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어딘가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뚫린 것 같아,라고 말하던 그녀가 찾던 음식이 떡국이었다. 떡국의 떡을 한 숟가락 퍼 먹으면 뜨겁고 부드러워 구멍이 전부 매워진다며 우리는 여름에도 땀을 흘려가며 뜨거운 떡국을 종종 먹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로 소설을 죽 적어 나가면 떡국에 관한 단편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질 것 같다. 떡국을 사이에 두고 남녀는 열렬히 사랑을 하고 두 사람이 좋아하는 떡국을 같이 먹다가 나중에는 떡국이 점점 식어가 굳어지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여자는 결국 남자를 떠나게 된다.


여자는 사랑했던 순간보다 더 깊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만다. 남녀의 사랑에는 음식이 등장하고 그 음식을 두고 변해가는 남녀의 모습을 잘 적는다면 재미있는 소성이 될 듯싶다. 물론 나는 재능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떡국을 너무 좋아하는데 자주 먹을 수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것, 당연하지만 살이 찐다는 것. 떡국은 다른 뜨거운 음식에 비해 이상하게도 뜨거울 때 다 먹어치워야 더 맛있다. 대부분 뜨거운 음식이 빨리 먹게 되지만 떡국도 그렇다. 떡국 안에 들어간 모든 서번트 음식이 떡국에 빠지는 순간 마치 원래 떡국의 고명이었던 것처럼 어울린다. 후후 불어서 떠먹다 보면 아직 그 뜨거움이 그릇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밥을 말아서 먹거나 또 한 그릇 떠먹게 된다. 떡국은 그릇에 담긴 한 그릇으로 모자라는 잘 설명하기 힘든 음식이다. 설령 떡국을 잘 못 끓여서 맛이 없다 하여도 양념장을 넣는 순간 얼굴을 싹 바꾸기 때문에 떡국은 어떻든 맛에서 멀어질 수 없다.


떡국에 만두를 넣어서 먹으면 떡만둣국일까, 만두 떡국일까. 음식 주인공의 이름이 뒤에 오는 게 정석이다. 양념치킨, 소갈비, 아귀찜, 대구탕 등. 떡국의 주인공은 떡국떡이니까 만두 떡국이라 불러야 할까. 하지만 만두 떡국이라 부르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떡국은 집에서 해 먹는 것도 맛있지만 분식집 떡국도 맛있다. 분식집에는 떡국이 대부분 메뉴에 당당하게 올라 있다. 분식집에서 갈비탕을 주문하면 레토르트 갈비탕을 데워주는데 떡국은 떡 넣고 고명을 넣어서 조리를 해 주었다.


우리의 분식집이었던 강원 분식의 주인은 학생들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시궁창 같았던 10대를 지탱해주는 몇 곳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곳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의 관건은 주인아주머니나 아저씨가 학생들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10대를 겪고 지나왔음에도 10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끄럽지, 깔끔하지 않지. 휴지 많이 쓰지, 공동체 의식이 연약해서 절약과 거리가 멀지. 어떻게 봐도 음식점 주인 입장에서 좋아할 만한 부류가 아닌 게 10대다. 그러나 학교 앞의 분식집 주인들은 대체로 학생들과 친밀하다. 그런 사람들이 분식집을 하면 그 집의 떡국은 맛있다.


우리의 분식집, 강원 분식집은 약간 지하였는데(반지하보다 덜 지하?) 홀과 방이 있었다. 우리의 분식집이라고 하지만 강원 분식집은 근처에 있는 학교 학생들 모두에게 인기였다. 여고도 두 학교나 있고, 남고도 두 학교, 중학교도 세 학교나 있었다. 중학생들은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에 치여 강원 분식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아이들만으로도 북적북적거렸다.


수업시간이나 주말에는 비교적 한산(하다고 해도 늘 테이블은 거의 차 있었다) 해도 아이들은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방도 세 개나 되었고 방에서 앉아 숙제를 하면서 라면이나 만두를 먹는 학생들도 있었다. 벽면에는 온통 포스트잇이 붙어 있거나 낙서가 가득했다.


누구누구는 똥걸레부터 누구는 어떤 학교 누구를 좋아한다 같은 낙서들이 잔뜩 있었다. 우리들 중에는 강원 분식집 뒤에서 하숙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 때문에라도 강원 분식집에 자주 갔다. 우리는 주로 라면이나 떡국을 먹었다. 가장 저렴한데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라면과 떡국을 조리할 때 마지막에는 계란 물을 위에 부어 주는데 맛있었다.


강원 분식집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었는데 이쪽 구석에는 우리 학교 애들이 앉아서 밥을 먹었고, 저쪽 구석에는 다른 학교, 방안의 저쪽에는 무슨 여고. 그렇게 규칙이 있었고 대부분 규칙을 잘 지켰지만 규칙이라는 건 꼭 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아이들이 꼭 있었다. 눈빛 싸움, 말다툼, 그리고 밖으로 나와, 같은 이야기들.


밥도 얼마든지 퍼 먹을 수 있었고 국물도 달라는 대로 퍼 주었다. 무엇보다 단무지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상하지만 김치보다 단무지를 라면에도, 떡국에도 같이 먹는 걸 좋아했다. 단무지가 중국집 단무지가 아니라 물이 약간 빠진, 그래서 좀 더 얇고 말랑말랑한, 그래서 몇 개씩 집어서 떡국과 함께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떡국은 좋은 음식이다. 추운 요즘 같은 날에 먹기에 더없이 좋다. 속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게 꼭 마음까지 훈훈하게 하는 음식이 떡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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