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를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어딘가 있겠지. 유튜브를 보니 어느 나라 시장에서는 박쥐도 먹고, 보아뱀도 먹고, 도무지 외관상으로는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물고기도 국으로 끓여서 먹더라. 대만은 취두부를 먹고 천조국 놈들도 별 이상하고 거지 같은 것들도 먹는다. 선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날개 잘라 내고 입을 에, 이렇게 벌린 채 그대로 까맣게 구워진 박쥐보다는 낫잖아.
그러나 영화나 해외 드라마 같은 것을 봐도 선지를 먹는 다른 나라의 모습은 본 적은 없다. 생각해보니 독일이 소시지를 먹는데, 소시지도 순대와 비슷하니까 순대에 선지가 들어가는 것처럼 선지가 들어가는 소시지가 있을 것만 같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고로 상이 먹는 음식 중에 돼지 간이 들어가는 음식들이 있었다. 우리는 간을 순대의 옵서버 정도로 먹을 뿐인데 고독한 미식가 여러 시즌 중에서 간볶음이나 커다란 간으로 만든 카레라이스 같은 걸 먹는 모습이 있었다. 아마 마지막 시리즈 중에 한 편인 거 같은데 고로 상이 들어와서 자리가 없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혼자서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고 그 맞은편에 앉은 수다스러운 아주머니가 커다란 간이 들어간 카레라이스 같은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고로 상에게 막 자랑을 한다. 이만큼이나 큰 간이 들어가서 아주 맛있다며 고로 상 눈앞에서 자랑을 막 한다. 고로 상이 그 음식을 주문했는데 아뿔싸 아주머니가 마지막 주문이었다. 간이 다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고로 상은 그다음 날에 또다시 그 식당에 가서 그 음식을 주문했는데 바이트가 헷갈려서 간볶음으로 주문을 받고 만다. 음식을 받아 들고 놀라는 고로 상의 표정은 큭큭.
나는 간을 좋아해서 순대를 먹을 때 간을 먼저 먹는다. 간은 거의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에 간을 좋아하는 나는 아주 좋다. 간은 뻑뻑한데 그 뻑뻑한 맛이 뭔가 나쁘지 않다. 우리는 간을 다른 음식으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순대를 먹을 때 간도 주세요, 해서 먹을 뿐이다. 순대국밥에도 내장이나 순대는 들어가는데 간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불만이지만 이런 불만은 0.3초 만에 잊어버린다.
우리나라만 먹는 음식? 이 있다. 그게 참외다. 참외는 채소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는 채소가 참외다. 참외는 과일 같은데 채소다. 나는 참외를 껍질 째 먹는다. 그게 훨씬 맛있다. 여름에 시원하게 해서 노란 껍질 째 우걱우걱 씹어 먹는 맛이 너무 좋다. 다른 나라에서는 참외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참외보다는 먹기도 수월하고 더 맛있는데 멜론을 먹는다고 한다. 참외는 멜론보다 단맛이 덜 나기 때문에 굳이 참외를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요즘 나오는 과일은 당도가 좋아도 너무 좋다. 그래서 맛이 '너무' 난다. 참외 정도는 중간 씨 부분을 다 빼 버린 후 껍질 째 시원한 맛으로 먹는 게 좋은데 참외마저 요즘은 달다 달어.
아무튼 소 피를 굳혀서 먹는 선짓국 같은 음식은 우리나라만 먹지 않을까 한다. 선지는 이런이런 점에서 몸에 좋음, 같은 문구도 선짓국 전문점에 가면 붙어 있다. 철분이 어쩌고 하는 걸 보면 드라큘라도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게 납득이 간다. 철분이 있어야 밤새도록 돌아다니지.
예전에 선짓국을 꽤 자주 먹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여기 다운타운에 밤 10시가 넘어가면 포장마차가 죽 들어서는데 선짓국 포장마차다. 서서 후루룩 먹는다. 술을 한 잔 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젊은 사람들이(다운타운이니까 주로 젊은 층이 술을 마신다) 선짓국을 후루룩 먹는다. 그게 아주 맛있다.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새벽에는 일렬로 죽 서서 선짓국을 먹는다. 여름이면 그 앞에 테이블에 차려져서 또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포장마차 단속하에 모든 포장마차가 사라졌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새벽이든 새벽이 아니든 선짓국 포장마차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덕분인지 거리도 아주 깨끗해졌다.
선짓국은 소주를 한 잔 꺾으며 먹는 게 맛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선짓국을 먹을 때 술과 함께 먹은 적은 없다. 술을 마시고 귀가할 때 위의 포장마차에서 선짓국을 빠르게 후루룩 먹을 뿐이었다. 근래에는 선짓국을 먹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딱히 없다. 이제 국물 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도 있고 자주 가던 선짓국 전문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의 선짓국은 옆집에서 만들어서 한 냄비를 주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못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요리가 취미인데 얼마 전에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요리사 자격증이 여러 개 있는 걸로 아는데 아무튼 부지런하다. 요리를 한다는 건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지 못한다. 요리 자체도 그렇지만 요리를 해야 하는 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하는 자체가 부지런 떨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아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 놓고 남편마저 외국에서 일을 하러 가버리고 홀로 외롭게 지내다 보니 요리에 목을 매게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요리를 해서 혼자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늘 나에게 한 냄비씩 준다. 이봐, 오늘은 아귀찜을 했는데 이건 덜어 먹을 수가 없네, 같이 먹을까, 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포장마차의 선짓국 말고 선짓국 전문점에서 선짓국을 자주 먹을 때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먹었다. 대중목욕탕의 발길을 끊기 전이었다. 여자 친구와 서로 찢어져 목욕을 하고 나와서 항상 그 선짓국을 먹었다. 목욕탕도 항상 거기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점점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도 계속 같던 곳으로 갔다. 회귀성이 강한 연어처럼 계속 가는 것이다. 목욕을 하고 난 뒤에 먹는 선짓국은 정말 맛있었다.
일을 마치고, 조깅도 같이 하고 난 다음 목욕을 느긋하게 하고 난 다음에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사람이 드문 선짓국 전문점에서 후루룩 먹는 선짓국은 그야말로 행복이었다. 행복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데 즐거운 시간이었다. 늘 가는 선짓국 전문점은 24시간 하는 식당이었고 그곳은 이곳, 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너무 유명한 곳으로 근처 술집에서 술을 먹고 꼭 들러서 해장을 하는 곳이었다.
어제 문득 생각나서 검색을 해보니 굳건하던 그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여기 지역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그곳의 안부를 묻고 추억담을 올리고 있었다. 사라진 오래된 식당 한 곳이 모르는 이들이 서로 모여 연대를 끌어내고 있었다.