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가 웃으면 온 세상에 밝고, 마리카가 쪼그리고 앉아서 울면 같이 울고 싶어 진다. 마리카는 10살의 몸으로 40대 타카에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처럼 큰 소리로 엉엉 울지도 않는다. 그저 옷소매를 적실 정도의 눈물을 흘릴 뿐이다.

타카에를 잃고 10년 동안 좀비처럼 살던 케이스케와 마이는 어느 날 무지개처럼 느닷없이 나타난 초등생 마리카 때문에 좀비에서 사람이 된다. 눈앞에 타카에가 마리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10살의 마리카 덕분에 땅만 쳐다보며 걷던 케이스케는 앞을 주시하게 되고 히키코모리로 삶의 전부를 포기했던 마이는 취업을 하게 된다.

타카에가 있으면 주위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한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얻게 되고, 기분이 좋고, 내내 같이 있고 싶고 그래서 편안함을 받는 사람. 그래서 다른 이성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면 질투가 나기도 하는 사람. 이 이야기의 큰 줄기는 타카에 에게서 나온다.

오로지 타카에만 바라보는 사랑꾼 바보 남편 케이스케에게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지만 케이스케는 아내인 타카에게 그런 잔소리 들기를 좋아한다. 요리사인 타카에가 만든 도시락은 마음까지 전해져서 일을 하는데 힘을 내게 한다. 타카에가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 반한 케이스케는 타카에의 가게에 오는 손님-남자들 때문에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런 타카에가 죽고 나자 케이스케는 자신의 내부의 무엇도 같이 죽어 버린다. 그리고 10년을 그 상태로 지낸다. 누구도 만나지도 않고, 의욕도 상실한 채 진급에 관심도 없어져 버렸다.


친구가 죽고 나자 나는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사로 잡혔던 적이 있었다. 친구와 그렇게 붙어 다니며 친한 것도 아니었다. 같이 일을 하며 지냈지만 일하는 부분이 달라서 같이 부딪힐 일도 잘 없고, 술을 마실 때에도 많은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친구가 죽어 버리자 나의 내부의 여러 스위치 중에 하나가 꺼져 버렸다. 나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런 일이 나의 내부에서 일어났는지. 친구가 죽어 버려서 내부의 스위치가 꺼진 것이 아니라 망연자실한 친구의 아내의 모습과 장례식 장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던 어린아이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타카에가 그런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 타카에 역시 자기중심적인 엄마 밑에서 고군분투를 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타카에는 온통 자기만 생각하는 어머니 밑에서 웃음을 잃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남동생인 유리까지 돌봐야 했다. 힘들다고 징징 거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바보 같고 온통 밝은 쪽만 바라보는 케이스케를 만나 그의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빠져 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타카에 역의 이시다 유리코를 만난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이시다 유리코처럼 살아가면 어떤 느낌이냐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예뻐지고 동생보다 더 어려 보인다. 정우성에게 그런 얼굴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면. 다행히 정우성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몇 곳에서 했다. 이시다 유리코는 69년생이니까 나이가 많다. 그럼에도 늘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할 것이다. 톰 크루즈와 36년 전에 탑건 1에서 같이 주연을 했던 켈리 믹길리스를 보면 톰 크루즈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타카에의 남동생 유리 역시 누나가 죽고 난 뒤 만화 그리기를 포기한 채 삶을 놓고 살아간다. 아는 사람들에게 빌붙어 술을 얻어먹는 존재가 되었다. 유리는 챔프 같은 만화 출판사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었지만 누나의 죽음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도망치듯 그 제의를 거절한다. 제일 먼저 만화를 연재하면 누나인 타카에 에게 보여 주려고 했다. 그녀만이 유리를 지금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니까. 그런 반짝이고 예쁜 타카에 누나가 바보 같은 케이스케 매형을 만나다고 했을 때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남자에게? 유리 역시 생활의 밑바닥을 지내고 있었는데 그의 앞에 누나 같은 행동을 하는 초등학생 마리카가 나타난 것이다.

