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에 비해 빠르게 흐른다. 그렇지만 인간처럼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언제나 느긋하게 앉아 있거나 잠을 자고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 눈치껏 살아가야 하는 고양이도 있다. 어떻든 태어나졌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이건 몹시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에게는.


그런 인간도 그렇지만 고양이에게도 이는 중요한 문제다. 고양이는 신진대사가 빨라 오래 살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삶은 느릿하게 흐른다. 마치 블랙홀 경계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처럼 아주 천천히, 마치 멈춰 있는 것처럼 흐른다. 그림자가 햇살을 따라 움직이듯 천천히 고양이는 생을 보낸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고양이보다 오래 살 인간은 고양이와 같은 마음을 지니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한다.


고양이는 우리가 볼 때 기분이 나쁘게도 너무나 편안하게 비스듬히 누워있다. 그러다가 다리를 허공에 들면 드러나는 은밀한 부위도 참 고양이스럽다. 고양이에게 복잡하고 난잡한 인간사는 불필요하다. 매일 낮잠 잘 곳을 물색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자리가 고양이에게 먹고사는 일이다.


집집마다의 비밀을 고양이는 알면서도 인간에게 말하지 않고 숨긴 채 볕이 드는 곳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며 소변을 통해 그 비밀을 배출한다. 인간이 보기에 가끔씩 꼬리를 움직이는 것으로 낮잠을 즐긴다는 것을 아는 정도다.


고양이는 햇살로 된 얇은 이불을 덮고 잠들다 눈을 뜨면 변색되는 풍경을 천천히 구경한다. 그렇게 누워있는 고양이를 보면 다리와 배 사이 야들야들한 부분에 손가락을 넣어 슬슬 비비고 싶어 진다. 졸음에 겨워 눈을 반쯤 뜬 고양이를 보면 나 역시 고양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 같다.


나에게 꼬리가 있다면 견고한 인간의 감정을 벗은 채 슬슬, 천천히 움직여 등까지 꼬리를 올려 누군가를 즐겁게 해 줄 텐데.


고양이의 시간은 장소에 영향을 받는다. 전통시장의 고양이는 낮동안 시장에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하기 때문에 늘 주위를 살피는 눈치 고양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야간에 시장에서 고양이를 마주하면 그들의 시간은 역시 빠르다.


그러나 노인에게 사랑을 잔뜩 받는 노인정의 고양이 '하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할아버지에게 애교도 부리고 오전에 먼저 나와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아는 체 다가오면 살갑게 대한다.


노인과 고양이는 시간의 공유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의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노인의 시간도 눈 깜짝할 사이에 뒤로 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노인은 젊은 사람이나 중장년층에 비해 항상 느긋하다. 시간을 닦달하지도 않으며 이미 시간을 두려 하지도 않는다.


할아버지는 고양이 '하루'와 시간을 공유한다. 할아버지는 하루에 한 가지 이상 볼일을 보지 않는다. 하루에 반드시 해야 하는 하나의 일은 고양이 '하루'에게 밥을 주는 일이다. 고양이 '하루'도 하루에 하나의 일만 한다. 그건 할아버지가 주는 밥을 먹는 일이다.


그리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느긋하게 볕이 드는 곳을 찾아 추위가 덮치기 전까지 발라당 누워 쿨쿨 잠을 잔다.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본다. 고양이와 나는 같은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둘 다 어떻게든 생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나와 고양이가 이 세계에서 만나는 방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