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가 요즘 식탁에서 가장 끝까지 남아서 그나마 밥상을 지키고 있다. 바다 건너 우르르 몰려오는 고기보다 채소와 야채의 가격이 너무나 올라서 밥상에서 맛있는 나물류를 먹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예전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이 각광받고 있는 요즘이다.


가정의 밥상이 무너지면 나라가 부흥할 수 있을까. 방탄과 삼성의 폰이 해외에 나가서 외화를 아무리 벌어들여도 일반 사람들은 전혀 몸으로 체험이 되지 않는다. 내가 자주 사 먹는 제일 작은 컵라면 우동과 사리곰탕 컵라면이 천원이 넘어 버렸다. 맙소사다.


시래기는 시월에서 연말까지가 제철이라고 한다. 이때 먹는 시래기가 맛도 좋고 영양도 많다고 한다. 시래기로 많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시래기는 제철이 추운 날이라서 그런지 나에게 시래기는 겨울의 음식이었다.


학창 시절 사진부 활동을 할 때 주로 겨울의 전통시장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담았다. 추웠다. 요즘 같으면 내복이라도 입었을 텐데, 고등학생 때에는 내복을 입지도 않고 돌아다녔다. 요즘 중학생들을 봐도 그렇다. 너무 추운 겨울의 날에 여중생 두 명이 바짝 붙어서 생과일 주스를 마시며 걷는 모습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창 시절 손에 작은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시장의 여러 모습을 담으려고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춥고 허기가 오면 시장에서 파는 시래기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시래기국밥집 안으로 들어가면 뜨거운 기운이 훅 올라오고 따뜻한 온기와 맛있는 냄새가 몸을 1차로 녹였다. 시장 안의 국밥집이라 제대로 된 테이블은 없다. 벽면에 바 형식으로 붙어 있는 곳에 테이블에 국밥을 올려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먹었다. 그 사이에 앉아서 나온 시래기 국밥을 한 숟가락 떠 먹으면 아아 2차로 몸과 마음이 녹았다.


시래기국밥은 가격도 저렴했다. 국물과 시래기와 밥. 그리고 양념장이 전부인 시래기국밥. 누가 그런 걸 먹겠냐고 하겠지만 돌아가신 송해 어르신도 저렴하고 맛있는 서울의 시래기국밥집의 단골이었다.

시래기는 변신의 귀재다. 시래기 무침은 그냥 밥에 올려 와암 먹어도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시래기 무침은 나의 외가에서 늘 보내주었는데 이제 이런 시래기 무침을 만들어주던 어르신들이 다 사라졌다. 나의 큰 이모, 나의 외숙모의 손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손맛이 떨어지는 모친이 해주면 또 젓가락이 잘 안 간다.


시래기 무침의 이 끈적함이 좋다. 밥과 함께 젓가락으로 떠서 그대로 입에 넣어서 먹는, 그런 맛이 있다. 다른 무엇도 필요 없고 시래기 무침과 밥의 조화가 좋은 것이다. 그러다가 밥이 반쯤 남았을 때 시래기 무침을 넣어서 들기름을 몇 방울 떨어트려 비벼서 먹는다.

꽁치통조림을 하나 따서 그 위에 시래기를 올려서 조리면 시래기 꽁치찌개가 되는데 그냥 꽁치찌개보다는 훨씬 맛이 좋다. 물이 찰방찰방한 것보다 이렇게 국물이 거의 없게 조리를 한다. 국물이 있으면 다 먹게 되니까 배가 너무 부르다. 그래서 나는 국물은 될 수 있으면 나오지 않게 조리를 한다. 그래도 꽤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인간은 생활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늘어가는 것 같다.


양희은의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밥상’의 한 페이지다. 지난번에는 고사리에 관해서 양희은의 시골밥상을 한 번 소개했었다. 양희은은 시래기 밥상을 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505


[이 책에는 일반 요리책에 등장하는 현대적인 계량법은 없다. 그렇게 하면 시골밥상의 맛이 안 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뻔한 레시피는 가라! 무엇이든 무조건 그 댁 어머님 식을 따라 하면서 배웠다. 눈대중과 맛보기.


시골밥상은 서양식 입맛은 안 따라간다. 못 따라간다. 이 조리법과 입맛은 우리 핏속에 흐르는 맛이다. 그걸 잊거나 남에게 내어주면 안 된다. 또는 서양 사람들 먹기 좋으라고 먹기 쉽게 그들의 양념 맛을 따라가서도 안 된다. 장사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지 몰라도 집에서 차려먹는 밥상은 그들 식을 따라가면 재미없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시골밥상을 복습한다.

그런데 복습할 때면 속이 상한다. 왜냐? 시골 어머님 댁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나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에 가서 일단 싱싱해 보이는 채소를 돈을 주고 사지만, 우리가 만난 어떤 어머니도 돈 주고 채소를 사시진 않으셨다. 집 앞, 옆에서 텃밭을 일구셨고 웬만한 건 마당 한편에서 조달하신다.


양념은 3~5년 묵은 간수 뺀 굵은소금, 어머니께서 담그신 간장, 된장, 고추장, 직접 농사지어서 짠 들기름, 참기름, 들깨 부숭이, 참깨 부숭이, 직접 농사지으신 파, 마늘...

음식재료라야 그것뿐이다. 단순하다.]


사진에 보이는 음식은 양희은이 시골밥상 팀과 함께 옥천 청성면을 찾아가서 해 먹은 밥상이다. 시래기 콩가루 국, 아주까리 나물, 지고추 양념, 고추 무름(이름도 참 예쁨)과 밥이다. 보기만 해도 속이 편안하고 마치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에 내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을 밥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행복을 넘어 축복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축복을 자주 누리지는 못하는 세계가 되었다. 하루를 보내기보다 하루를 견디는 세계. 정말 오늘 밤하늘에 달이 두 개 떠 있으면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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