마리카의 엄마 사치는 마리카가 자기의 삶을 방해하는 오물 덩어리로 본다. 사치는 고등학교 때 3년이나 모은 용돈을 엄마가 도박으로 써 버린 탓에 집을 나와서 살면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마리카를 낳았지만 이혼을 했다. 매일 도시락이나 팔면서 사람들의 불만을 들어야 했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매달리는 남자가 처자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분노와 속았다는 생각에 분풀이를 머리카에게 하고 마리카를 내쫓는다.


아빠가 엄마와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가 버린 후 변해버린 엄마의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지내는 마리카에게 엄마인 사치는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 너 같은 거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10살인 마리카는 엄마의 말에 충격을 받고 집을 나가 동네 놀이터에서 울고 있을 때 타카에의 영혼이 마리카에게 손을 내민다.

삶을 포기한 케이스케가 진급도 하지 못한 채 우울하게 회사 생활을 보내던 중에 케이스케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마리야가 과장으로 부임한다. 두 사람은 회사에서 도시락 친구가 되어 조금씩 도움을 주고받으며 나이가 많은 케이스케의 바보 같지만 따뜻한 모습에 끌리게 된다. 마리야 역시 남들이 보기에 장녀처럼 보이지만 실은 언니가 늘 병실 생활을 해서 어린 시절부터 장녀의 역할을 하며 지내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언니가 죽고 나자 마리야는 마치 언니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마리야는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의 사랑을 왕창 받으며 자라지 못했다. 마리야 코노미는 아주 내성적이면서 출세에 대한 욕심도 없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어려워한다.


마리야 역을 맡은 모리타 미사토는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본 사람이라면 아! 하게 된다. 무라니시의 그녀, 무라니시의 뮤즈, 일본 그쪽 업계의 판도를 바꿔버린 쿠로키 카오루가 그녀이기 때문이다.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 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는 가족들에 대한 아픔을 전부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관계에 대해서 서툴거나 어려워한다. 인간관계는 참 힘들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 역시 시간이 걸리고 쉽지 않은데 와그작 하고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인간관계는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 더 어려운 관계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과 친해진 관계는 깨지더라도 그만이다. 보지 않으면 간단하다. 그러나 가족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사이의 관계다.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아들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장 복잡하고 한 번에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마리카다.

10살의 초등학생 마리카.

그러나 그녀의 내부는 40대의 타카에가 들어 있다. 외모는 초등학생이나 말과 행동이 40대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말을 들어주고 타인의 보듬어주며 타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를 듣는다. 타카에는 살아생전 이미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남편 바보에 딸 바보인 그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녀가 가는 곳에는 꽃이 피어나는, 그런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타카에는 언젠가부터 고민을 한다. 마리카의 모습을 찾아줘야 한다고. 분명 그렇게 하면 케이스케와 마이와 헤어지겠지만 마리카에게는 엄마인 사치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사치에게도 역시 마리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단순하게 사랑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집합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회사, 학교, 조직, 종교단체보다 더 설명하기 어렵고 관계 역시 힘든 것이 가족이다.


가족이 있어 늘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가족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리카는 마리카의 가족으로 가고, 타카에의 가족은 타카에의 가족으로 남아야 한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마리카 역의 동글동글한 얼굴의 꼬꼬마 마이다 노노의 연기다. 분명 10살인데 40대를 연기한다. 그러다가 마리카가 되었을 때는 영락없이 너무나 귀여운 아이의 10살 꼬맹이가 된다. 신기하다. 8화에서 마리카의 인격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회전을 하게 된다.

마리카가 울면 따라 울고 싶어 진다. 아이처럼 울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리카가 웃으면 바보 미소가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었던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였다.


스틸 사진 몇 컷



아내, 초등학생이 되다의 주제곡 https://youtu.be/oBfrAIY6jGU

優河 - 灯火(Official Music Video)/TBS系 金曜ドラマ『妻、小学生になる。』主題歌 Sea of light by Yu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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