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카페는 따뜻하고 좋다. 안에서 보는 카페의 밖은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등을 구부리고 옷깃을 한껏 세워서 걷지만 카페 안에서는 커피의 향이 온통 넘쳐나기 때문에 기분이 나른하고 좋은 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의 경우는 또 다르다. 겨울의 카페에는 저녁이 되면 거의 만석이다.


모든 테이블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다. 음료를 서빙 보다가 아차 해서 부딪히기라도 하면 낭패인 것이다. 음료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손님들의 옷이 젖었다거나 테이블에 튀었다거나 하면 뒤에 따르는 문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심히 서빙을 보면 덥다. 겨울이라 카페 안은 따뜻함을 넘어서서 후끈하다. 그래서 쉬는 타임에는 조그만 탕비실 같은 곳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카페의 아르바이트는 묘한 재미가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이 일을 빨리 끝내고’라는 마음과 ‘재미가 있어서 계속해야지’라는 마음이 반반씩이었다. 카페의 아르바이트는 뭐랄까 딱히 힘든 일이 없다. 그저 서빙을 보는 것뿐이다. 손님이 많으면 재빠르고 눈치껏 서빙을 보면 된다. 그러니까 비운 건 빨리 치워주고 테이블을 닦아 주고.


음료는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주방에서 바리스타 같은 사람이 모든 음료를 만든다. 아주 능숙하게 맛있게 모든 음료를 만들어 버린다. 카푸치노도, 라테도, 위스키가 들어간 커피도, 칡차도 모든 음료를 만든다. 무엇보다 빠르게 만든다. 그리고 서빙을 보는 아르바이트는 그걸 빠르게 테이블에 가져다주면 된다. 그래서 음료를 맛있게 만드는 주방장이 있는 카페는 당연하지만 손님이 많고, 그 손님의 80%는 여자 손님들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좀 무서웠던 사모님의 칭찬이 자자했기 때문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이 칭찬을 들으면 얼씨구 아르바이트가 재미있었다. 칭찬을 들었던 이유는 손님이 없는 주말의 오전 시간, 그리고 방학을 한 평일의 저녁이 되기 전까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손님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여자들로 여상 아이들과 땡땡 여고 아이들로 우리 학교 클럽활동을 하면서 교류를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었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클럽활동으로 사진부를 활동을 했다. 그 덕분에 선배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여학교 사진부 아이들과 교류가 잦았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같이 다니며 사진을 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친해지게 된다. 그녀들이 돌아가면서 카페에 놀러 왔다. 놀러 왔다고는 하나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를 가져다주면 지들끼리 재미있게 수다를 떨다가 간다. 그 수가 많아서 사모의 칭찬이 잦았다.


그러던 중 땡땡 여고 아이들이 매년 하는 이웃 돕기 성금을 마련하려고 일일찻집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일일찻집을 하면서 자신들의 사진을 전시를 해서 팔리는 사진이 있다면 팔고 싶다고 했다. 일일찻집 겸 작은 전시회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카페는 2층 3층을 카페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3층을 하루 종일 일일찻집으로 열 수 있었다. 물론 사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고 대박을 친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글바글 거렸고 덕분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다리가 후덜거렸다.


그래서 한 달만 하기로 했던 아르바이트가 두 달이 되고 해를 넘겨 여름까지 하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르바이트를 할 동안 갑질하는 손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경찰이 오고 가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주방에서 만든 음료나 커피는 정말 맛이 좋았다. 주방장 형은 실력이 좋아서 멀리 순천인가 거기서 스카우트를 해왔다고 사모님이 말했는데 그게 사실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음료를 만들면 맛은 정말 좋았다.


일일찻집을 끝내고 교류하는 여고의 아이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녀들이 음료를 다 마시면 나는 또 새로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주방장 형도 마음껏 퍼주라고 했고 사모님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 시간이 손님이 별로 없을 시간이라 내가 늘 들고 다니는 앨범을 카페의 음악으로 틀었다. 카페에는 대체로 가요가 많이 나왔는데 유행에서 좀 먼 노래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사모님의 취향에 맞는 노래들이 흘렀다.


그때 내가 듣고 있던 앨범은 여러 노래가 섞인 앨범이었는데 그 안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턴, 마빈 게이, 에어로 스미스, 조지 마이클 같은 노래들이 있었다.


주말에 출사를 다니며 같이 사진을 담고 난 다음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음악 감상실에 가기도 했고, 그녀들은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래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이건 누구 노래? 라며 물었고, 이건 마빈 게이의 렛스 겟 잇 온, 그리고 마빈 게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빈 게이는 흑인들의 성지 모타운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거지. 모타운이 바로 퀸스 존스가 거의 수장 격으로 있는 거대한 레이블인데 대체로 흑인들의 음악을 하는 곳이야. 그런데 뭐랄까 백인들을 위한 흑인음악? 그런 느낌이 많이 드는 노래들을 만들었지. 그 안에 마이클 잭슨도 있었고 말이야. 대놓고 그러지는 않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있었던 거지. 그런 분위기가 싫었던 마빈 게이는 모타운을 뛰쳐나와 흑인을 위한 자신만의 노래를 불러. 그래서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흑인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나 후에 아버지와 다투다가 총에 맞아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해. 그때 나이가 고작 44세인데.


나는 음악감상실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그녀들은 재미있어했고 자주 나의 앨범을 틀었다. 그랬더니 사모님이 카페에 흐르는 음악을 싹 바꾸어 버렸다. 남자 손님들이 카페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더라는 것이다. 그 노래가 아마 뎀 양키즈의 하이 이너프였을 것이다. 뎀 양키즈, 넬슨, 파이어 하우스, 익스트림, 도켄, 본 조비, 곤센 로즈, 미스터 빅 등 강력하지는 않지만 록. 록 발라드 노래들을 카페에 많이 틀었다. 그랬더니 남자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자 손님들의 특징은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나가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하고 수다를 떨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인 것이다.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음악은 카페의 분위기를 싹 바꾸었다.




그럼 뎀 양키즈의 하이 이너프를 들어보자 https://youtu.be/l_uh8Xjg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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