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추상화로 그려봄 ㅋ



매일 밥을 먹듯 엘리베이터를 매일 타고 다니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물은 아파트와 일하는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될 수 있으면 혼자 타려고 한다. 누군가 탄다고 해서 별로 싫어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까지 늘 엘리베이터를 아파트와 일하는 건물에서 탈 때에는 사람들이 썩 없을 시간에, 사람들이 없다 싶을 때 탄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셋 이상 있으면 그냥 계단을 이용한다. 특히 내가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는 문 빼고 3면이 거울로 되어 있어서 이렇게 서나, 저렇게 서나 사람이 같이 타면 시선을 폰에 박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서 나올 때 오전에는 책을 읽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누군가 탄다고 해도 시선을 책에 두면 깔끔하다.


그런데 작년에 아파트와 일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교체를 하면서 그 거울들이 다 없어졌다. 속이 시원하다. 일하는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3대인데 마지막 한 대는 그대로 두고 2대는 깔끔하게 교체를 했다.


기묘한 일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일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두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지하 4층에 주차를 하고 올라간다. 지하 4층은 지하 주차장 중에 제일 밑이다. 나는 늘 제일 밑에 주차를 한다.


저녁에는 조깅을 하고 지하 4층으로 오면 차들도 없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일 그렇다. 제일 마지막 지하 4층에는 늘 혼자니까 혼자인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지하 4층으로 내려온다. 나는 조깅을 하고 내려온 후라 엘리베이터를 탈 마음이 없다. 버튼을 누르지 않았기에 누군가 지하 4층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교체된 새것의 엘리베이터는 큰 소리의 컴퓨터 여자 목소리로 “지하 4층입니다. 문이 닫힙니다”라며 엘리베이터는 문을 닫고 올라가버린다. 어째서 알아서 지하 4층으로 내려와서 굳이 문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올라갈까. 올라간다는 말은 위에서 누군가 버튼을 눌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로 올라가지 왜, 어째서 아무도 타지 않았는데 알아서 지하 4층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아파트에 들어오는 시간은 21시나 22시 정도다. 역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없다. 늘 그렇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와 휴대폰을 보느라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내려온다. 나는 폰을 들여다보다가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서야 내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엘리비에터 문이 열리는데 안에는 누구도 타지 않았다. 텅 빈 공간이 나를 반기고 있다. 횡횡한 밤에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면 묘한 기분이 든다. 센서? 같은 것도 아니고, 어째서 아무도 타지 않은 엘리베이터가 알아서 내려와서 문을 열어 주는 것일까. 아파트에서만 그러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일하는 건물과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그런 기묘한 일을 한다.


특히 일하는 건물의 지하 4층에서 알아서 내려와서 "문이 열립니다"라고 큰 소리를 말을 하며 아가리를 벌리는 엘리베이터는 괴괴한 기분까지 든다. 무엇보다 새로 교체된 엘리베이터서 나는 소리, 컴퓨터가 내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적요한 지하에 울리기 때문에 더 기묘하다.


이러다 보면 도시괴담 하나 정도는 탄생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나는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는 도시에 많으니까 도시의 무서운 이야기 중에 엘리베이터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우리나라 근래의 호러 영화에도 엘리베이터 괴담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있고, 일본과 미국은 차고 넘쳤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아주 기묘한 곳이다. 나와 상관없는 모르는 타인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무서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도시괴담에서 엘리베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편리하지만 아주 불편한, 그런 이상한 공간이다. 회사에서 빌링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꺼리고 싫어하는 상사와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에게 무슨 헛소리를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층층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탄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공포라는 건 질이 분명 다르고 같은 질의 공포라도 깊이가 다르다. 옆의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내가 느낀다고 해서 그게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벌레를 무서워하고 벌레를 보면 공포를 느끼는 건 인간의 신체 생김새와는 별개의 문제다. 또 갇힌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역시 튼튼하게 생긴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포라는 건 사람의 얼굴처럼 다 달라서 공포를 느끼는 것 역시 전부 제각각이다.


아예 모르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괜찮지만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건 비극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비극이 존재하지만 얼굴 정도 아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죽 내려가거나 또는 위로 죽 오르는 일은 비극적인 일이다.


엘리베이터가 왜 기묘한 공간이냐,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장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이 층층마다 열리고 보이는 장소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다른 공간이다. 만약 전혀 변화가 없이 똑같은 공간이라면 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면 약간의 흥분과 크고 깊은 불안이 공생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크게 하게 되면 4층과 5층 사이에서 멈추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공존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는 도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소이지만 소외된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는 머무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계단이나 복도에서마저 사람들은 잠시 머물러 담소를 나누거나 서류를 확인하거나 흡연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딱딱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차가운 도시 속, 그 안에서도 빨리 스쳐 지나가고 더 차갑고 다 딱딱하다.


회식 후 술 취한 아버지가 잠시 탔다가 빠져나가도 그 노동의 냄새가 낙인처럼 엘리베이터에 각인되어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장소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한다. 작업복의 냄새. 찌든 땀의 잔상이 가득한 냄새. 그 냄새가 엘리베이터 안에 머문다.


엘리베이터가 가장 기묘한 이유는 엘리베이터는 나를 닮았다. 누구도 머무를 수 없는, 한없이 이동을 해야만 삶의 존재를 인정받는, 그래 봐야 아래위로 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그런 엘리베이터 속에 있으면 잊어버린 나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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