 녹아있다. 실제 인간인 철이의 아버지와 자신이 안드로이드인지 모르는 철이와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미래의 인간사회에서 자신들의 세계로 가기 위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얼마나 더 잔인해질까. 요즘 뉴스를 보지 않으려 해도 여러 영상이나 매체를 보면 이토록 인간이 잔인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법이라는 것 역시 제일 잔인한 것 중 하나다. 법은 나약하고 약자들에게 더없이 강인하고 위압적이고 위협적이다. 법이 언제 한 번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했던 적이 있었을까. 법은 늘 정의 편에 선다고 하지만 돈과 권력은 정의와 법을 주무르듯 하니 인간은 참 잔인하다. 나도 잔인해지고 싶다. 잔인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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