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뇨는
인어일까, 금붕어일까, 오염 변이체일까.
소스케와 포뇨의 관계는
사랑일까, 우정일까, 관심일까.
이 두 아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형용할 만한,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 텐데.
포뇨 속엔 멋진 대사가 있다.
소스케와 포뇨를 남겨두고 양로원으로 가는 리사는 소스케에게 말한다.
"소스케, 우리 집은 폭풍 속의 등대야,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집 불빛으로 용기를 얻고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지켜야 해.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은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
그치만 알게 될 거야."
이 대사는 포뇨를 볼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마치 마음에 드는 멋진 노래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대사다. 좀 웃기지만 이 대사는 박정대 시인의 '슬라브식 연애'가 떠오른다.
[태양의 반대편으로 우리는 밤새 걸어가는 것이다
그 끝에서 우리가 태영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한바탕의 꿈이라 했으니,
그녀와 나는 끝끝내 꿈속에서 깨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함께 흑맥주를 마시며 캄캄하게 계속 따스해져야 하는 것이다
천일 밤낮을 폭설이 내리든 말든 그녀와 나는 계속 밤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와 내가 스스로 태양을 피워 올릴 때까지,
그녀와 내가 스스로 진정한 사랑의 방식을 터득할 때까지,
그녀와 내가 스스로 슬라브식 연애를 완성시킬 때까지
태양의 반대편으로 우리는 밤새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가 태양이 되는 것이다 - 박정대, 슬라브식 연애 중에서]
마지막에 소스케는 아무런 조건 없이 포뇨를 받아들인다.
물고기인 포뇨라도,
인어인 포뇨라도,
사람이 아닌 포뇨라도,
그 무엇이 됐던 포뇨는 포뇨이기 때문에 소스케는
포뇨를 사랑할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건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 정도뿐이다. 우리는 사랑을 조건 없이 하는 것이라 입으로 말하지만 사랑에는 조건이 반드시 따른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받는 사랑이 내가 보낸 사랑보다 작고 적으면 분노하기도 한다.
연애시대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랑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아프고, 시작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싶어서 부대끼고, 사랑이 끝날 땐 그 끝이 같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사랑 때문에 달콤한 것은 언제일까.
두려움, 분노, 공포, 질투, 희생 이 모든 단어의 뜻은 사랑으로 통한다. 사랑을 하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고 미쳐버린다. 불같이 타오르고 그 찬란함은 불꽃놀이의 몇 배나 된다. 하지만 찰나로 끝나 버린다. 내내 타오를 수 없다. 타고 남은 재는 그을음을 남기고 탄 내가 날 뿐이다. 그렇게 사랑도 식는다.
너라는 존재는 이 세상이 너뿐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처럼.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애시대 마지막 아버지의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 몰래 전화 사연을 신청한 은호. 은호의 사연을 들은 뒤 디제이 아버지가 멘트를 한다.
"k양, 행복해지고 싶죠?
행복하기가 쉬운 줄 아십니까?
망설이고 주저하고 눈치 보고,,,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겁니다.
은호야,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행복해져야만 이 세상도 행복해진단다.
하느님한테는 내가 같이 용서를 빌어주마.
행복해져라 은호야!"
소스케처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이면 세계를 구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둠 속 등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