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면 야외의 강변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좋다. 아마 강변의 조깅 코스를 꾸준하게 달리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올해도 오늘까지 4일을 제외하고 매일 한 시간 이상 조깅을 했다. 오늘 이전의 일주일 정도는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할 정도로 따뜻한 오물 같은 포근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강변으로 나와서 5분 정도 달리고 나면 그때부터 등이 후끈후끈 부스터를 달아 놓은 것처럼 몸이 달아올라 땀이 날 정도였다.


내가 싫어하는 계절, 겨울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든 것을 차갑게 만들고 시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몸을 웅크리고 추위를 피해 몸을 말고 있는 모습을 겨울에는 볼 수 있다.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존재들 속에 나도 속해 있다.


매일 조깅을 하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습관 같은 것이다. 매일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자는 거와 비슷하다. 포근하다고는 하나 얼굴에 닿는 그것은 겨울이라는 걸 알려준다. 벤치가 있는 곳에서 잠시 멈춰서 운동화 끈을 당긴 다음 숨을 고르고 나무와 거리를 두고 외롭게 떠 있는 별을 본다.


지난날과 그리고 그 사람을 떠올려본다. 외롭다 한들 매일 외롭게 저 하늘에 떠 있어서 나를 봐 달라 반짝이는 별 만 할까. 하지만 그 별을 매일 밤 나무가 바라본다. 별은 나무의 관심은 모른 채 몸을 밝히고 있다.


어느 날 밤은 구름 사이로 달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후후 하하 숨을 토해내며 달리다가 또 잠시 멈추어 그 모습을 봤다. 이 날도 새삼 포근해서 달을 보며 턱밑까지 차오른 말들을 내뱉어보고, 그래서 조금 놀랐다.


뭐라 그랬냐 하면

영화 ‘러브레터’에서

히로코가 설원에서 외친 말.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달린다. 달리는 건 일상 속 일탈하는 기분이다. 스포츠카든, 에르메스든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 더 이상 그것들도 일탈이 아니게 된다. 아이폰 14를 구입해서 일탈 같은 그 기분도 일 년이 지난 오늘이 되면 일상이 되어서 벌 감흥이 없다.


그러나 매일 달리다 보면 다리의 근육에 기분 좋은 무리가 오고, 심장에 자극을 준다. 가만히 그저 하루를 보낸다면 그 자극과 무리가 가져오는 일탈 같은 기분 좋은 고통은 느낄 수 없다.


겨울과 여름의 조깅이 다른 건 땀이다. 여름에, 특히 폭염 속에 조깅을 하면 땀이 비처럼 흘러내리는데 정말  상쾌하다. 역시 조깅이니 운동이니 하고 나면 땀을 흘리는 게 좋다. 하지만 겨울은 땀이 나도 안에 입고 있는 티셔츠가 살짝 젖는 정도라 찝찝하다.


그러다가 한파가 와서 조깅을 하면 마치 북극곰처럼 후후 입김이 많이 나온다. 입김은 미스트가 되어 어때? 뛸만해? 그만두지 그래? 이렇게 뛴다고 뭐 달리지나? 괜히 춥기만 하고 시간만 낭비한다구,라고 한다. 온갖 방해로부터 리추얼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날부터 조깅을 하는 나를 응원하려는 조명쇼가 펼쳐지고 있다. 한 조명이 달에 가서 닿았다. 달은 흥 하며 인공조명에 질 수가 있나. 나는 몇십억 년 동안 여기에서 매일 밤 너희 인간들을 위해 밤을 밝혀줬는데.


달은 루나틱과 인세인으로 나뉜다.   


서양의 달은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인세인은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한데, 루나틱은 달에 의해 즉 루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라 오래전 서양에서 루나틱은 달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미쳐버리는 것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달에게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에서 달은 신성한 존재, 소원을 빌거나 안위를 바라는 토테미즘적인 신성함을 담고 있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어디서 주워 들었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면 그 기묘한 엘리베이터가 나를 맞이한다. 건물의 총 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2대는 교체가 되었고 이 엘리베이터만 그대로다. 교체된 엘리베이터는 뭔가 너무 기계 동물의 뱃속 같은 느낌이라 지하 4층으로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알아서 내려와서 아무도 내리지 않고 타지도 않는데 컴퓨터 목소리로 “지하 4층입니다. 문이 닫힙니다”라고 한다.


시작이 끝이며 끝이 곧 시작이다. 다크 시즌 3에 나온 대산데, 우리는 결말을 알 수 없지만 결말은 우리를 안다. 이제 곧 12월의 마지막을 보내고 나면 다시 1월의 시작이다. 이런 무한 굴레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미래의 인간들이 이런 시간의 무한 굴레를 바꾸려고 인간이 의지라는 환상에 빠져 이것저것 해보지만 결국에 인간의 운명, 즉 시간의 무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결정을 내릴 순 있으나 결국에 결과는 같은 결과라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